책에서 만난 사람 - 힐러리 로댐 클린턴 전 국무장관

2016년 미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할 것인가

사진제공 : 김영사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세계인의 관심 속에서 치러진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이자, 뉴욕주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지낸 힐러리 로댐 클린턴(68)이 지난 4월 ‘2016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재조명받고 있다. 그는 최근 2009~2013년 국무장관 재직 시기를 회고하는 자서전 《힘든 선택들(Hard Choices)》(김영사)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이 4년간 외교 분야에서 얼마나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는지, 국가의 미래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상세히 밝혔다.

전체 분량이 860쪽에 이를 정도로 내용이 방대하며 등장인물도 다양하다. 세계 역사의 운명을 ‘쥐락펴락’하는 힘 있는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인상과 업무 스타일부터 몰락한 독재자들의 비참한 말로까지 언급한다. 현재 그 나라의 역사와 정치경제 상황까지 기술해놓아 세계사 공부를 하는 느낌도 든다.


국무장관은 내각 최고의 요직

《힘든 선택들(Hard Choices)》(김영사)
미국 대선을 19개월 앞둔 현재, 지지도와 선호도 면에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전 장관을 당할 자는 없는 듯하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 전 장관은 그가 속한 민주당내에서도 지지도와 선호도가 가장 높았고 공화당쪽 주요 후보와 겨뤄도 뒤지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으로 등록한 유권자들로부터의 지지도는 81%에 달했다. 그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막강한 파워를 가지게 되었을까.

클린턴 전 장관은 1947년 시카고 교외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웰즐리 대학과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예일대 재학 시절 빌 클린턴을 만나 1975년 결혼했다. 1992년과 1996년 대선에서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을 지휘하여 남편을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백악관을 나온 후 2000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8년간 일했다.

200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가 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내부의 경쟁자는 외부의 적보다 더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자서전에서 경선 패배 이후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출했다.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버락이 승리했고 이제는 그를 지지해야 할 시간이었다. 나나 내 승리에 모든 것을 바쳤던 참모들과 지지자들로서는 버락을 지지하는 일이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을 것이었다.(중략) 나는 선거운동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대중임을 잊지 않고자 했다.” 그는 눈물 흘리는 지지자들 앞에서 패배를 인정하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투쟁하는 방법은 우리의 에너지와 열정과 힘을 한데 모아 버락 오바마가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겁니다.”

클린턴 전 장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오바마는 그해 12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바마 당선자는 클린턴 전 장관에게 국무장관직을 제안했다. 국무장관은 내각에서 가장 높은 직위이며 유고 시 대통령직 승계서열 4위인 요직이다. 국무장관은 7000여 명의 국무부 직원들과 국제개발처 직원 7만 명, 전 세계 270여 곳의 외교 공관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리다. 국가의 최고위 외교관, 대통령의 대외정책 핵심 고문, 사방으로 뻗은 부서들을 관할하는 CEO의 일을 모두 해야 한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1월 67대 국무장관으로 취임해 2013년 2월 퇴임 때까지 112개 국가를 다니며 미국의 대표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재직 중 그는 하늘에서 2000시간 넘게 보내며 160만km에 이르는 거리를 다녔다. 꼬박 87일을 시속 800km가 넘는 속도로 비행하는 공간 속에서 보낸 것이다.


전쟁과 평화, 희망과 역사 사이

2011년 5월 1일 힐러리 로댐 클린턴 전 장관이 ‘자신의 임기 중 가장 극적인 사건’이라고 밝힌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그가 장관으로 일하던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큰 변화의 물결이 일렁이던 때였다. 아시아에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영토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는 끊임없이 테러가 일어났고, 유럽에서는 그리스 등 남부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심각한 경제위기가 발생했다. 중동에서는 ‘아랍의 봄’이라 불린 장기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대규모 민중 시위가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30~40년간 독재했던 정치 지도자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했고, 리비아의 카다피 대통령이 성난 군중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유혈 사태를 반복했으며, 시리아에서는 정부가 민주화 시위를 하러 거리로 나온 국민에게 총을 쏘고 살상무기를 살포하는 등 대량 학살이 발생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런 문제들에 깊숙이 개입해 엉킨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그는 취임 후 첫 방문지로 아시아를 택했다. 일본・한국・ 인도네시아・중국 순으로 방문했다.

중국에는 인권과 환경 문제에 대해 자국내 강력한 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관료들에게 미국이 진심으로 관계 개선을 원하고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의 하나는 중국 학생과 미국 학생의 적극적인 교류였다. 그는 “더 많은 미국 학생들을 중국에 보내는 일을 우선순위로 삼아 4년간 10만 명을 보내겠다”고 목표를 세웠다. 중동에서는 전쟁 직전까지 갔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 협정을 성사시키는 외교력을 발휘했다. 2011년 5월에는 오사마 빈 라덴의 은둔지를 급습한 암호명 ‘넵튠스피어’ 작전에 관여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때로는 강대국이 행사할 수 있는 권위로, 때로는 이성이 아닌 감성적인 접근으로 동맹국들의 지원을 얻기 위해 애썼다. 어떤 나라를 방문해도 반드시 대학생과 시민활동가들을 만나 미국의 대외정책을 설명하고 그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200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화여대에서 대학생들을 만나 강연하고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2011년 6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함께. 클린턴 전 장관은 메르켈 총리를 유머감각이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여성들은 나와 사적인 관계라고 느끼는 듯했고, 놀랍게도 내가 먼 나라에서 온 정부 관료가 아니라 친구나 멘토인 양 편안하고 자신 있게 말했다. 나는 그들의 존경에 합당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여러 분쟁국 가운데 특히 시리아 내전 사태를 “사악한 난제”라고 부르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시리아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으로 수십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45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국이 직접 시리아 반군을 무장시키는 계획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대해 “말싸움에서 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지는 건 싫다. 그러나 최종 결정은 대통령의 몫이었고 나는 그의 신중한 결정을 존중했다”고 소회를 남겼다.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

2013년 2월 1일 클린턴 전 장관이 퇴임식에서 직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스마트 파워’라는 외교 기조를 지향한다. 스마트 파워의 성공을 위해 대외정책의 전통적인 도구들인 외교술, 개발원조, 군사력을 통합시키는 한편, 민간부문의 에너지와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시민사회라고 부르는 활동가, 조직가, 문제해결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과제를 수행해 스스로 미래를 형성해나가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오늘날처럼 서로 과도하게 연결된 세계에서는 정부뿐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능력이 국가안보 전략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20여 년을 공적인 자리에 있었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수많은 정적과 언론매체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는 “나를 겨눈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종종 질문을 던져보았다”면서 나름대로 자신이 얻은 해답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공적 생활을 하기로 선택했다면 코뿔소처럼 낯이 두꺼워져야 한다. 둘째,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개인감정을 싣지 말아야 한다. 비판의 동기가 당파적인 문제인지, 이념적, 상업적 혹은 성차별적 문제인지 파악하고 분석해 내가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아본 다음 나머지는 버리자. 셋째, 정계에서는 옷, 체형 그리고 헤어스타일까지 여성에게 끈질기게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 여기에 좌절해서는 안 된다. 미소를 지으며 계속 나아가라.
  • 201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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