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겸 안무가 조양희

모든 무대가 제게는 꿈의 무대죠

글 : 이상범 인턴기자(성균관대 3학년)  / 사진 : 김선아 

지난 5월, 제34회 국제현대무용제 - MODAFE 2015(이하 모다페)가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춤, 삶을 수놓다’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번 축제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의 예술단체와 아티스트들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가녀린 몸으로 무대를 휘어잡은 무용가가 있었다. 현대무용가 겸 안무가 조양희(42)다.
조양희를 처음 만난 건 잠원동의 한 스튜디오에서다. 계단을 내려오는 모습에 자연스레 모든 시선이 집중됐다. 178cm의 키, 살짝 올라간 눈꼬리 그리고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탄탄한 몸. 그는 타고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지난 20년간 한국 무용계에서 입지를 다졌다. 학창 시절 수상한 제8회 현대춤협회 콩쿠르 대상, 제25회 동아무용콩쿠르 금상 등을 시작으로 올해 열린 댄스비전 시상식에서 최고무용가상을 받기까지, 많은 땀을 흘렸다.


늦은 시작, 꾸준한 발전

그는 어릴 때부터 무용을 한 것이 아니고, 예술고등학교 출신도 아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무용을 배웠어요. 당시 학교 무용 선생님이 키가 크고 몸도 유연하니 배워보지 않겠느냐 제안하시더라고요. 선생님 의지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강력하게 반대하던 부모님까지 설득하셨어요. 성적이 떨어지면 바로 관두기로 약속하고 공부와 무용을 병행했죠. 어린 나이에도 절실했던지 더 열심히 배우는 계기가 됐고요.”

어머니는 한국무용을 배우다 집안의 반대로 미술을 전공했다. 무용가로서 고충을 잘 알기에 딸에 대한 걱정이 컸다.

경험 삼아 출전한 각종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에 진학했다.

“나름 유연성과 순발력이 있었는지 빨리 적응했어요. 그런데 대학에 가서 보니 위축되더라고요. 대회에서 상도 받았던 터라 주위 관심은 큰데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꼈고요. 예고 출신 친구들도 많아 자신감이 떨어졌죠. 수업에서도 점점 뒤로 물러나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생각을 바꿨어요.”


사람들은 조양희의 강점으로 탁월한 신체 조건을 말하지만, 그의 무기는 성실함이다. 늦은 만큼 꾸준히, 천천히 갔다.

“친구들에 비해 시작이 늦어 배울 게 많았어도 좋았어요. 알아가는 즐거움을 깨달은 거죠. 늘 남보다 많이 배워야 하니 수업에 결석한 적도 없었네요. 지도교수였던 조은미 선생님이 그런 점을 좋게 보셔서 다양한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그는 대학원 진학과 동시에 현대무용단 ‘탐’에 들어갔다. 탐은 이화여대 무용과 대학원생들이 1980년 창단한 단체로 조은미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탐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이제는 그의 무대가 탐 자체다.

조명 아래서 우아한 선을 그리는 이 무용가의 고민거리는 식습관이다.

“먹는 걸 좋아해서 문제랍니다. 특히 밀가루요.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떡볶이는 이틀에 한 번 꼭 먹어줘야 해요. 반대로 몸에 좋은 건강식은 싫어하는데, 요즘은 샐러드라도 조금씩 먹고 있어요. 어찌 됐든 보여주는 무대잖아요. 저는 키가 커서 조금만 살이 쪄도 도드라져 보이더라고요. 살도 금방 찌는 편이고요. 평소에 운동도 귀찮아하니 공연이 제게는 자기 관리죠. 무용 안 했으면 대책 없었을 거예요(웃음).”


백색소음을 주제로 관계의 본질 탐구

모다페에서 준비한 솔로 공연의 제목은 ‘백색소음(일정한 주파수를 가진 소음)’이다. 보통 백색소음은 빗소리, 바람소리처럼 주위 소음을 덮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조양희는 이를 비틀었다. “백색소음을 안정적인 소음이라고들 말하지만 사실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한테 시끄러운 소리가 누군가에겐 백색소음으로 들리고, 반면 나에겐 음악이어도 어떤 이에겐 거슬릴 수 있어요. 소리는 사람들의 감각에 따라 부딪치고 적응되겠죠. 이런 현상이 관계의 본질 아닐까요? 저에게 잡음이나 소음은 인간관계의 갈등과 같아요. 무대에서는 백색소음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릴 거예요. 소리에 따른 몸의 반응을 주목해주세요.”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댄스 경연 프로그램으로 인해 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대무용은 어려운 예술이다. 허공을 가르는 무용수들의 춤 동작은 추상적이다. 대중은 공연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현대무용이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 건 상징적인 동작 때문이죠. 그런 이유로 춤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일 수밖에 없어요. 관객이 느끼는 그대로 정답은 없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감상하면 좋겠어요. 이해를 못 해도 좋고요. 무용수만 봐도 되고 이미지만 느껴도 충분해요.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도 대중을 외면한 채 순수예술만을 바라보고 싶지는 않아요. 다만 잘할 수 있는 건 현대무용인데 이를 어설프게 바꾸진 않으려고요. 작품에 온전히 집중해서 관객들을 흡수하고 싶어요.”

그의 바람은 통했다. 작년에는 서울 국제안무페스티벌 참가자 중 이례적으로 핀란드에 초청되어 공연을 다녀왔다. 그때 선보인 작품은 〈중얼거리는 사막Ⅱ〉(2007). 음악 하나 바꾸지 않은 8년 전 작품 속에서 15년 전 의상을 입었다.

올곧게 가는 그의 무대는 갈라쇼의 엔딩을 장식했다. 가장 잘하는 데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다.


조양희가 존경하는 무용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대에 오르는 누군가다. 동지애를 느낀다고 했다.

“잘하든 못하든 활동을 이어가는 분은 대단하다고 느껴요. 선후배 상관없이요. 무대에 서는 거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남 같지 않고요. 직접 안무를 만들고부터는 안무가들도 존경스러워요. 무대 동선, 의상, 조명 등 안무가의 영역은 끝이 없으니까요.”

남은 2015년도 달려야 한다. 탐 35주년 정기공연을 마치고, 8월에는 이스라엘 공연이 잡혀 있다.

“20대에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죠. 좋은 평가도 받고 싶고요. 지금은 아니에요. 모든 기회가 소중합니다. 꾸준히 활동을 이어간다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라 모든 무대가 저에겐 꿈같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촬영이 진행됐다. 숨을 죽이고 그를 바라봤다. 검은 롱 드레스를 입은 그는 손끝에도 표정을 담았다. 몸짓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진다.
  • 201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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