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계촌별빛오케스트라

초등학생들이 빚어낸 클래식 선율, 산골마을을 변화시키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 계수나무가 늘어서 있어 ‘계촌(桂村)’이라 불리는 이 마을의 계촌초등학교(교장 최영규)를 찾았다. 산으로 둘러싸인 아담한 학교에 들어서자 뜻밖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곡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린 학생들이 바이올린·첼로·더블베이스·플루트·클라리넷·타악기 등 갖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환상적인 화음을 빚어내고 있었다.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의 연주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전교생이 오케스트라 단원

“자, 다음에는 뭘 연주할까?”

지휘자 선생님의 질문에 제각각 큰소리로 대답하던 아이들은 연주를 시작하자 곧장 진지한 표정으로 악보를 들여다봤다.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까지 진지하게 음악에 몰입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학교의 전교생 40여 명으로 이뤄진 계촌별빛오케스트라다. 오케스트라를 담당하고 있는 허동현 교사는 “학년 초에 비해 뒤로 갈수록 아이들의 연주가 나날이 좋아집니다”라고 한다. 매년 6학년 학생들이 졸업하고 1학년 학생들이 입학하면서 오케스트라 단원이 바뀌기 때문이다. 1학년에 입학하면 예비단원으로 기초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후 정식 단원이 된다.

계촌별빛오케스트라가 처음 생긴 것은 2009년 3월. 방과후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워본 학생들이 3명 있을 뿐 음악과는 거리가 먼 농촌학교 학생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든다는 게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학부모들도 “애들한테 음악을 가르쳐 뭐 할 거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릉시교향악단 창단멤버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당시 권오이 교장과 원주리코더교육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경우 교사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학교 예산으로 악기를 구입하고 선생님들을 초빙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12월 창단연주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구제역으로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6학년생이 1년 동안 열심히 갈고닦은 실력을 보여주지도 못하고 졸업하는 게 안타까웠던 학교는 2010년 2월 졸업식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졸업생들이 후배들과 함께 ‘위풍당당 행진곡’ ‘송어’ 등을 연주한 졸업식은 큰 화제를 모았고, 계촌초등학교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한 TV 음악 프로그램은 이 학교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날로 학생 수가 줄던 산골학교로 전학 오는 학생도 많아졌다. 계촌초등학교 학생들은 동계올림픽의 평창유치에도 작은 힘을 보탰다.

2011년 2월 IOC 실사단이 평창을 방문하던 날 열린 ‘2018 동계올림픽 평창유치 기원 연주회’에 참여하고, 2011년 7월에는 ‘평창유치 성공 기념 음악회’ 무대에 서서 기쁨을 만끽했다. ‘학생오케스트라 운영학교’로 지정돼 교과부의 지원을 받아 악기도 더 많이 구입하고, 강사 수도 늘면서 오케스트라는 발전을 거듭했다. 2012년 여름방학에는 경기도 오산시 학생들로 구성된 ‘물향기엘시스테마오케스트라’를 초청해 4박5일 연합캠프를 했다. 함께 먹고 자며 연습을 거듭했던 학생들은 캠프 마지막 날 주민들을 초청해 〈한여름밤의 음악회〉를 열었다. 필리핀・제주도 등지로 연주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기념 연주회, 대관령국제음악제에도 참여하는 등 계촌별빛오케스트라는 이제 평창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여름밤의 음악회〉는 주민뿐 아니라 피서 온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이 마을 최고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매년 7월 말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에 학교 운동장에 만든 특설무대에서 연주하는데, 호응이 정말 좋습니다. 아이들은 3박4일 캠프를 하면서 연주회를 준비하고요.”

지난해 열린 〈한여름밤의 음악회〉에는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헝가리안 무곡 5번’ ‘윌리엄텔 서곡’ 등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영화음악인 ‘콰이강의 다리’,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가요인 ‘내 나이가 어때서’까지 연주했다. 나이 많은 관객까지 배려한 선곡이다. 지휘를 맡고 있는 이영헌씨는 오스트리아 유학 후 부산시립교향악단, 인천시립교향악단 등에서 활동해온 바순 연주자. 2011년부터 관악기 지도로 아이들과 인연을 맺어오다 지난해부터 지휘를 맡고 있다. 그는 아이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기 위해 아예 평창으로 이사했다. 오케스트라 지도 선생님 중에는 유학파도 많다고 한다.


음악으로 하나 된 아이들


“전교생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한다는 말에 흥미가 생겨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학예회 수준이겠지 생각하고 왔다가 아이들의 음악 수준이나 진지한 태도에 놀랐죠. ‘음악을 계속 공부해 전문 연주자가 되었으면’ 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도 있습니다.”

허동현 교사는 “여러 학교를 다녀봤지만 이렇게 착한 아이들을 별로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농촌학교의 특성상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와 살거나 다문화가정,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거친 아이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들의 정서가 안정되어 있습니다. 음악이 정서를 순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느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는 게 몸에 익은 것 같습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진단을 받은 후 도시학교에서 전학 온 아이가 완전히 정상이 된 예도 있으니까요.”


1년에 10여 차례 단복을 차려입고 무대에 서면서 아이들은 자신감과 자긍심을 키우고, 의젓한 태도도 배우게 되었다. 계촌초등학교에서는 음악이 일상화되어 있다. 1주일에 네 번 방과후교실 시간에 90분씩 악기별 연습과 합주 연습을 하고, 매일 점심시간이면 10분씩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학년별로 돌아가며 학교의 독도영상 앞에서 연주를 하는 〈독도음악회〉다. 수요일에는 미리 연습한 동요를 함께 부르는 동요조회를 한다. 현장학습을 가는 버스 안에서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가요가 아니라 동요를 부른다고 한다. 7월 〈한여름밤의 음악회〉 외에도 가을이면 전교생이 합창이나 중창으로 동요를 부르는 〈계수나무 동요부르기 대회〉가 열리고, 연말에는 평창문화예술관에서 송년콘서트를 한다. 병원까지 찾아가 ‘병원음악회’를 열어 환자들에게 음악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일찍이 ‘재능기부’를 경험하는 기회다. 초등학교뿐 아니라 계촌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원생들도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2012년에는 계촌중학교에도 오케스트라가 생겨 계촌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중학교에 가서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사교육기관이 전혀 없는 이곳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자연과 음악으로 꽉 채워질 것 같다.


작은 산골마을이었던 계촌마을은 이제 본격적인 클래식 마을로 변신하고 있다.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게 된 것. 4월부터 한예종 졸업생 7명이 매주 이 학교를 찾아 마스터 클래스를 열고 있고, 오는 7월 10~12일에는 이 마을에서 〈계촌클래식축제〉가 열린다. 피아니스트 김태형,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신지아, 첼리스트 여윤수와 세종유스오케스트라, 원주시립교향악단 등이 계촌별빛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를 펼친다. 사람이 생활하기 가장 쾌적하다는 해발 700m 고원지대에 자리 잡아 점차 외지인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있는 계촌마을. 올여름 이곳에서 열리는 클래식축제가 산골마을을 찾는 도시인의 마음까지 촉촉이 적셔줄 것 같다.
  • 2015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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