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미술축제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 참가하는
이매리

“나고 자란 땅이 미술가로서 나를 만들고 키웠죠”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베니스비엔날레를 특별히 의식하면서 작품을 제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탐구해오던 방향대로 좇아가다 보니 이런 작품이 나왔네요. 저 나름의 계획으로 작품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운 좋게 큰 전시에서 발표할 기회가 생긴 거지요. 비엔날레나 광주의 작은 갤러리나 제가 작품을 대하는 열정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5월 7일 개막하는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에 참여하는 미술작가 이매리. 그는 중국 상하이에 있는 히말라야미술관 소속작가로 중국작가들과 함께 전시한다. 세계 최고의 미술축제로 꼽히는 베니스비엔날레 참여는 작가로서 영예로운 일이겠지만, 그에게서 그다지 흥분한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스 크레타 섬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서도 3월 25일부터 11월까지 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11월 이후에는 아테네의 한 갤러리로 옮겨 전시가 이어진다.

“그리스 전시는 베니스비엔날레 준비로 어렵겠다고 고사했지만, 결국 하게 되었어요. 비엔날레 참여 후 그리스로 갈 예정입니다.”

광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비엔날레에서 전시할 작품 마무리 작업으로 분주했다. 회화와 사진,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어온 그는 이번에 동영상 작업 ‘시 배달(Poetry Delivery)’을 선보인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자동차로 달리며 스쳐가는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노정(路程)과 50개국 사람들이 자국의 민족시를 읽는 동영상이 겹쳐진다. 30분짜리 다채널 동영상과 50개 스피커를 동원한 사운드가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도시와 민족의 생성과 소멸을 병치하면서 인간 존재, 삶과 죽음의 이야기까지 하고 싶었습니다. 광주국제교류센터를 통해 만난 외국인 학생들에게 그 나라의 대표적인 민족시를 한 편씩 낭송해달라고 했지요. 50개의 스피커를 통해 동시에 들리는 민족시가 독특한 울림을 주리라 기대합니다. 하나의 국가와 민족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은 정치와 권력, 자본의 논리와 맞닿아 있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설치작품 ‘Into Silence’ , 2013
회화에서 출발해 입체・설치・영상 등 끊임없이 변신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작가는 이제 작품에 언어와 소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목포대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조선대에서 석사・박사를 마친 그는 서울에 올라가 공부하거나 활동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나고 자란 땅이 그를 작가로 키웠다 믿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지만 세계 미술계가 먼저 그를 알아보았다. 광주비엔날레 등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의 작품을 본 미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미술사학자, 큐레이터들이 그를 세계 미술계에 소개했다. 그 덕분에 2000년대부터 한국뿐 아니라 뉴욕・베이징・광저우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고, 프랑스・중국・일본・독일・불가리아 등지에서 그룹전과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세계의 미술전문가들은 미니멀리즘, 포스트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옵티컬아트, 팝아트 등 현대미술의 이슈들이 녹아 있으면서도 세련된 방식으로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그의 작품에 주목했다. 서구 모더니즘과 동양적인 감성의 만남으로 평가하면서 작품의 정신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음과 양, 물질과 정신, 존재와 비존재를 아우르는 게 그의 작품의 특징이다.

이매리 작가가 회화에서 다양한 매체로 옮겨간 것은 2003년 무렵. 2003년의 드로잉은 추상표현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네모난 합판 위에 다시 정사각형 합판 4개를 올려놓은 후 물감을 칠하고, 뿌리고, 긁기도 한 작품. 모노크롬 추상과 액션페인팅을 합해놓은 것 같으면서도 미국의 액션페인팅에 비해 고요하고 명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는 다시 합판으로 거대한 정육면체를 만든 후 대지의 이미지를 투사하기도 했다.

“회화 작업을 할 때 작품이 잘 팔렸어요. 통장에 돈이 들어왔지만, 내 작품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죠. 어느 순간 허무해지더라고요. 그 후 다양한 매체를 시도했죠.”


작가의 자아를 상징하는 하이힐

이탈리아 시에나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설치작품 ‘Road Project 1’, 2013
그는 ‘하이힐 작가’로도 불린다. 작품에 하이힐을 사용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2005년 겨울 그는 400×250cm 직육면체 구조물에 빨강색 하이힐의 이미지가 통통 튀어 오르고 뒤집히면서 움직이는 작품을 발표했다. 하이힐은 그의 자아를 대신하는 존재였다. 하이힐과 함께 ‘COMMUNICATION’이란 텍스트가 등장해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그의 열망을 보여준다.

“그때그때 느끼는 감정의 흐름이 작품에 반영되는 편입니다. 하이힐은 나를 드러내고 싶은 뒤늦은 욕망과 함께 시작됐죠. 유교적인 교육자 집안에서 성장했기에 어려서부터 나를 드러내는 게 조심스러웠습니다. 주변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자신을 억누르는 순종적인 성격이었죠. 결혼 후에는 공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그랬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틀을 깨고 싶더라고요. 계속해오던 평면 작업도 갇힌 느낌이 들었고요.”

하이힐을 사진으로 촬영한 후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었던 그는 2008년 길이 3m, 높이 2m의 거대한 하이힐을 실물로 등장시켰다.

“내면의 힘이 생겼다 할까요? 한 인간으로서, 작가로서 나를 표현하는 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주체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음의 결단을 했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새로 설정하고, 작가로서도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Absolute Space R-01’, 2010
본래 키보다 높여주는 하이힐은 작가에게 사회적 자신감, 힘을 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대학 다닐 때는 자그맣고 조용한 여학생이었다는 그. 일찍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아 장성시키면서도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내공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당장 굉장한 작가가 되겠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그저 ‘죽을 때까지 작업하다 보면 뭔가는 되겠지’라고 믿었죠. 대학시절 미술사 공부를 하면서 매력을 느꼈어요. ‘지나간 사조를 따라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회의했고, 나만의 작품세계를 찾아내기 위해 고심했죠. 작업하다 고갈되는 느낌이 들면 공부로 재충전한 게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10년 만에 석사, 다시 10년 만에 미술학 박사학위를 땄죠.”

그의 작업이 언제나 젊어 보이는 것도 항상 공부하고 탐구해왔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시에나 아트 인스티튜트(Siena Art Institute)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그는 이를 계기로 ‘로드 프로젝트(road project)’를 시작했다. 종이로 만든 흰색 하이힐 무리가 시에나 시내 구석구석을 누볐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하이힐 무리가 월남사지, 다산초당, 월봉서원 등 강진의 유서 깊은 곳을 다니다 서울까지 길을 떠났다. 빨간 하이힐이 작가의 자아를 대신한다면, 흰색 하이힐 무리는 ‘확장된 자아’가 아닐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발표하는 작품도 ‘로드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읽힌다.

‘Portraits of Shoe’, 2011
50개국 사람들이 민족시를 읽었듯이 그에게 있어서 강진은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의 출발점이었다.

“토스카나 지방의 시에나는 기후 좋기로 유명합니다. 곡물과 과일 모두 풍성하고 음식 문화도 발달했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토스카나 출신이라는 것을 봐도 예술가와 땅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시에나의 기후나 토양이 모두 강진과 비슷해 편안한 느낌이었습니다. 시에나처럼 강진도 과일과 차가 잘되죠. 강진에 아버지 고향이라 어릴 적 명절마다 찾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 게 유전자 속에 각인되나 봐요.”

그가 살던 곳을 떠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데생 연습해놓은 것을 보면 누구나 똑같았어요. 서울 올라가면 그사이에서 경쟁하느라 나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어요. 이곳에 살면서 이 지역의 색깔을 시각화한 게 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꿋꿋이 제 길을 가는 그를 세계미술계에서 먼저 알아보았으니 그의 소신이 옳았다 할 수 있다. 그는 베니스비엔날레 역시 “나를 별다르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 201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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