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로 승부하는 ‘뮤지컬의 여왕’ 김선영

‘사랑’ 주제로 5월 LG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남자 배우의 호연으로 유명한 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공연을 보고 난 후 상대역이던 여자 배우의 이름을 찾아봤다.
김선영이었다. 뮤지컬 팬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제법 있다. 오직 무대로 승부하는 배우, 김선영을 만났다.
난 싫어 이런 삶 / 인형 같은 내 모습 / 난 당신의 소유물이 아냐 / 내 주인은 나야
뮤지컬 〈엘리자벳〉, 나는 나만의 것 中


황제의 눈에 띄어 오스트리아의 왕후가 된 엘리자벳, 그는 뭇 사람의 동경과 사랑을 받았다. 모든 것을 다 가졌으나 단 하나 자유를 갖지 못했던 여인, 화려한 황실에서 눈부신 드레스를 입고도 행복하지 않았던 엘리자벳은 결국 죽음으로 자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날려 보낸다.

많은 이들이 배우 김선영을 ‘뮤지컬의 여왕’이라고 부른다. 오랜 팬들의 애칭이다. 그는 그 칭호를 고마워하면서도 연연하지 않는다. 왕후의 연회복을 입고 고고하게 무대 위를 누비는가 싶으면(〈엘리자벳〉), 어느새 쇼걸 루시(〈지킬 앤 하이드〉)가 되어 몸을 던지고, 때로는 작부 알돈자(〈맨오브라만차〉)가 되어 삶의 고단함을 노래한다. 특히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와 〈맨오브라만차〉의 알돈자는 김선영이 각별히 사랑한 인물이기도 하다.

“〈지킬 앤 하이드〉는 8년 동안 했어요. 제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무대에서는 ‘이 인물과 이 의상을 몹시 그리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루시를 하는 동안 저 스스로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어디까지 달라지는지 보고 싶었고, 그 여정이 배우로서 제가 성숙하는 과정과 같이 흘렀어요. 〈맨오브라만차〉도 그런 마음으로 했어요. 세 번 공연했는데, 마지막에는 저 스스로 ‘이번이 마지막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둘 다 엄청 힘든데 티가 안 나는 역이에요. 제가 그런 인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두 시간 동안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 과정을요.”

〈지킬 앤 하이드〉에 두 개의 인격 지킬과 하이드가 있다면, 반대편에는 엠마와 루시가 있다. 고결한 여인 엠마와 밑바닥의 여인 루시, 두 여인은 똑같이 지킬을 사랑하지만 루시는 그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대신 루시는 변화한다. 버려진 여인에서 사랑받는 여인으로. 〈맨오브라만차〉는 기사 돈키호테의 이야기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보고 나면 알돈자의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돈키호테가 창녀 알돈자를 지키고자 할 때, 알돈자는 기꺼이 성녀 둘시네아가 되어 돈키호테를 진정한 기사로 만든다. 이 인물들 속에 김선영이 있다.


날마다 묻곤 해 / 나에게 누구야 넌 누구 / 누가 알까 너는 알까 / 나는 누구일까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나는 누구일까 中


“제 몸에 있는 감각이나 감성은 어린 시절 영향이 커요. 위로 오빠가 셋이 있는데 큰오빠는 혼자 배워서 피아노를 쳤어요. 둘째 오빠는 기타를 치면서 늘 노래를 했고요. 셋째 오빠는 시를 잘 써서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어요. 근데 이 오빠들이 학생운동도 열심히 했거든요. 오빠들이 당시 광주에 내려가기 전에 작전을 짜던 긴박한 분위기도 기억이 나요. 그때도 궁금했어요. ‘저럴 수 있는 힘이 뭘까, 뭘 위해 저렇게 하는 걸까’, 그게 뭔지 모르면서도 멋있었어요. 제가 연기한 인물들도 마냥 아름답거나 예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뭔가 이야기를 지닌 인물을 연기할 때 마음이 더 두근거려요.”

김선영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노래에 재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낀 건 도 대표로 노래대회에 나갔을 때다. 함께 결승에 오른 경쟁자는 어릴 적부터 음악 쪽으로 전문 교육을 받아 기교나 실력 면에서 월등했다. 우승은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심사위원은 “노래로 전달하는 감성이 남다르다”며 우승자로 김선영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노래의 길을 가겠구나’라고 느꼈다. 당시 노래를 전공하고픈 학생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성악과’가 유일했다. 실용음악과나 뮤지컬음악과가 생기기 전이었다. 노래 부르는 것은 좋았는데, 성악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무대공포증도 생겼다.

“제가 맡은 역할들이 강렬해서인지 저는 당연히 안 떨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웃음). 어릴 적 성악으로 처음 무대에 서다 보니까 긴장을 많이 했어요. 혼자 연습할 때는 잘하다가 사람들이 많으면 호흡이 엉키곤 했거든요. ‘나는 노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했죠. 졸업하고 KBS 합창단에 들어가서 다양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에 서는 게 좀 더 편안해졌죠.”

성악에서 합창단으로, 합창단에서 다시 뮤지컬로 가기까기 먼 길을 돌았다. 뮤지컬로 첫 무대에 선 게 스물여섯,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닌데 당시에는 엄청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소중했다고 했다.

“제가 처음 맡은 역할이 〈페임〉의 뚱뚱한 흑인 메이블 역이었어요. 당시에는 분장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옷 안에 솜을 잔뜩 넣고 연기했죠. 공연이 끝나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도 행복했어요.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이 장르가 나한테 맞구나’라고 처음으로 느꼈죠.”

관객들도 같은 마음을 느꼈는지 김선영은 첫 작품으로 그해 신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7년이 지난 2007년 김선영은 한국뮤지컬대상과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


이 모든 것을 이룬 후에도 / 여전히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하다면 / 믿기 힘들 거예요
뮤지컬 〈에비타〉, 슬퍼 말아요 아르헨티나 中



그에게 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은 〈에비타〉, ‘성녀인가, 악녀인가’ 논란이 멈추지 않는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의 이야기다. 당시 그는 수상소감에서 “청주에서 자란 시골 아이가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하다”고, “이런 상은 마흔에나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일찍 받았다”고 감격했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 셋, 에바 페론이 세상을 떠난 나이와 같았다.

“청주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올라와서 완전 깨졌죠. 그래서 〈에비타〉에서 주인공이 처음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서 부른 노래가 굉장히 와 닿았어요. 사실 스무 살에는 서른이면 인생을 알 것 같잖아요. 여우주연상 받을 땐 마흔이 먼 나이인 것 같았는데, 마흔을 지나고 보니 마흔에도 똑같아요. ‘불혹’이라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 같았는데 여전히 고민이 있어요. 자아에 대한 고민이나 성찰은 멈추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지난해 김선영은 〈위키드〉의 초록마녀 엘파바로 무대에 올랐다. 체력 소모가 엄청난 작품이었다. 거기다 기존의 팀에 중간에 투입돼 홀로 연습해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당시 김선영은 글린다 역할로 함께 투입된 배우 김소현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 “우리가 해온 작품들과 시간을 믿자.” 스스로에게 건네는 주문이기도 했다.

“연기에는 그 사람의 인생이 묻어나요. 참 신기하죠. 그래서 삶을 절제하려고 해요. 최대한 일상을 단순하고 건강하게 가야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새로운 작품을 앞두고 불안하거나 걱정이 될 때 그런 생각을 해요. 지금껏 해온 길이 우리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을 거라고요. 그래도 이번 작품은 너무 힘들었어요. 저희가 역대 최고령 엘파바와 글린다였거든요 (웃음). 〈위키드〉 마치고는 한동안 노래를 안 하고 쉬었어요.”

그가 한 달 전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아니 노래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5월 4일과 5일 양일간 LG아트센터에서 김선영 단독 콘서트 〈The Queen’s Love Letter〉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번 콘서트는 ‘사랑’을 테마로 하고 싶었어요. 지금껏 많은 분에게 사랑받아서 여기까지 왔으니까요. 또 제가 보내는 사랑을 느끼는 분들이 제 공연에 오신 거고요. 워낙 어릴 적부터 노래를 해와서, 노래가 저를 건드는 감각에 무뎌진 면이 있었어요. 이번에 노래를 배우면서 ‘노래의 힘’을 다시 배우고 있어요.”

사람마다 슬럼프를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 별일 아닌데 굉장히 힘들어할 수도 있고, 큰일인데 잘 헤쳐 나갈 수도 있다. 김선영은 누군가 손을 내밀면 잡아준다. 손을 잡고 “다 지나갈 거야”라고 말해준다. 안 지나가면 같이 살아보자고. 이번 콘서트는 김선영이 그런 마음을 노래에 담아 관객에게 건네는 자리다.

“슬럼프로 힘들어하는 후배나 동료들이 있을 때도 섣불리 말을 건네지 않아요. 그냥 지켜볼 때가 많아요. 저도 그런 시간을 지나왔으니까요. 지나보면 무대에 서는 순간순간이 저를 알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저는 저를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나이에야 비로소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요. 제가 쓴 가사에도 그런 말이 나와요. ‘이제야 내가 나를 알겠고, 이제야 사랑을 알겠다’, 스무 살, 서른 살이 아니라 지금이요. 그래서 인생은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2015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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