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힐링극 〈하늘아〉 뮤지컬 제작팀 연출가 이효숙,
배우 원현지·김영환·손예슬·김미경

어두움을 무서워하지 마, 그림자도 네 친구야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할 순 없어도, 주어진 자리에서 무언가는 할 수 있다. 연출가는 연출로, 배우는 연기로 위로한다.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6개월째 장기 공연하며 꾸준히 관객의 발길을 이끄는 공연이 있다. 울 자리가 없어 신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 와서 마음껏 울라며 관객을 초대하는 뮤지컬 〈하늘아〉팀을 만났다.
왼쪽부터 김영환·김미경·원현지.
여고생 하늘이는 기타도 잘 치고 랩도 잘한다. 노래하는 것도,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영감이 뭉글뭉글 피어나 그 자리에서 노트를 펴고 가사를 적는다. 하늘이 노래에 가장 많은 영감을 주는 건 엄마 순정이다.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빠와 지금도 대화를 나누는 엄마는 핸드드립 커피만을 고집하는 커피 바리스타다.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공연 중인 감성 힐링극 〈하늘아〉, 작가의 경험과 시대의 경험이 한데 버무려져 한 편의 뮤지컬이 탄생했다.

“저는 두 딸의 엄마예요.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이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첫아이를 낳고 이틀 정도 지나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어요. 그 기억이 생생한데 지난해 세월호 사건을 보고는 한동안 제대로 살 수가 없더라고요. 실제로 엄마와 딸 이야기는 제 이야기예요. 제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랑 친구처럼 자랐거든요.”(이효숙 연출)

하늘이는 곧 있을 오디션을 앞두고 작곡에 열심이다. 노래의 주제는 ‘엄마, 나는 어디서 왔어?’, 나비가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하늘이를 가졌다는 엄마는 어릴 적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하루는 하늘이가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서 엉엉 울었다. 누가 계속 자기를 따라온다면서. 순정은 하늘을 안고 이렇게 말해준다.

“어두움을 무서워 하지 마, 그림자도 네 친구야.”

그 후로 하늘이는 집에 들어올 때면 “그림자, 안녕~ 난 집에 간다”라고 인사한다.

“저희 공연을 보시는 분들은 하늘이가 사라지는 3막을 많이 생각하고 오세요. 그러다 보면 보는 내내 긴장하시거든요. 저희 공연의 중점은 1막과 2막 두 사람의 삶이에요.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한때요.”(엄마 순정 역_원현지)

실제로 그렇다. 하늘이가 무대에서 사라지면 불안해진다. 이제 영영 못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엄마가 걱정할까봐 틈틈이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기타를 사는 저 속 깊은 아이가, 수학여행 간다고 산 운동화 한 켤레만 남기고 사라지는 건 아닐까.

“작품을 올리기로 마음먹고 저랑 스태프가 관련된 기사와 모든 인터뷰를 다 읽고 기다렸어요. 기자나 작가들이 인터뷰나 취재한 내용이 추가되면 그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가족 이야기도 다 찾아보고요. 한 아이 한 아이 살펴보니 그중에 가수 지망생이었던 친구가 있더라고요. 하늘이의 모티프가 된 아이죠.”(이효숙 연출)

제작을 맡은 이효숙 연출가.
엄마 역을 맡은 원현지는 이제 30대다. 한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가까운 분이 그런 일을 겪으셨어요. 아들이 군에서 제대하고 처음 친구들이랑 차를 타고 나갔는데 사고가 난 거예요. 그분이 아들을 떠나보내고 어떻게 지내시는지를 봤기 때문에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든지 느껴지더라고요.”(원현지)

극 중 악사이자 멀티맨으로 등장하는 배우 김영환은 덕분에 거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공연의 처음과 끝을 함께한다. 그러다 보면 누구보다 공연을 세심하게 보게 된다. 관객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는 것도 그의 몫이다.

“저희 공연은 모녀 관객, 어른 관객이 많아요. 아이들이랑 오시는 분도 있고요. 공연 중에 한 어린이가 울면서 엄마한테 ‘엄마 사랑해’라고 하더라고요.”(김영환)

무대 뒤에서 관객을 배웅하는 이효숙 연출도 혼자 감동받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공연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휴대폰을 열고 엄마한테 전화하는 분이 많아요. “응, 뭐해? 밥은 먹었어?”이런 일상적인 이야기인데도 울컥하더라고요. 저희가 다섯 달째 공연 중인데요. 본 사람이 또 보는 경우가 많아요. 여섯 번 본 사람도 있어요. 그런 분들은 3막이 아니라 앞에 행복한 장면에서 우세요.”(이효숙)

하늘이가 사랑스러울수록, 두 사람이 행복할수록 보는 이들의 마음은 먹먹해진다. 이 일이 참사나 사건이 아니라 평범한 집에서 일어난 하나의 풍경이기 때문이다.

“맑디맑은 하늘이가 곁에 있다가 사라져요. 1시간 동안 제가 충분히 사랑스럽고 꽉 찬 존재로 보여야 하니까 더 열심히 하게 돼요.”(하늘 역_김미경)

하늘이의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다. 속이 깊고 맑은 아이, 그런데 이제는 바라봐야 할 뿐 만질 수는 없는 아이.


엄마 숨 속엔 네가 살아 있어

하늘이 역을 맡은 배우 손예슬(왼쪽).
작품이 시작된 건 하나의 댓글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잊자”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위해 잊는 것일까.

정말 잊고 살 수 있을까.

“연출로는 입봉작이에요. 저 스스로 한 약속은 ‘작품에 시대성을 반영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관객이 선택해주지 않으면 무대에 올릴 수가 없죠. 〈하늘아〉는 이렇게 계속되고 있으니까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심리치료 장면에서도 사람들이 ‘이제 그만 잊어라, 보내줘’라고 하잖아요. 이 말이 이 작품의 시작이었어요. 그 질문이 확대된 게 〈하늘아〉고요. 첫 장면에서 순정은 죽은 남편의 사진을 보면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살거든요. 그 흔적을 끝까지 품고 살아요. 아마 하늘이가 떠난 뒤에도 그렇지 않을까요?”(이효숙)

하늘이가 사라진 텅 빈 무대에서 부르는 순정의 노래는 그런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내 숨 속에 네가 살아 있어”, 숨 쉬는 한 잊을 수가 없다. 이효숙 연출의 말대로 비극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극 중에 등장하는 이웃 할머니는 “왜 저리 착한 사람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누”라고 탄식한다. 그렇게 모두가 탄식과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거창하지 않았다. 연출가는 작품을 만드는 것에서, 배우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요즘 감정표현을 잘 안 하잖아요. 금방 날아가고, 사라지고요. 여기 와서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분노든 슬픔이든 마음껏 쏟아내고 가셨으면 좋겠어요. 밖에서는 내색을 못 하더라도 여기서만큼은요. 저도 평소엔 절제하는 편인데 무대에 서서 관객을 보면 저도 모르게 북받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원현지)

울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오라고 하지만 신파는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 그래서 더 아련한 무대가 펼쳐진다. 뮤지컬 〈하늘아〉는 4월 17일까지 대학로 열린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 02-743-6474
  • 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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