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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하얀 가면을 쓰고 나타난 밤의 태양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민구 〈움직이는달〉

사진제공 : 이상엽
달이 먼저 나를 물기도 한다

줄을 풀고 창문으로 넘어들어온 달이 구석에 나를 몰고 어금니를 드러낸다

오줌발이 얼마나 센지 사방 벽으로 튀어 지워지지 않는다

달은 나무를 잘 탄다

어두운 강을 곧잘 건넌다

물결에 비벼도 지워지지 않는 온순한 발자국은 한겨울 빙판을 내리치는 커다란 해머
수천수만의 얼음조각들이 밤하늘에 박혀 있다

순식간에 하늘을 나는 박새에 오른 달, 민첩하다

고양이 꼬리를 물다가 돌아보는 순간, 지붕 위를 걸어나가며 케케케 웃고 있다

멀쩡한 사내를 부축하는 달, 문지방에 걸터앉은 달, 작두로 깎은 발톱이 거기로 튀었나?
굶주린 소가 여물통을 바라본다

물에 뜬 시체를 가만히 덮고 있는 담요여

상갓집 늦은 조문객이 맨 근사한 타이여

공중에 집 한 채 놓고 숨죽여 울던 검은 짐승은

지금 해와 교미중이다



이 시는 밤과 달을 노래한다.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달과 밤의 송가(頌歌)를 불렀던가! 달은 차서 기울고 기운 뒤 다시 찬다. 고독과 정한의 매개자, 이 달이 차고 기우는 순환은 주기적이다. 시인은 달의 활약상을 묘사한다. 달은 사람을 물고, 아무 데나 오줌을 누고, 나무를 민첩하게 타고 오르고, 지붕 위를 뛰어다니고, 박새를 타고 날고, 그리고 케케케 웃는다. 달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 이 밤은 자연 그대로의 밤이다.

우리 시대에는 100여 년 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숲 속에서 겪은 등급 1의 밤하늘을 만날 수는 없다. 가로등, 주차장 불빛, 24시간 편의점들, 광고판… 따위 인공 야간 조명의 무분별하고 과도한 사용으로 밤의 어둠에는 흠집들이 생겼다. 밤의 야생성은 여기저기 찢기고 너덜너덜해졌다. 내가 거실에서 잠든 밤, 어둠 속 동물과 식물들로 이루어진 생태계는 분주하다. 저 숲 속 동물들은 짝짓기 할 상대를 찾고, 먹이를 찾아 긴 거리를 이동하며, 수분과 먹이 섭취 활동을 하느라 활짝 깨어 있다. 밤은 마땅히 어두워야 하는데, 어둠이 다양한 동물과 식물 생태계를 작동시키는 데 낮의 빛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얻은 것도 많지만 어둠과 밤하늘을 잃은 것은 비극이다. 밤을 밝히는 인공조명이 초래하는 빛 공해는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 우선 사람들은 수면장애를 앓고 내분비계의 교란을 겪었다. 동물들은 “방향 찾기, 포식, 경쟁, 번식 그리고 일일 생체리듬”에 심각한 문제를 겼었다. “곤충들이 가로등 불빛에 끌린다거나, 철새들이 불 켜진 도시 건물이나 방송탑 불빛에 끌린다거나, 해변에서 태어난 바다거북이 엉뚱한 방향으로-가로등과 호텔 간판 쪽으로-향하다가 트럭 바퀴에 깔리거나 포식자에게 쉽사리 잡아먹힌다”. 이렇듯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조류·어류·곤충과 식물의 생태 과정들을 동기화시키는 내부의 일일 생체리듬에 혼란”이 야기됐다.(폴 보가트, 《잃어버린 밤을 찾아서》) 야간 조명이 내쏘는 불빛들이 어둠으로 스민 탓에 진짜 어둠은 사라졌다. 지구 주민의 3분의 2, 그리고 미국과 유럽인의 99퍼센트는 진짜 어둠, 인공 야간 조명으로 훼손되지 않는 진짜 밤을 만나지 못한다.

민구의 시편은 밤에 어둠의 세계를 탐색하는 달을 좇아간다. 아직 밤의 어둠은 오연(傲然)하고 그 속에서 달은 살아 있다. 달과 밤, 달과 고양이는 한 쌍으로 움직인다. 줄을 풀고 창문으로 뛰어 들어와 ‘나’를 구석으로 몰고 어금니를 드러내 위협한다. 어금니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달은 누군가를 물 수도 있겠다. 이때 달은 본성에 따라 움직이는 감각적인 영혼, 이성을 갖지 못한 야생동물이다. 달은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지 않고 팔꿈치와 무릎으로 움직이며, 음식을 먹을 때 얼굴을 접시에 박은 채 핥는다.

달은 나무를 타고, 어두운 강을 건넌다. 달은 종횡으로 움직이는데, 박새를 타고 공중으로 날아오르기도 하고, 고양이 꼬리를 물다가 지붕으로 올라가 케케케 웃기도 한다. 달이 웃는다. 웃음이란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마술이다. 달은 밤의 태양, 암흑세계의 태양이다. 달은 빛을 내지만, 이것은 진짜 빛이 아니다. 달빛은 검정이 바랜 흰 그늘이고, 이것은 음(陰)의 깃[羽]이다. 달은 하얀 가면을 쓰고 움직이며 검정보다 더 검정인 비밀들에게 젖을 먹인다. 비밀들이 빨아대는 달의 젖은 검은 젖이다. 비밀들은 달의 젖을 물고 검은 젖으로 배를 채운다. 비밀들은 검은 젖을 먹고 자라나서 세계의 신화들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빛은 그 과도함으로 죽음을 몰아오고, 어둠은 태고의 심연으로 생명을 품는다. 어둠을 알려면 어둠 속에 있어보아야 한다. 우주는 암흑물질로 가득하고, 어둠은 모든 생명체의 태곳적 고향이다. 우리 모두는 100여 년 전 한 시인은 “등은 아무것도 모른 채 흔들리고 있네/우리의 빛은 거짓말을 하고 있나?/밤이야말로 몇 천 년을 견뎌온/유일한 실재가 아닐까?”(라이너 마리아 릴케, 〈밤〉)라고 썼다. 시원의 어둠은 문명과 멀리 떨어진 사막에서나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빛의 포화로 인해 진짜 어둠은 사라지고, 인류는 밤을 잃어버렸다. 낮과 마찬가지로 밤은 문화와 문명의 중요한 기반 요소들인데, 그 반을 잃은 것이다. 그 대신 대낮같이 밝게 켜진 인공조명이 자연을 통제하고, 일일 생체리듬을 쥐락펴락하며 가짜 낮들을 유포한다. 인공조명의 빛은 필요악이다. 밤, 몇 천 년을 견뎌온 그 유일한 실재. 우리는 밤의 상실과 더불어 어둠이 마련하는 안식과 평안을 잃었다.

밤의 이곳저곳을 떠돌던 달의 마지막 귀착지는 상갓집이다. 누가 죽었을까? 알 수 없다. 죽음이란 해명되지 않은 수수께끼이자 영원을 품은 태고의 어둠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어둠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로 겹친다. 이 죽음이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어둠이 아닌가! 어쨌든 누군가의 부재와 상실의 슬픔으로 상갓집은 이 세상의 가장 어두운 곳이다. 달은 “상갓집 늦은 조문객”으로 나타난다. “공중에 집 한 채 놓고 숨죽여 울던 검은 짐승”이란 무엇인가. 해가 뜬 뒤 빛을 잃은 달에 대한 은유다. 새벽이 밝고 해가 뜨면 달은 죽는다. 달은 어둠이 내려야 부활한다. 돌아오는 달은 새로운 달이다. 시인은 어미 달이 새끼 달을 낳으려고 “해와 교미 중”이라고 쓴다.


민구(1983~)는 인천에서 태어났다.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14년 첫 시집 《배가 산으로 간다》를 펴냈다. 시집에는 시인의 개인사나 가족사가 나오지 않는다. 이 시집의 척추는 ‘달’과 ‘동백’과 ‘방’과 ‘공기’다. ‘달’에 관한 시 네 편, ‘동백’에 관한 시 다섯 편, ‘방’에 관한 시 열세 편, ‘공기’에 관한 시 아홉 편이 주르륵 펼쳐진다. 시인은 제 방에 유폐된 채 익명의 상태로 있는 것을 좋아하는 듯하다. 혼자 사는 게 오랜 습관이 되어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어색하다.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은 채 방의 거울을 보며 “거울아 녹아라/내가 흐르게/흘러나오게”라고 주문을 외거나 “천천히 녹는 거울을/흐르는 평범한 세계”(〈방-거울〉)의 생활에 안주한다. 시인은 방과 달의 몽상가! 칩거가 시인의 취향이라면 몽상은 그의 직업이겠다.
  • 2015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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