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로 〈노트르담 드 파리〉 오리지널 팀
월드투어 무대에 참여한 브레이커 이재범

발레리나를 사랑한 비보이를 기억하시나요?

글 : 오주현 인턴기자(이화여대 졸)  / 사진 : 김선아 

지난 1월, 10년 만에 다시 국내 무대에 오른 프랑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2005년 첫 내한공연에서 세종문화회관 역사상 최단 기간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하며 프랑스 뮤지컬 신드롬을 일으킨 바 있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노트르담 드 파리〉는 1998년 프랑스의 팔레 데 콩그레 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프랑스 국민 뮤지컬이라 불릴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아왔다. 〈노트르담 드 파리〉가 꾸준한 사랑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인 가수와 댄서를 구분했다는 점. 그만큼 노래와 춤의 난도가 높고 둘의 완벽한 분할을 통해 각각의 전문성을 높였다. 세계적인 대작 뮤지컬에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투어 무대에 참여해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한국인 댄서가 있다. 2시간 30분 동안 계속되는 공연에서 강렬한 몸짓으로 무대를 채우고 있는 댄서, 이재범을 만났다.

이재범과 〈노트르담 드 파리〉의 만남은 ‘우연’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춤을 추던 이재범은 2007년 문화부에서 주최하는 비보이 대회인 R16에 참가했다. 그때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며 공연을 본 예술감독이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 라이선스 공연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어진 라이선스 공연에 참여했다. 라이선스 공연을 할 때 오리지널 팀 외국 배우나 연출가가 와서 가끔 지켜보았는데, 이재범의 춤은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의 추천으로 이재범은 오리지널 공연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라이선스 공연에 참여하던 댄서가 오리지널 팀에 합류한 것은 이재범이 처음이다.

“한국인 처음으로 프랑스 대작 뮤지컬에 참여하게 되니 뿌듯했죠. 정말 우연한 기회였거든요. 라이선스 공연을 끝내고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을 하던 중에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병원에 있었습니다. 수술 3일 후에 〈노트르담 드 파리〉 이탈리아 라이선스 버전에서 같이 공연하자는 연락을 받았죠. 어떻게든 이 팀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에 1년이 걸릴 재활을 몇 개월 만에 끝냈습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아시아투어 버전에 참여했습니다.”


그가 처음 춤을 춘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어느 날 형이 친구들과 집에 와서 춤 연습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형 친구 중 한 명이 덤블링을 했는데 그게 무척 멋져 보이는 거예요! 그 뒤로 방송을 보면서 혼자 춤을 따라 하고 연습했어요. 당시 청소년회관에서 춤추는 형들이 있었는데 조그마한 아이가 와서 끼워달라고 하니 안 끼워주더라고요(웃음).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옥상에 올라가 형들 춤을 몰래 따라 하며 익혔습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연습하다 보니 실력이 늘고 주변에서 같이 춤을 추자는 사람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사람들과 모여서 팀 활동을 하고 대회에도 나가다 ‘맥시멈 크루’라는 비보이 메이저 크루에 들어가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현대무용, 애크러배틱, 비보이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이 녹아들어 있어 역동적이고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주인공인 콰지모도가 가면 축제의 왕으로 뽑히는 ‘광인들의 축제’ 장면은 이러한 특징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국내 순수 창작 뮤지컬로 세계 무대로까지 진출하고 있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의 주인공으로도 활동했던 이재범은 다양한 장르의 춤을 소화할 수 있기에 연출가의 주목을 받았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역동적인 춤으로 유명한 뮤지컬인 만큼 댄서들의 체력소모가 대단히 큽니다. ‘기적의 궁전’이라는 장면이 있어요. 솔로 부분이 많은데, 이 장면을 하고 나면 ‘사람이 뛰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대에서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걸을 힘이 없을 정도예요. 공연하고 나면 체력을 다 소모한 기분이 들죠.”

비보이 공연은 비보이가 즉흥적으로 안무를 조금씩 바꿀 수 있지만 뮤지컬은 그렇지 않다. 큰 무대를 비어 보이지 않게 댄서들이 채워야 하기에 무대가 클수록 체력 소모도 크다. 게다가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무대는 높고 넓게 트여 있어 댄서들의 역할이 더 크다.

“가령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한다고 하면 정말 힘들죠. 무대가 크잖아요(웃음). 그만큼 더 멋진 무대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보람도 큽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는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모여 있다. 하나의 공연 안에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는 것은 〈노트르담 드 파리〉의 강점 중 하나다.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안 돼서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아시아인이 저 하나였거든요. 동료들이 친절하게 대해줬지만, 언어가 안 되니 정확한 감정표현을 못 하겠더라고요. 이제는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하다 보니 눈빛만 봐도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물론 좌절도 있었다. 춤을 추면서 어깨를 다치기도 하고, 공연 중에 십자인대가 끊어지기도 했다. 어깨 근육이 파열됐을 때는 춤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려던 순간 ‘맥시멈 크루’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왔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춤을 추다 보니 〈노트르담 드 파리〉라는 또 다른 기회로 이어졌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죠. 저는 경험을 했어요. 좋아서 열심히, 치열하게 연습하다 보니 눈앞에 저절로 기회가 열렸거든요. 기회를 잡으려고 좇지 말고 현실에 충실하면 기회가 주어집니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가 ‘기회’인지를 알아요.”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춤을 출 계획이다. 그가 꾸준히 좋은 체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다. 현재 〈노트르담 드 파리〉 안무가인 마르티노 뮐러가 안무를 맡은 벨기에 뮤지컬 〈피터팬 네버엔딩스토리〉에도 댄서로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는 더 많은 해외 뮤지컬에 도전하려 한다.

“저는 춤이 좋아요. 몸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표현하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평상시에는 보통 사람들과 다름없거든요. 그런데 무대에만 서면 춤을 추며 날아다니죠. 마치 수퍼마리오가 버섯을 먹고 난 후의 상태라고 할까요?(웃음)”

이재범은 〈노트르담 드 파리〉만 600회 넘게 공연했다. 이제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를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여정을 마치는 프랑스 오리지널 버전의 월드투어를 눈앞에 두고 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인생을 바꾸고 삶의 반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가 말했듯 ‘우연’한 기회는 ‘우연’이 아니었다. 항상 치열하게 살며 준비했기에 〈노트르담 드 파리〉를 만날 수 있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제게 인생의 반이라고 할 만큼 의미가 큰 작품이에요.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춤을 춘다면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추고 싶습니다.”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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