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심장을 쏴라〉로 ‘아역’ 꼬리표 뗀 여진구

작품과 함께 성장하는 배우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나와 달라서’ 선택했던 역할은 ‘나와 닮은’ 모습을 발견하며 끝났다.
여진구는 작품을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세계가 가슴 벅차다고 했다. 그에게는 다름 아닌 이곳이 ‘활공장’이다.
비 오는 밤 진흙탕에서 시작한 영화는 날이 갠 맑은 하늘을 비추며 끝난다. 문제용 감독은 “이것이 〈내 심장을 쏴라〉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미쳐서 갇힌 수명(여진구)과 이복 형의 음모로 갇혀서 미친 승민(이민기)이 수리정신병원 501호에서 만난다. 이미 여러 병원을 거쳐 온 수명은 갇힌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 없는 듯 살고프다. 벗어나려는 발버둥이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승민은 다르다. 갇힌 창살에 끝없이 몸을 던진다. 그의 탈출 시도는 공고한 제도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대신, 수명의 마음에 균열을 낸다. 원작을 쓴 소설가 정유정은 “〈내 심장을 쏴라〉는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고 했다. 침몰을 받아들이려는 수명과 어떻게든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보려는 승민은 사실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운명에 맞서려고 할 때 우리 마음을 가르는 두 개의 의지. “행동파 승민에 가깝다”는 여진구는 그래서 수명에 끌렸다고 했다.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어린 훤으로 아역배우 전성시대를 열었고, 2013년 영화 〈화이〉로 괴물이 된 소년을 보여주더니, 이듬해에는 스물다섯의 청년이 되어 나타났다. 한 배우의 유년, 소년, 청년기를 몇 년 사이 보게 된 것만큼이나 놀라운 건 그럼에도 들뜨지 않고 잔잔한 열아홉 여진구다.

“저는 승민처럼 살아온 것 같아요. 연기할 때마다 성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 속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도전하려고 했어요. 스스로 승민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를 하면서 보니까 제 안에 수명 같은 모습이 있더라고요. 기뻤어요. 그래서 내심 기대가 돼요. 제가 수명이를 찾은 것처럼 관객들도 자기 안에 숨어 있는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으면 해서요.”

여진구가 찾은 내 안의 수명의 모습은, 길을 잃은 모습이었다. 한 번도 작품에 들어가기 전 캐릭터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적이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무엇이 수명을 이렇게 만든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캐릭터를 이해하지 못하다니.’ 그런 낭패감으로 현장에 왔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선 것도 처음이다. 영화 중반 즈음을 지나다 알았다. 내 역할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게, 자신의 인생을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바로 수명의 모습이었다.

“폐쇄 병동에 들어가볼 수도 없고, 또 한번 들어가면 마음대로 못 나온다고 하더라고요(일동 웃음). 그래서 혼자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 보니 원작 소설에 매이더라고요.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지고요. 저는 처음에는 수명이랑 되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수명이라는 사람의 모습이었어요.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맞서지 못하잖아요. 그걸 깨닫고 나서는 많이 편해졌어요.”


“연기할 때 저는 날고 있어요”


여진구가 헤맬 때 빛이 된 한마디도 있다.

촬영장에 들른 정유정 작가가 그에게 말했다. “수명이는 똑똑한 아이야.” 그 말을 듣자 수명이 달라 보였다고 했다.

“수명의 행동이 다 그래서였어요. 똑똑하니까 대답을 안 하고, 눈에 안 띄고 조용히 지내는 거예요. 부딪치고 도전하면 다치고 상처받는다는 걸 안 거죠. 탈출하려고 할수록, 설득하려고 할수록 힘들어진다는 걸 안 거죠. 그럴 바엔 세상을 등지고 살자는 마음이었던 거예요.”

그런 수명을 승민이 변화시킨다. 한 번도 의지를 갖고 행동해보지 않은 수명을 움직이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여진구를 바꾼 건 이민기였다. 서른둘의 이민기도, 열아홉의 여진구도 작품 속에선 그저 스물다섯 동갑내기였다. 여진구의 연기가 깊은 물 같다면, 이민기는 영화 속에서 활어처럼 파닥인다.

이 파장이 여진구까지 움직였다.

“리액션에 유연성이 생긴 게 이번 작품에서 얻은 거예요. 그전에는 많이 얽매어 있었어요. 감독님도 디렉팅을 특별히 주지 않으셨어요. 일부러 말을 아끼시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은 처음이었어요. 민기형이 워낙 자유분방하니까 현장에서 많이 바뀌었어요. 저도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했죠. 민기 형이랑은 실제로도 친구처럼 지냈어요. 영화가 나와서 보니까 형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안 그럴 줄 알았는데(웃음).”

이민기는 영화 촬영을 마치고 입대했다. 이민기는 아직 완성작을 보지 못했다. 군대에 가기 전 이민기는 가장 보고 싶은 장면으로 마지막 장면을 꼽았다.

극의 마지막, 수명은 병원을 나오기 위해 ‘정신보건심판위원회’에 임한다. ‘세상에서 병원이 가장 편한 곳’이라고 말했던 처음의 수명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승민은 수명의 도움으로 병원을 탈출했다. 그토록 열망하던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수명은 말한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지금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묻는다. 그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주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수명이 답한다.

“저도 저의 활공장(글라이더의 이착륙을 위해 필요한 평탄한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항상 붙어 다니던 승민과 수명인데, 현실에서는 수명 홀로 홍보일정을 담당하고 있다. 혹자는 이번 영화로 여진구가 ‘아역’ 꼬리표를 뗐다고 했다.

“책임감은 갖고 있지만 그 책임감에 얽매이진 않는 거 같아요. 아역 배우 이미지를 꼭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그런 마음으로 선택한 작품도 아니고요. (아역에서 성인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야 보는 사람도 그럴 것 같아요. 억지로 넘어가려고 하면 ‘애쓰는구나’ 싶을 것 같고요. 시간이 흐르면 뱀이 허물을 벗듯이 자연스레 벗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변화는 수명에게도 보인다. 승민에게 끌려 다니던 수명이 나중에는 승민을 위해 몸을 던진다. 승민의 무릎이 꺾이자, 도리어 주저앉아 있던 수명이 일어난다.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목소리도 내보고,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희생도 한다. 그 자연스러운 변화가 결국 수명을 병원 밖 활공장으로 이끈다. 여진구에게도 활공장은 있다. 승민의 대사처럼 “내가 진짜 살아 있구나”라고 느끼는 순간이다.

“연기를 하고 그 연기에 빠져 있을 때 날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여진구는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할 생각이다. 한 인물을 연기하면 그만큼 자란다. 열아홉이 지나 스물이 되고 서른이 되어도 여진구는 연기를 하는 한 계속 자랄 것 같다.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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