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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비치 되기’란 무엇일까?

첫 방한한 ‘할리우드 악당’ 전문 연기자 존 말코비치

배우 존 말코비치(Malkovich・62)를 인터뷰하러 택시를 타고 서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에 가고 있었다. 기자와 말코비치 수행원의 전화 통화를 듣게 된 택시 기사는 기자가 전화를 끊자마자 물었다.

“혹시 말코비치, 그 악당을 만나러 가는거예요? 아, 예전에 〈콘에어〉 진짜 죽여줬는데. 그 사람 영화관에서 볼 수 있어요?”

택시 기사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말코비치는 한국에 있었고, 대중은 그를 볼 수 있었다. 다만 영화관이 아니라 클래식 공연장에서였다.


클래식 무대서 사바토의 소설 낭독

그는 지난 1월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5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소설을 낭독했다. 이날 공연에서 슈니트케 협주곡 앞뒤로는 헨델 오페라 ‘이집트의 줄리오 체사레’와 모차르트의 ‘환호하라, 기뻐하라’가 소프라노 서예리의 협연으로 이어졌다.

그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의 펭귄〉이 극장에서 상영 중이지만, 그는 첫 방한에서 이 영화의 홍보도 거절하고 공연에만 출연했다. 세르게이 심바탄이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크세니아 코간이 슈니트케의 피아노와 현을 위한 협주곡을 연주하는 중간중간에 말코비치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에르네스토 사바토(1911~2011)의 《영웅들과 무덤에 관해》 중 제3장(章) ‘장님에 대한 보고서(The Report on the Blind)’를 읽었다. 사바토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의 고뇌와 허무 등, 인간 본연의 실존문제를 다룬 작가다. 이 작품은 서울 공연 후 역시 말코비치의 내레이션과 함께 런던과 베를린에서도 연주된다. 말코비치는 사바토의 원작 소설 영화판권을 소유했었다. 2년 동안 영화화를 추진했는데 2008년 버나드 매도프가 일으킨 ‘폰지 사기’로 돈을 몽땅 날리는 와중에 영화 판권을 잃었다.

말코비치가 공연에서 낭송한 부분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비달 올모스가 자신을 관찰하는 눈먼 여성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었다. 페르난도는 세상에 대한 왜곡된 집착과 자기혐오를 보이는 인물이다. 말코비치는 “페르난도라는 인물의 특징보다 작가인 사바토가 이 소설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에 더 초점을 두고 이런 부분을 잘 구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존 말코비치가 1월 14일 서울바로크합창단 창단 50주년 기념 콘서트 무대에 서기 전에 리허설을 하고 있다.
말코비치는 자신을 “엄청나게 진지한 클래식 음악 팬도 아니고, 지식이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클래식 음악가들과 작업을 하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을 뿐”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첫 음악 공연은 몇 해 전 호주에서 작곡가 필립 글래스의 ‘위치타 보텍스 수트라(Wichita Vortex Sutra)’에, 그 작품의 제목이 유래한 미국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그 후 그는 친구를 통해 지휘자 마르틴 하젤뵈크를 소개받았고, 하젤뵈크는 그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말코비치는 “그때 제안받은 크리스토프 글루크(독일 오페라 작곡가)의 작품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아예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우리만의 작품을 만들자고 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기자이자 연쇄살인마인 잭 운터베거를 다룬 ‘인퍼날 코미디’는 그렇게 나왔다. 그는 그 뒤에 꾸준히 자신이 연출한 클래식 공연 무대에서 연기나 노래를 했다. 말코비치는 “지금까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합해 7~8회 음악 작업에 참여했는데, 매번 강렬한 영감과 자극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크세니아와는 2~3년 전에 같이 공연을 했어요. 한국 공연에서는 새로운 것을 해보자고 고민하던 중에 크세니아가 슈니트케의 협주곡을 제안했어요. 그녀가 좋아하는 곡이죠. 그 곡을 들었을 때 저는 사바토의 《영웅들과 무덤에 관해》의 ‘더 리포트 온 더 블라인드’가 떠올랐어요. 두 작품 모두 편집증적이고, 음… 시적이면서 … 불협화음을 느끼게 하지요.”

말코비치는 대답을 하기 전에 한참 뜸을 들였다.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거나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질문을 하고서 속으로 다섯은 세야 들을 수 있는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나긋나긋했다.

그의 목소리는 서정적이고, 음악적이었다. 대답 도중 자주 나오는 ‘음’은 노래의 추임새 역할을 했다. 그는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어색하고 싫다”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사흘 정도 마약에 절어 있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실제로는 “담배만 가끔 핀다”고 했다.

“음악은 저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지만, 음… 음악 작업을 하는 것은 연기와는 달라요. 물론 연극 무대에서 음악이 나오긴 하지만, 음… 예산 때문에 현장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는 없어요. 클래식 공연 무대에 설 때 제 목소리는 하나의 악기로 참여하는 거예요. 노래는 안 배웠어요. 음… 배워서 할 수 있는 건 없죠. 음… 대학 때 술집에서 기타 치며 포크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봤기 때문에 노래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원래 모차르트 시대에는 전문 오페라 가수가 없었어요. 배우가 노래를 불렀죠.”


패션디자이너로도 왕성한 활동

한국에서는 배우로 알려졌지만, 말코비치는 전방위 예술가에 더 가깝다. 그는 오래전부터 영화 연기와 제작, 연출을 함께해왔고, 연극 무대에서도 연출과 연기로 잔뼈가 굵다. 최근에는 드라마 촬영도 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하는 의류 브랜드 ‘테크노보헤미안’도 내놓으면서 패션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바느질하는 것을 좋아해서 촬영장에서도 말코비치가 바느질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고 한다. 말코비치는 “난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고, 관심사와 호기심도 많았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에너지가 남아 있진 않다”고 했다. 이날도 그는 한국가구박물관 관람을 마치고서 부엌을 다시 한 번 보러 갔다. 부엌에 난 창에 관심을 가진 그는 그곳에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관심사와 호기심이 많다 보니 영감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요. 연극만큼 건축에도 관심이 많고, 음악만큼 의상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요. 음악 역시 클래식만 고집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힙합도 좋아하고, 로큰롤은 그것보단 덜하지만 좋아하긴 해요. 장르는 문제가 아니고, 애초에 신경 쓰지도 않아요. 무엇이든 좋기만 하다면야.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피터팬을 읽을 때만큼이나 나쓰오 키리노(잔혹하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도 행복해요. 영화에서도 당연하죠. 저만큼 코미디 영화인 〈트로픽 썬더〉나 〈메리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를 재밌게 본 사람도 없을걸요.”

지난 1월 한국을 처음 방문한 존 말코비치가 서울 한국가구박물관을 돌아보고 있다.
말코비치는 〈사선에서〉 〈콘에어〉 〈여인의 초상〉 등의 불안정하고 편집증적인 악역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의 팬들 사이에서 빠지지 않고 꼽히는 대표작은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찰리 카우프먼는 ‘말코비치 되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톰 크루즈도, 로버트 드 니로도, 메릴 스트립도 아니고, 존 말코비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말코비치가 된다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말코비치를 인터뷰하기 전 만난 택시 기사에게 말코비치가 되는 것은 악당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코비치로 사는 것은 멋진 일이에요. 내 관심사, 호기심, 친구, 책, 하고 싶은 일이 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요. 음… 배우와 연출가, 디자이너와 가수 중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요? 여러 가지를 다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한 가지를 선택해서 하겠어요? 만약 딱 한 가지 선택해야 한다면, 음… 그건 연극 연출입니다.”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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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이정생   ( 2015-03-30 ) 찬성 : 58 반대 : 35
존 말콤비치 정말 멋진 연기자로만 알았었는데 관심 있는 분야도 잘 하는 분야도 많은 사람이었군요. 정말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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