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강하늘,
연극 〈해롤드앤모드〉에서 10대 소년 연기

연극은 나의 고향, 연기의 물꼬를 터주는 존재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최솔이 

강하늘에게 무대는 ‘도전’이 아니라 ‘귀향’이다.
드라마와 영화로 먼저 강하늘이란 배우를 인지한 이들에게는 낯선 일이겠지만, 그는 원래 무대 출신이다.
“무대에 서면 안도감이 들어요. ‘역시 나는 사각형 안에 있는 것보다 사각형 위에 있는 게 더 편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오랜만에 서는 무대라 부담도 되지만 행복해요.”

사각형 안에서 만나온 배우 강하늘을 사각형 위에서 만났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였던 〈미생〉(tvN)의 장백기를 지나 영화 〈쎄시봉〉과 〈순수의 시대〉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한참 상승세인 이 배우는 뜻밖에 남산의 국립극장에 있었다. 3월 1일까지는 더블 캐스트 없이 매일 사각형 무대 위에 선다. 덕분에 “어렵게(?) 들어온 CF도 찍지 못한다”며 웃었다.


겸손하고 좋은 에너지를 가진 배우

〈상속자들〉(SBS)의 효신 선배, 〈엔젤 아이즈〉(SBS)의 동주, 〈미생〉(tvN)의 장백기로 연달아 호평을 받은 그가 선택한 작품은 연극 〈해롤드앤모드〉다. 한국에서는 〈19 그리고 80〉이라는 제목으로도 공연된 바 있는 이 연극은 열아홉 살의 해롤드가 80세의 모드를 만나 변화하는 이야기다. 해롤드 역할은 강하늘이, 모드 역할은 배우 박정자가 맡았다. 박정자는 모드로 무대에 선 것만 여섯 번째다. 올해 일흔 셋인 이 배우는 “모드는 내 삶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실제 모드의 나이인 여든까지 무대에서 모드를 연기하는 것. 프레스콜에서 만난 박정자는 여섯 번째 남자(?)인 강하늘을 “겸손하고 좋은 에너지를 가진 배우”라고 했다. “강하늘의 인기에 〈해롤드앤모드〉가 묻어가고 있는 것 같다(웃음)”면서.

박정자의 말대로 60세를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 〈해롤드앤모드〉는 현재 연극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강하늘은 이 기록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했다. 적어도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처음 방송할 때 안 좋은 이야기나 질타도 들었어요. ‘뮤지컬 몇 편 하니까 방송 간다’고 할 때도 왜 옮기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았죠. 이렇게 무대로 돌아왔는데 작품이 잘되니까 ‘내 생각이 잘못되진 않았구나’ 하고 안심이 돼서 좋아요. 때로는 의심이 될 때도 있었거든요.”

그의 계획은 두 가지였다. 무대에서 방송(영화)로 넘어간다. 그리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다. 강하늘의 부모님은 연극배우였다. 그가 태어나고 생계를 위해 연극을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중앙대학교 연극과에 진학해 무대에 설 때, 좋은 작품임에도 인지도가 없어 내리는 작품을 숱하게 봤다. 뮤지컬 〈쓰릴미〉 〈블랙메리포핀스〉 등으로 무대에 선 그의 작품을 눈여겨본 황정민이 그를 샘컴퍼니로 캐스팅했다. 방송에 입문하면서 생각했다. 좋은 연기로 인정받아 배우의 인지도가 높아진다면, 작품의 인지도도 높아지지 않을까.

“나이 어린 배우의 치기 어린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연극계가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는 늘 활기가 넘치잖아요. 연극계가 활발해지면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없을 거예요. 한 해 연극과에서 3만 명 정도가 졸업하는데, 살길이 막막한 분이 많아요. 제 친구들 중에도 있고요. ‘연극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을 누구나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도 안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연극이 우리 삶에 주는 유익이 분명히 있거든요.”

얼마 전 그는 12년 동안 키우던 강아지를 떠나보냈다. 산책을 하던 중이었는데 달려오던 차에 치였다. 한동안 멍하니 지냈다. 그때 모드의 대사가 떠올랐다고 했다. “죽음도 삶의 일부야. 죽음은 남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거든.”


매일 죽음을 연구하는 소년 역할


학교에 불을 질러 퇴학당한 해롤드는 매일 죽음을 연구한다. 장례식에 가는 게 취미인데 장례식장에서 모드를 만난다. 죽음을 꿈꾸는 소년은 죽음 가까이에 있는 모드를 만나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무공해, 무소유, 유기농 라이프를 꿈꾸는 모드는 그에게 “바보 같은 삶이라도 살 권리가 있다”고 말해준다.

“막이 오르고 처음 해롤드가 입장할 때 제가 문고리를 잡고 있는데, 그때 심장이 ‘쫄깃쫄깃’해요. 이제부터 2시간 동안 NG 없이 가야 하니까요.”

처음 해롤드 역을 제안받았을 때는 걱정이 됐다. 열아홉 살 해롤드가 80세의 모드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로 관객을 설득할 수 있을까. 걱정은 박정자를 만나고 사라졌다.

“대본을 읽을 땐 몰랐는데 무대에 서보니까 알겠어요. 이 작품은 저를 비롯해서 관객 모두가 해롤드예요. 모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저의 숙제는 그 과정을 얼마나 세밀하게 표현하느냐죠. 박정자 선생님이 왜 ‘선생님’이시냐면요. 제가 어떤 액션을 해도 물 흐르듯이 리액션을 해주세요. 반대로 제가 리액션을 해야 할 때는 따로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반응할 수밖에 없게 액션을 주세요. 때로는 무대라는 것도 잊어요.”

도심 속 스모그에 둘러싸인 나무가 불쌍해 숲에 옮겨 심는 모드, 동물원의 물이 더러워 바다표범을 데리고 와 씻겨주는 모드, 석양을 감상하기 위해 나무에 오르는 모드, 때로 신나게 삼바를 추는 모드… 모드는 해맑게 묻는다. “세상에 주인이 어딨어?!”

“저는 이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참 좋아요.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아무나 값지게 쓰지는 못해요. 이 작품의 대본을 읽고 밖에 나가면 공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제가 참 좋아하는 영화가 〈어바웃 타임〉인데, 그 영화를 보고 밖에 나왔을 때 세상이 달라 보였거든요. 관객들이 그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는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 때 때로 무대가 생각났다고 했다. 순발력으로 장면을 채우고 있다고 느껴질 때, 이러다 내 안의 것들이 바닥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생겼다.

“연극은 저를 못살게 굴고 안주할 수 없게 만들어줘서 좋아요. 계속 채찍질하거든요. 고여 있지 않게 물꼬를 계속 열어줘요. 드라마나 영화를 하다 보면 연극에 대한 그리움이 생겨요. 리허설 할 때의 긴장, 단 한 순간도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 근데 커튼콜 때는 또 웃고 있어요. 연극이 좋기만 했다면 오래 못 했을 것 같아요.”

연극의 쓴맛을 아는 부모님이지만 아들이 같은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선뜻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한번은 강하늘이 물었다. 왜 반대하지 않았느냐고. 부모님은 “어차피 힘들어서 네가 곧 포기할 줄 알았다”고 했다.

“저희 부모님은 베테랑이시라 공연 초반에 안 오세요. 후반엔 너무 힘이 떨어지니까 좀 쌓인 다음에 중반부에 오세요. 이번엔 영화 〈쎄시봉〉을 더 기대하시긴 하세요. 워낙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지금도 라이브 카페에서 연주를 하시거든요. 제가 윤형주 선생님 역할을 맡았다니까 그렇게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2배 유명해지면 6배 겸손해져도 비난받는다’

어릴 적부터 집에서는 항상 음악이 흘렀다. 혼자 사는 지금도 강하늘은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블루투스에 음악을 연결한다. 원래는 작품 하나를 마치면 가까운 곳이라도 꼭 여행을 갔는데 요즘은 여의치 않다. 대신 집에서 여행 기분을 낸다.

“작품 마치면 여행 가는 게 규칙이었는데 최근에는 깨졌어요. 대신 집에서 여행기분을 내요. 연락 다 끊고 나 홀로 휴양지를 만드는 거죠. 저는 아직 외국에 못 가봤어요.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는 게 꿈이어서 이번에 (〈미생〉팀 포상휴가인) 세부를 꼭 갔어야 했는데 못 가서 아쉬워요.”

〈해롤드 앤 모드〉의 양정웅 연출은 강하늘을 “디렉션이 필요 없는 배우”라고 했다. 강하늘은 양정웅 연출에게 도리어 고맙다고 했다.

“단언컨대 최고의 연출이세요. 왜냐면 배우를 기다려주거든요. 10을 원해도 3까지만 이야기하고 7을 채우도록 기다리세요. 배우 스스로 찾을 수 있게 장을 열어주고, 찾으면 저보다 더 기뻐해주시고요.”

무대 위에서 해롤드는 조금씩 변한다. “네, 아니오”로 끝나던 단답형 대답은 “저도 해볼래요. 제가 할게요”로 바뀌고, 엉망이던 기타 연주는 모드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늘었다. 연극의 초반을 모드가 이끈다면 후반은 달라진 해롤드가 이끌어가기 시작한다. 3이었던 해롤드가 10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강하늘의 10은 어디일까.

“제가 연기하면서 마음에 품은 세 가지 말이 있어요. ‘배우고 배워서 또 배우면 배우 될 수 있다’. 그리고 ‘2배 유명해지면 6배 겸손해져도 비난이 쏟아진다’ 마지막으로,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역할은 없다’는 겁니다.”
  • 2015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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