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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네가 나한테 복덩이야~”

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고등학교 때다. 나름 명문고라 불리는 학교라 중학교 시절 공부로 방귀 좀 끼던 애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에 학업 분위기를 흐리는 거지 같은 놈들이라 ‘7거지’로 불리던 아이들이 있었다.


① 담배 피우고 교문을 들어서다 태권도 선생님한테 걸렸는데, 마치 음주단속에 걸린 주취자마냥 실랑이를 하다가 공무집행 방해로 더 맞은 아이.

② 그 옆에 같이 맞은 아이.

③ 극단적 사상을 갖고 있고 말발이 좋던 아이.

④ 나보고 수능 언어영역 듣기평가 5개 틀렸다고 걱정해주다가 결국 나는 다 맞고 자기는 5개 틀려서 울던 아이.

⑤ 학교에 있던 벌레란 벌레는 다 잡아 꿀통에 가득 채워 놓고 아침 기상마다 그 통에 기도를 올리던 아이.

⑥ 자다가 맞고, 맞다가 자서 또 맞은 아이.

⑦ 그들이 왕거지라 추켜세워주던 나란 아이. (싸움을 잘했다거나 가장 똑똑했다는 건 아니고 제일 착하고 온순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왕거지던 나는 ‘이 녀석들 정말 커서 뭐가 되려고 하나, 밥은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고민했는데, 그들은 커서 뭐가 되었고 밥도 잘 먹으며 나는 아직 뭐가 되지도 않았는데 밥은 잘 먹는 놈이 되었다. 며칠 전 ③을 만났다. ③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만나자마자 묻는 게 누구나 늘 그렇듯 “요즘 뭐해?”다. “연기하지 뭐”라 답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하는 거 없이 인생만 연기시키는 놈팽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말했다.

“tvN에서 월, 화요일 11시에 방영하는 <일리 있는 사랑>에 출연 중이야. 휴, 얼마나 고된지 몰라.”

구차했다.

친구는 네이버 메인에서 드라마 제목은 본 적이 있고, 이수혁이 자기 중학교 후배고, 드라마는 지금부터 보겠다고 했다. 알았다, 그러냐를 되풀이하다가 끝내 이야기의 주제를 돌렸다. 구차했다.

“너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초등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냐”고 물으니 말발 좋은 ③이 답한다.

“어느 날 내가 술이 덜 깨서 학교에 갔는데 애 하나가 ‘선생님, 술냄새 나요’ 그러는 거야. 그러면서 ‘선생님 어제 뭐했어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야, 선생님이 어제 무얼 했는지 궁금해하지 말고 니가 내일 무얼 할지를 고민해.”

‘스피노자 같은 새끼. 넌 정치를 했어야 했다.’

①이 얼마 전 술을 먹고 집 앞 잔디밭에서 자다가 아침에 집에 들어가 와이프가 ①의 부모님한테 일렀고, ①의 부모님이 ①에게 새애기를 위해서 이혼해주라고 했다는 이야기, 은행을 다니는데 본사로 발령이 나서 너무 힘들어한다는 ⑥의 이야기, 대전에서 공부하는 ⑤의 이야기,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는 ②의 이야기 등을 나누다가 우리는 ④가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하러 갔다.

파티장에 들어가자 “이 파티는 망했다”며 애써 웃는 190의 장신 친구 ④가 있었다. 넓은 홀에 사람은 나와 ③까지 다섯. 이 정도면 망했다는 표현도 사치다.

순간 ④가 초대한 외국 사람 여섯이 들어온다. 둘은 미국 사람, 넷은 핀란드 사람이란다. ③과 ④는 카투사에서 배운 영어로 그들과 빠르게 흡수되었고, 나는 핀란드 여자 한 명에게 휘바휘바 하다가 따귀를 맞을 뻔했다. 잽싸게 도망쳐 시카고에서 왔다는 미국 사람에게 가서 시카고 컵스는 왜 백년이 넘게 우승을 못하냐고 했다가 볼기를 맞을 뻔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이 꽤 북적였다. 모르는 사람도 꽤 많았고, ④는 그 사람들에게 서로를 소개시켜주었다. 우리한텐 니가 최고 배우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당장 옆사람에게도 나를 쉽사리 소개할 수 없는 ④였다. “너포위 봤어?” “아니.” “전설의 주먹 봤어?” “아니.” “파수꾼.” “죄송해요.” “신들의…” 류의 대화를 내 앞에서 나누고 있으면 내가 말한다.

“그만해. 새끼야.”

“넌 왜 미생 안 나오냐?”

“넌 왜 대통령 안 하냐?”

“새해엔 대박 나라.”

“새해엔 대통령 돼라.”

그리고 그 자리를 떴다. 술집을 나서는 나를 그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왔던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이 붙잡는다. 담배 한 대 피우고 가란다. 브라질에서 축구를 배우고 K대 법대에 들어간 후 축구 선수를 하다가 지금은 패션 사업을 하는 참으로 창조적인 친구다. 그 친구가 묻는다.

“힘드냐?”

눈물이 날 뻔했다. 애써 괜찮다고 했다.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 말했다. 자기도 힘들단다. 축구가 좋아 축구를 했는데 힘이 들어 안 한다는 거다. 축구가 힘든 게 아니고 축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난다는 거다. 나도 연기가 좋아 연기를 했는데 나는 연기도 힘들고 사는 것도 힘들어 근데 연기 말곤 할 게 없어라고 말할 뻔했지만, “언제 만나 술 한잔하자”로 얼버무렸다. 진심이었을까. 연기가 힘들다는 것, 사는 게 힘들다는 것, 연기 말곤 할 게 없다는 것. 그저 충동적인 환멸에 가까운 감정 때문에 든 마음이었던 것도 같다. 어쩌면 언제 만나 술 한잔하자는 말이 가장 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랑 나랑은 할 말이 많을 것 같으니 꼭 연락하라는 친구의 말을 뒤로하고 저벅저벅 걸었다. 10년 전 그때, 나와 친구들은 다 잘돼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들어보니 죄다 미생이다. 촌지를 받느냐는 말에 “미친놈아, 촌지를 교장한테 줘야 될 판이야”라는 ③, 여의도로 발령이 나서 인수인계 때문에 바빠 모임에 나올 수 없다는 이혼 위기의 ①, 아직도 오토바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②, 그리고 그 나머지 모두. 좀 더 성장해서 내년 이맘때는 더 웃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택시를 잡았다.

새해는 편하다. 케케묵은 감정도 무너진 계획도 새해라는 방어막 뒤에서 리뉴얼시킬 수 있다는 이유다. “연락 못해 미안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길 바랍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120명에 가까운 이들에게 전송했고, 그중 많은 사람이 답장을 보내왔다. 너도 새해 복 많이 받고 하는 일 다 잘되길 빈다는 내용이다. 다음 날 아침, 밤사이 온 답장들을 살피다가 하나의 메시지를 저장한다.

“이미 네가 나한테 복덩이야.”

당신도 누군가에겐 이미 복덩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분명히 그럴 것이다.

박정민은 영화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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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 2016-02-21 ) 찬성 : 10 반대 : 5
진짜 박배우는 복덩이! 이런 배우를 알게되서 영광 입니다!
   시나브로   ( 2016-01-18 ) 찬성 : 15 반대 : 13
복덩이란 말이 뭔가 귀여워요 ㅋㅋㅋㅋㅋㅋ
   Jin   ( 2015-10-10 ) 찬성 : 20 반대 : 29
박정민배우님 글잘일고있습니다 고향?이 충주시죠 ! ? 응원해요 ♡
 지난 명절 충주의 나름번화가..에서.. ㅎㅎ ..제가잘못본걸까요.. ㅠㅠ
   구독   ( 2015-03-01 ) 찬성 : 15 반대 : 23
제가 누군가엑 복덩이이듯 오빠도 저의 복덩이입니다~ 요새 너무 힘든데 8개월 남짓 견뎌야 하는 생활이 남았는데 가끔 오빠 글 읽고 작품 보면서 위로받고 다음 날 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오빠는 좋은 배우로서 전 제 나름의 삶을 좋게 살아가면서 올해 화이팅 합시다. 좋은 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carpe diem   ( 2015-02-27 ) 찬성 : 20 반대 : 20
좋은 사람에서 나오는 좋은 배우, 글에서 느껴집니다.
 의심없이 지금처럼 꾸준히 연기하는 배우가 되길,
 나도, 당신도, 모두가 넌 잘될거야가 아닌 이미 잘하고 있는 복덩이입니다.
 올해는 나도, 배우 박정민도 더 화이팅.
   언희스트   ( 2015-02-22 ) 찬성 : 35 반대 : 26
배우님은 이미 저한테 복덩이를 넘어선 금덩이 같은 존재입니다. 좋은 글보며 위로받고가요 ^^
   24 1   ( 2015-02-17 ) 찬성 : 21 반대 : 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복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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