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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심연으로 이끄는 겨울 숲 풍경

화가 이광호

서울에 한파주의보가 내리면서 칼바람이 몰아치는 날이었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자 스산하고 황량한 겨울 숲이 펼쳐졌다. 잎을 모두 떨어뜨린 채 맨몸을 드러내고 있는 나무들. 이리저리 잔가지들이 뒤엉켜 있는 덤불숲이 원시적인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1월 25일까지 열리는 화가 이광호의 개인전이다.
작가가 4년 동안 제주도 곶자왈을 오가며 체험한 숲을 그렸다는 그림은 특정 지역을 묘사한 풍경화 같지 않았다. 숲을 보고 있다기보다 숲에 들어와 있는 느낌, 숲의 풍경을 재현했다기보다 또 다른 숲이 놓여 있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각자 마음속 깊이 자기만의 숲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날의 일상 그리고 의식 그 밑바닥에 있는 마음속 심연, 우리 존재의 시원과 같은 숲 말이다.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을 때 본연의 나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그가 그린 숲은 그렇게 우리 마음속 심연으로 이끄는 듯했다.

사진제공 : 국제갤러리(권오열)
제주도 곶자왈을 오가며 체험한 숲

그의 그림은 장엄하고 예쁘고 멋진, 우리가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대상’으로서의 풍경이 아니었다. 작가의 의도가 예쁜 풍경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숲 속에서 오감으로 체험하는 것들을 되살리려 했기 때문이다. 메마른 가지의 서걱서걱한 느낌, 눈이 녹아들어 축축한 땅 등 촉각까지 느껴진다. 작가가 숲 속에 있었듯 보는 사람도 숲으로 이끄는 그림이다. 죽은 나무들이 바닥에 누워 있고, 빛바랜 가지들이 뒤엉켜 있고, 넝쿨이 사투라도 하듯 꿈틀꿈틀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겨울 숲은 엄혹한 환경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 그 원시적 에너지가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파릇파릇 새순이 돋는 봄의 숲, 무성한 잎들로 뒤덮인 여름 숲, 색색이 단풍으로 수놓인 가을 숲도 좋지만, 모든 걸 벗어던진 채 자신의 원형, 본질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는 겨울 숲은 특별히 사람 마음을 끈다. 작가 역시 이 때문에 겨울 숲에 이끌렸다고 한다.

“풍경에 대해서는 늘 관심이 있었습니다. 여러 해 여행을 거듭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덤불숲이란 것을 알게 되었죠. 아름다운 풍경은 많습니다.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는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풍경이 여기에 있구나’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풍경은 그릴 이유를 못 느꼈어요. 제주도 곶자왈은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원시적인 모습에 ‘아, 내가 찾는 숲이 이런 숲이었구나’ 직감했죠. 4년 동안 계속 곶자왈을 찾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나무줄기나 덩굴의 복잡한 구조가 드러나는 겨울 숲에 끌렸습니다.”

거리를 두고 풍경을 재현할 때는 외곽선이 뚜렷하지만, 풍경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외곽선이랄 게 없이 가지와 넝쿨이 뒤엉키고 눈과 흙이 뒤섞여 있다. 작가로서도 이런 풍경을 그리는 게 하나의 도전이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곶자왈에서 촬영해온 사진 이미지를 프로젝트로 투사해 밑그림을 그리고 유화물감으로 칠해나갔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 고무 붓으로 문지르고 뭉갠 다음 판화용 니들(needle)로 긁어냈다.

Untitled 1304_ Oil on canvas, 173×150cm, 2013
“하루하루 작업량을 정해놓고 한쪽 구석부터 그리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그릴 수 있겠다’ 하면 거의 맞아 들어갔죠. 이미지를 확대한 모니터를 보고 그릴 때는 눈이 빠질 것 같지만, 고무 붓으로 뭉개고 니들로 긁어내고 물감을 푹 찍어 얹기도 할 때는 좀 신이 나요. 해방감도 느끼고. 그때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 같은 즉흥성도 가미되지요.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합니다. 더듬더듬 덤불 속을 헤매는 느낌이지요.”

그 때문인지 그의 그림을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추상표현주의 화가의 액션페인팅처럼 물감 자국만 두드러지지만, 거리를 두고 보면 풍경이 드러난다. 그림을 그리며 더듬더듬 숲을 헤치고 나간 작가의 경험을 관람자도 다시 경험하게 된다. 2층에 전시된 그림들은 밤의 숲이다. 관람자들이 밤의 숲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조도도 낮췄다.

“낮에는 풍경을 눈으로 인지할 수 있지만, 밤에는 숲이 보이지 않잖아요? 시각에 의존하지 않으면 촉각·청각·후각 등 오감이 작동하면서 새로운 페인팅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죠. 감각의 한계까지 가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깜깜한 밤, 숲 속에 혼자 있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빨리 빠져나가고 싶죠. 열 번도 넘게 찾은 숲이라도 공포감을 느껴요. 들개 소리, 새소리에 귀가 쫑긋해지고, 사슴이라도 후다닥 뛰어가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낮에는 보이는 게 많아 딴생각도 들지만, 밤의 숲에서는 정말 나하고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느낌입니다.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요.”


시각뿐 아니라 촉각을 자극하는 그림

Untitled 6929_ Oil on canvas, 120×100cm, 2014
이광호 화가의 작품은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리는 대상도, 내용도, 방법도 계속 변화해왔다. 서울대 서양화과에 다니던 시절 그는 판화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뭘까 끊임없이 궁리하고, 계획적으로 작업하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게 좋았다. 그 후 이야기가 담긴 평면적인 회화를 주로 그렸다. 말을 잘하지 못해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언어를 이미지로 전달하는 고백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가 촉각을 발견한 것은 100명의 초상을 그린 ‘인터뷰(Inter-View)’ 연작에서였다. 2005년 창동 스튜디오에서 시작한 작업으로, 작가가 선택한 모델이 똑같은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초상화다.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마주 앉은 모델을 구석구석 뜯어보아야 한다. 윤기 나는 머릿결, 보드라운 피부, 까슬까슬한 옷의 질감까지 하나하나 느끼고 표현해야 한다. 작가는 ‘저걸 만졌을 때 어떤 느낌이 들까, 그 느낌을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를 내내 생각하면서 작업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 내가 저 사람을 만지고 있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누굴 그리느냐에 따라 표현 방법도, 물감을 칠하는 붓도 달라졌다. 100명을 각각 더듬고 만지고 쓰다듬는 것과 같은 작업이었다. 작가는 이 작업을 하면서 “감각이 느끼는 쾌감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선인장을 거대하게 확대해서 그린 정물화 연작에서도 촉각이 두드러져 동물적, 관능적인 느낌을 준다. 무수한 가시가 달린 선인장은 그러나 촉각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만져지기를 거부한다.

이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욕망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덤불숲은 2001년 작 〈머리깎기〉에도 등장한다.

“등장하는 사물마다 의미를 부여해서 그리던 때였죠. 그 그림에 나오는 마른 잡풀은 저의 복잡한 심리, 이중성을 상징했어요. 그게 나를 대변하는 이미지 같다고 느꼈죠. 10여년 만에 덤불숲을 본격적으로 주제 삼아 그리게 된 셈이죠.”

Untitled 2356_ Oil on canvas, 90.9×116.7cm, 2014
그의 회화 변천사를 되짚어보면 그때그때 자신의 생각, 욕망에 충실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에게 그림이란 자신을 들여다보고, 발견하고, 재정립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아내를 포함해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오지 않았느냐”고 한다.

“주변에서 받쳐주지 않으면 나만 생각하며 살 수 없어요. 상황, 조건을 만들어주니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화가의 길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그는 고백한다.

“고통이에요. 화가는 하루 종일 홀로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외로움, 고독을 견뎌내야 하는 일이지요. 육체적으로도 힘들고요. 가끔가다 이렇게 주목받고 인정받을 때, 원하는 작품이 나올 때 야금야금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그의 그림은 또 어떻게 변화할까? 그는 자신 역시 정확하게 예측하진 못하지만 풍경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화가 이광호는 1967년생으로, 1995년 서울대 미술대학 서양화과, 1999년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국제갤러리, 조현화랑 개인전을 비롯해 2013년 서울대 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2012년 런던 사치갤러리, 전북도립미술관, 2011년 서울시립미술관, 덕수궁미술관, 2009년 프라하 비엔날레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현재 이화여대 서양화과 교수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 2015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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