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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사는 청년의 사정

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성동혁 〈여름 정원〉

사진제공 : 민음사
누가 내 꿈을 훼손했는지

하얀 붕대를 풀며 날아가는 새 떼,
물을 마실 때마다 새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림자의 명치를 밟고 함께 주저앉는 일 함께 멸망하고온 것들

그녀가 나무를 심으러 나갔다 나무가 되어 있다

가지 굵은 바람이 후드득 머리카락에 숨어 있던 아이들을 흔든다
푸르게 떨어지는 아이들

정적이 무성한 여름 정원, 머무른다고 착각할 법할 지름,
계절들이 간략해진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정원에 있다 슬프고 기쁜 걸 청각이 결정하는 일이라니
차라리 눈을 감고도 슬플 수 있는 이유다

정원에 고이 잠든 꿈을 누가 훼손했는지 알 수 없다 눈이 마주친 가을이
담을 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걸쳐 있다

구름이 굵어지는 소리 당신이 땅을 훑고 가는 소리

우리는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것 같다

성동혁 시집 《6》, 민음사, 2014



여름 정원의 활엽수들은 잎이 지고, 꽃들은 다 지고, 한해살이 초목들은 시든 지 오래다. 정원은 여름과 가을을 흘려보내고 겨울을 맞는다. 높은 곳을 탐하던 것들은 생명의 낮은 자리로 추락한다. 푸르른 것들의 쇠락은 완연하다. 정원은 생명의 쇠락을 받아들이며 조락과 죽음을 신앙같이 추종한다. 정원에는 얼음과 서리가 찾아들고 시든 식물들의 백일몽들만 무성하게 자란다. 건강한 사람들은 숲과 바다를 버리고, 정원마저 등을 돌린 채 내실로 퇴거한다. 울부짖는 북풍과 폭설 따위 악천후를 무서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칩거를 선택하는 것은 그동안 돌보지 못한 헐벗은 영혼의 허물을 벗고 진화를 하기 위함이다.

여름 정원에 살던 청년은 제 꿈을 훼손당했다고 호소한다. 그가 훼손당했다는 꿈이란 무엇일까? “가여운 마을과 댐을 뜯고 날아간 하얀 염소들의 새끼들을 돌보며 늙고 싶었다”(<바람 종이를 찢는 너의 자세>). 겨우 염소 새끼들이나 돌보며 늙고 싶은 게 그 꿈의 내역이다. 하지만 그 작고 소박한 꿈마저 실현 불가능한 것임을 예감한 듯하다. 청년은 정적이 무성한 여름 정원에서 이어폰을 끼고 머물고 있었다. 그는 햇빛과 산책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는 여름 정원에서 날아가는 새 떼를 보고, 새가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제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변화의 기미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가 제 몸과 마음의 상태를 투사해서 외부를 바라보는 자라면 그는 아픈 사람이다. 왜냐하면 새 떼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붕대를 풀며 날아가는” 것이라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림자의 명치를 밟고 함께 주저앉는 일 함께 멸망하고픈 것들”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제 몸의 상태를 따라간다. 그는 몸이 아픈 사람이다. 몸이 아픈 사람은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가지 굵은 바람이 후드득 머리카락에 숨어 있던 아이들을 흔든다 푸르게 떨어지는 아이들”이라는 구절은 유실수에서 채 익기도 전에 떨어진 어린 열매들을 노래하는 것은 아닌가? 이 낙과(落果)가 서글픈 것은 자연 수명을 다 누리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존이 봄과 여름이라는 계절과의 전쟁이라면 어린 열매들은 그 전쟁에서 진 것이다. 한창 젊은 시의 화자는 어린 열매들이 후두두 떨어지는 것에서 제 “주저앉고” “멸망하는” 운명을 비춰본다. 차라리 익기도 전에 떨어지는 이 어린 열매들이 제 운명을 양조하고 있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시인은 첫 구절에서 “누가 내 꿈을 훼손했는지”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시의 후반부에서는 “정원에 고이 잠든 꿈을 누가 훼손했는지 알 수 없다”고 노래한다. 교묘하게 ‘나’와 ‘정원’의 운명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름 정원이 세운 초록 생명의 탑들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무너져서 생명의 덧없음을 증언한다. 여름 정원에서 이미 폐허를 보고, 그 폐허를 덮은 정적에 귀를 기울이는 젊은 시인이라니! 그가 두 발을 밟고 서성거리는 여름 정원은 이미 조락과 죽음으로 뒤덮인 황량한 서식지인 것이다. 어느덧 정원의 여름은 끝나고 가을이 닥친다. 가을의 정원은 더 간략해지고, 조락과 죽음의 일들은 더 분주해진다. 시인은 여름 정원에서 “눈이 마주친 가을이 담을 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걸쳐 있”는 것을 본다.

그는 식물들이 번성하는 여름 정원의 약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더 많이 햇빛을 받고 더 많은 광합성을 위해 아우성치는 식물성 생명들의 춤과 아우성에 대해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 비친 여름 정원의 풍광은 겨울 정원에 가깝다. 여름 정원에 머무는 “계절들은 간략해진” 상태다. 이 여름 정원에서 겨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이나 듣고 있다. 그는 청각이 “슬프고 기쁜 걸 결정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것이 “슬플 수 있는 이유”라고 고백한다. 사실 그의 마음은 항상 슬프다.

여름 정원은 시들어 사라졌다. 황량한 겨울 정원에는 더 굵어진 북풍이 불고, 눈발이 날릴 것이다. 그러면 이어폰을 꽂고 여름 정원에서 서성이던 청년은 어디로 갔을까. 청년은 여전히 우리 옆집에서 살아가겠지. 옆집엔 누가 사는가? “옆집엔 노래하는 영웅이 있고 자전거를 복도에 세워두는 소년이 있고 국경일엔 태극기를 올리는 착한 어린이가 있어”. 복도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청년은 무심한 목소리로 “난 너희 옆집 살아”(<나 너희 옆집 살아>)라고 말하겠지. 세상에는 모르핀을 맞으며 통각(痛覺)을 마비시키고 살아가는 사람과 모르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뉜다. 전자가 후자보다 더 불행한 것은 아니다. 거꾸로 후자가 전자보다 더 건강한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생존은 영원히 집단적 모험”(베이다오, <빅일몽>)이기 때문이다. 생사의 경계에서 담을 넘지도, 돌아가지도 못하고 걸쳐 있는 것은 시인 자신이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그 상태에서 “우리는 간헐적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


성동혁(1985~)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1년 계간 <세계의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아직 서른도 채 안 된 이 청년은 몸이 아프다고 한다. 그는 여섯 번째 수술을 하고 생사의 경계를 넘어 여섯 번째 받은 몸으로 시를 쓴다고 한다. 청년은 “여섯 번째 일들이 오고 있다”(<6>)고 담담하게 적는다. 여섯 번째 받은 몸으로 여섯 번째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함부로 나부끼며 울어서도 안 됐다 창고를 두들기는 사람들에게 찾을 것이 있다고 말하고 창고 밖에서 잃어버린 것을 찾는 척해야 했다”(<바람 종이를 찢는 너의 자세>)고 노래한다. <쌍둥이>라는 시를 보면, 시인은 쌍둥이 중에서 동생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토끼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 병이 사라진다면”,

“나는 오랫동안 일곱 살일 수 있어요”(<식빵>)라는 구절에 따르면, 그는 일곱 살 때부터 병에 갇힌다. 그의 나이 셈법은 일곱 살에서 영원히 멈춘다. 그는 중환자실에 누워 모르핀을 맞으며 가혹한 세월을 건너오며 시를 쓰는 일곱 살의 천사다.
  • 2015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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