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사람 - 열일곱 살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나는 교육을 위해 싸운 소녀로 기억되고 싶다

노벨상 중 가장 영예롭다는 노벨평화상의 올해 키워드는 ‘교육’이었다. 2014년 노벨평화상은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17)와 인도의 아동 노동 근절 및 교육권 보장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60)가 공동 수상했다. 두 사람은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억압에 반대하고 어린이의 교육권 확보를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노벨위원회는 특히 말랄라에 대해 “어린이와 청소년도 자신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노벨상 창시자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다. 말랄라는 어떻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었을까. 그의 역동적인 삶을 자서전 《나는 말랄라》(문학동네, 2014)를 통해 만나보았다.

사진제공 : 문학동네
2013년 11월 유엔본부에서 ‘무상교육’을 요청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머리에 총을 맞다

2012년 10월 9일 화요일, 역사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말랄라와 친구들 앞에 탈레반 청년 2명이 나타났다. “말랄라가 누구냐?” 함께 있던 아이들이 겁에 질려 말랄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버스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말랄라를 비롯해 여학생 3명이 총탄에 쓰러졌다. 말랄라는 가장 심하게 상처를 입었다. 총알이 왼쪽 뇌를 뚫고 어깨에 박힌 것이다. 말랄라가 생과 사를 헤매는 동안 탈레반은 자기들의 소행임을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총을 쏜 이유는 “말랄라가 친서구파이며 탈레반에 반하는 말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당시 열다섯 살이었던 말랄라는 ‘10대 여성의 학교 교육’을 금지하는 탈레반의 정책에 반대하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어리지만 제거할 대상”이 되었다.

《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말랄라는 1997년 아프가니스탄의 국경과 가까운 파키스탄의 북부지역 스와트에서 태어났다. 인구 1억8000만 명인 파키스탄의 국교는 이슬람으로 국민의 97%가 이슬람 신자다. 말랄라 가족의 조상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파키스탄으로 이주한 파슈툰족. 명예를 가장 중시하는 파슈툰족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 살았다. 말랄라의 이름은 아프가니스탄의 위대한 여걸 마이완드의 말랄라이에서 따온 것이다. 마이완드의 말랄라이는 영국군과 아프가니스탄군과의 전투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여학교 중에는 말랄라이의 이름을 딴 곳이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파슈툰족은 남성을 우대하는 풍습이 강했다. 여자들의 역할은 집안에서 요리하고 아이를 낳는 일로 제한되었다.

열 살이 넘으면 여자아이들은 집안에만 머물러야 했다. 대다수 여성이 글을 읽지 못했다. 말랄라의 어머니 역시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말랄라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그의 장래 희망은 정치가였다.


교육운동가 아버지와 영민한 딸

영국 버밍엄 자택에서 가족과 함께.
어린 말랄라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이슬람 교육기관인 마드라사가 아닌 공립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현대식 교육을 받았다. 배움과 지식을 사랑했으며, 교육받을 권리가 곧 인권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아버지는 고향에서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말랄라는 아버지가 설립하고 가르치는 학교에서 공부했다. 아버지는 어린 말랄라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심어준 후원자이자 보호자였다.

아버지는 여성 교육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며 폭력을 자행하는 탈레반 정권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여 탈레반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말랄라가 열 살이던 2007년 스와트 지역은 탈레반 정권에 의해 장악되었다. 이들은 TV, DVD, CD를 없앴으며 서양식 옷차림을 금지했다. 모든 여성은 부르카(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전신을 가리는 옷)를 입어야 했고, 학교에도 가지 못했다. 탈레반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낸 사람들은 죽음을 당했다. 1000명이 넘는 평범한 주민과 경찰이 탈레반 치하에서 살해당했다. 학교와 단체가 폭파되었으며, 가게들이 문을 닫았다.

총격사건 전 파키스탄에서 자살폭탄 테러 중단을 요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학교에서 말랄라의 아버지는 평화 행진을 조직했고, BBC 우르두어 토크쇼에 출연해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버지와 동행한 말랄라는 외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8년 말이 되자 400여 개 학교가 탈레반에 의해 파괴되었다. 전국 곳곳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고, 심지어 대도시 이슬라바마드의 메리어트 호텔에서도 폭탄이 터졌다. 해가 지면 아무도 감히 집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2008년 말, 탈레반은 모든 여학교는 문을 닫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학교를 사랑했지만 탈레반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막을 때까지는 교육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학교에 간다는 것, 책을 읽고 숙제를 한다는 것은 그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였다.”


펜의 힘은 총보다 강하다

탈레반의 총격을 받은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아버지 친구인 BBC 라디오 페샤와르 특파원은 탈레반 치하 생활에 대해 일기를 쓸 여교사나 여학생을 찾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던 말랄라는 일기를 쓰겠다고 자원했다. 1주일에 한 번 BBC 우르두어 웹사이트에 굴 마카이라는 필명으로 스와트 상황에 대해 글을 올렸다. 2009년 1월 ‘나는 두렵다’는 제목으로 첫 일기가 실렸다. 이 일기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큰 관심을 받았다. 어떤 신문은 일기를 발췌해 싣기도 했다.

“나는 펜과 그 펜에서 나오는 글이 기관총이나 탱크, 헬리콥터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닐 수 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떻게 투쟁해야 할지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말을 할 때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 배우고 있었다.”

말랄라가 총격사건 전까지 다녔던 파키스탄의 여학교. 말랄라의 자리가 비어 있다.
2011년 파키스탄 청소년평화상을 받은 말랄라는 어떻게 탈레반 포고령에 저항하며 몰래 학교에 다녔는지 이야기했다. 말랄라와 그의 아버지가 언론의 관심을 받을수록 탈레반은 살해위협의 목소리를 높였다.

“나를 미국의 꼭두각시라 불렀다. 두려웠지만 탈레반이 어린 여자에게 총을 쏘지는 않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말랄라가 총을 맞은 사건은 파키스탄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파키스탄・영국・사우디아라비아 등 세 나라 정부의 도움으로 말랄라는 영국의 버밍엄으로 옮겨져 뇌수술을 받은 후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탈레반은 여학교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자행했다. 2008년 400여 개 학교가 파괴되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말랄라는 여성 교육권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조국 파키스탄은 말랄라의 수상소식을 마냥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탈레반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 다음날 공식 트위터를 통해 다시 말랄라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자서전 《나는 말랄라》도 파키스탄 사립학교 연합에 소속된 4만여 교육기관에서는 금서로 지정됐다. “이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파키스탄 언론에 따르면 서방세계가 서구적 가치관으로 이슬람 세계를 해체하기 위해 말랄라에게 노벨평화상을 줬다는 음모론에 동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말랄라는 현재 영국 버밍엄에 거주하며 서구 교육을 받고 있다. 귀국은 당분간 어려울 전망이다. 말랄라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 “나는 배우고 싶고, 배움이라는 무기를 잘 사용할 수 있는 훈련을 받고 싶다. 그러고 나면 내 목표를 위해 더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서 교육받고 있는 말랄라가 앞으로 파키스탄 소녀의 교육권을 위해 어떻게 싸워나갈지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다. “나는 탈레반에게 총을 맞은 소녀가 아니라 교육을 위해 싸운 소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말랄라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글 임현선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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