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 손택수 〈녹슨 도끼의 시〉

무릉도원에의 꿈은 아득해 지고

글 :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 사진 : 정혜정 

예전의 독기가 없어 편해 보인다고들 하지만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린
이 흐리멍덩이 어쩐지 쓸쓸하다
가만히 정지해 있다 단숨에 급소를 낚아채는 매부리처럼
불타는 쇠번개 소리 짝, 허공을 두쪽으로 가르면
갓 뜬 회처럼 파들파들 긴장하던 공기들, 저미는 날에 묻어나던 생기들
애인이었던 여자를 아내로 삼고부터
아무래도 내 생은 좀 심심해진 것 같다
꿈을 업으로 삼게 된 자의 비애란 자신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면 이얍, 어깨 위로 그 옛날 천둥 기합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오기도 하는 것인데, 피시식
알아서 눈치껏 소리 죽인 기합에는 맥이 빠져 있기 마련이다
한번이라도 꽉 짜인 살과 살 사이의 틈에 제 몸을 끼워맞추고
누군가를 단숨에 관통해본 자들은 알리라
나무는 저를 짜갠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도끼는 갈고 갈아도 지워지지 않는 목향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흙이 된다
뒤꿈치 굳은살 같은 날들 먼지 비듬이라도 날리면
온몸이 근질거려 번쩍 공중으로 들어올려지고 싶은 도끼

손택수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이 시는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시인에 따르면, “날카로운 턱선이 목살에 묻혀버”리는 일이고, “애인이었던 여자를 아내로 삼고” 생활인으로 안착하며, “꿈을 업으로 삼게” 되며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나이 들어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대개는 삶을 넉넉하게 관조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사는 일이 좀 심심해지고, 없던 비애도 생긴다.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를 잃고, 적당히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것도 마흔 중반이다. 그 마흔 중반에 이르러 시인은 생기 잃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다.

시인은 나이듦에 대하여 말하기 위해 ‘도끼’라는 은유를 가져온다. 도끼는 농경민족에게는 낯설지 않은 도구다. 도끼는 그 구조의 단순성 때문에 더 이상 도구적 진화를 하지 못한 채 수천 년 동안 농업 노동의 일부를 거뜬히 감당해왔다. 도끼는 낫·지게·삽 따위와 함께 농경민족의 도구적 삶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노동의 기반이었으니, 그 쓰임과 본성에 대한 관찰은 새삼스럽지 않다. 도끼는 “정지해 있다 단숨에 급소를 낚아채”고, “불타는 쇠번개 소리 짝, 허공을 두쪽으로 가르”다가 세월과 함께 녹이 슬고 그 날은 무뎌진다. 도끼가 나왔으니 ‘녹’이란 표상이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 녹이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월과 함께 먹게 되는 나이이고, 겉으로는 군살로 인해 몸이 둔중해지는 것이며, 속으로는 현실과의 잦은 타협으로 인해 무뎌진 양심이다. 누구나 나이를 먹으며 녹이 스는 것을 느낀다. 중년은 이런저런 녹을 품게 되는 나이이다. 녹이 슨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중년에는 녹을 품고 그것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중요한 고뇌가 된다.

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
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바닥과 벼랑을 두루 거치며 용솟음치던 젊음의 에너지가 방전된 삶은 바로 녹슨 도끼의 운명과 하나다. “저미는 날에 묻어나던 생기들”은 사라지고, 도끼는 그 무엇도 쪼개거나 가를 수가 없다. 혈기왕성하던 시절이 속절없이 가버리자 “녹스는 순간들”이 밀려온다. 이것은 노화의 단계로 진입한다는 암시이고, 생물학 기능의 퇴행을 암시하는 시적 표현이다. 나이듦의 실감과 더불어 현실의 벽들이 다가온다. “사람인 나는 내가 까마득하다”(〈탕자의 기도〉)는, 자기 한계에 대한 진솔한 고백도 생경하지 않다. 그만큼 중년의 삶은 버겁고, 나이듦의 고독과 공허는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다.

이 시의 저변에 깔린 정서는 중년에 이른 자가 만나는 상실의 쓸쓸함이다. 상실은 생의 전 부면에서 일어나는데, 젊음의 날선 기합과 굳센 의지, 격정과 변화무쌍함, 그리고 근육의 힘은 약해지고 가슴에 품었던 이상향은 가뭇없이 자취를 감춘다. 돌아보면, 나 역시 마흔 중반 무렵 무릉도원의 꿈을 접었다. 중국 송대의 시인 도연명(356~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릉의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배를 저으며 나아가다 길을 잃는다. 어부는 향기로운 풀과 복숭아나무로 가득한 양안의 계곡으로 홀려 들어간다. 그러다가 기름진 논밭, 대나무와 뽕나무밭, 꽃들을 만개하고 서 있는 복숭아나무들, 아름다운 연못이 어우러진 마을에 닿는다. 어디선가 낮닭이 울고 개가 짖었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들 평화롭고 행복해 보였다. 어부가 홀연히 발을 들여놓은 마을은 꿈속의 세상, 누구나 마음에 품은 이상향, 즉 근심과 번뇌가 없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다.

중년에 이르면 분별력이 커져 무릉도원에의 꿈들도 사라진다. 꿈은 마르고, 번뇌는 번성하기 때문이다. “한번이라도 꽉 짜인 살과 살 사이의 틈에 제 몸을 끼워맞추고/누군가를 단숨에 관통해본 자들은 알리라/나무는 저를 짜갠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 이 구절은 이 시에서 가장 애잔한 대목이다. 세월은 날선 도끼를 무디게 만든다. 도끼는 더 이상 아무것도 가르거나 쪼갤 수가 없다. 그리하여 녹이 슨 도끼는 농업 노동의 고단함과 윤리를 더는 증언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 맞닥뜨리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쪼갠 나무들은 마음의 안쪽에 그 향을 남긴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그 향을 맡으며 지나온 삶의 흔적을 가만히 더듬어보게 되리라.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노동 능력을 잃는다. 그리고 노동시장에서 밀려나 서서히 잊혀간다. 오오, 가파른 세월을 달려온 자들은 알리라. 녹이 슨 도끼 역시 노동 일선에서 물러난 뒤 다만 제 몸에 남은 “목향을 그리워하며 기꺼이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손택수(1970~)는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등이 있다. 시들을 퍼즐처럼 맞춰보면 손택수는 전라도 담양에서 태어나 부산 변두리 동네로 이주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람들이 왜 아버지를 ‘어이, 전라도 하와이’라고 부르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의 본적을 바꿔버렸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험한 노동을 하며 신산스러운 젊은 시절을 지나 “연탄이 떨어진 방, 원고지 붉은 빈칸 속에 긴긴 편지를 쓰”(〈언덕 위의 붉은 벽돌집〉)던 시절을 보낸 뒤 시인은 어느덧 중년에 이르렀다. 시인은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한국문단의 한 축을 이루는 실천문학사의 대표이사를 떠맡아 경영을 개선하려 불면증과 위장질환에 시달리며 고군분투하다가 자리를 내주었다. 어느덧 시인의 나이는 마흔 중반이다. 그의 중년은 편안한가. 막 나온 그의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를 읽는다.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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