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깨는 파격적 시도로 주목받는 권기수

마냥 행복한 ‘동구리’ 작가라고요?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동그란 얼굴에 먹물로 콕 찍어놓은 것 같은 눈, 빙그레 웃고 있는 큰 입에 몇 가닥 쭈뼛 선 머리카락. 보는 사람도 빙그레 웃게 만드는 ‘동구리’는 대중에게도 친근한 작품 중 하나다. 가방, 수첩, 지갑, 휴대폰 고리, 열쇠고리, 손수건, 옷, 텀블러, 그릇, 시계 등 다양한 일상용품에 얼굴을 내미는가 하면, 교과서에도 등장한다. 구글 ‘아티스트 프로젝트’에 제프 쿤스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선정돼 뉴욕 거리에서 선보였는가 하면, 타이완의 고층빌딩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동구리’의 작가 권기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 연남동 작업실을 찾았다. 옆에 감나무가 서 있는 하얀색 네모반듯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3층짜리 건물의 절반 이상이 천장까지 툭 트여 있다. 높은 천장으로 확보된 벽면을 ‘동구리’ 작품들이 꽉 채우고 있었다. 권기수 작가는 ‘동구리’처럼 표정도 목소리도 밝고 경쾌했다. 자연 속에 파묻힌 채 자족하는 옛 사람의 모습 같기도 하고,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을 위로하는 것 같기도 한 ‘동구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작가는 예상을 깨는 답을 한다.

“사실은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담은 거예요.”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으로 대학원까지 졸업했지만, 그는 작업만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광고회사 스토리보드, 힙합 매장 그래피티, 잡지 일러스트레이션 등 일을 하면서 생활을 해결했다. 작업할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였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손에 마비가 올 정도로 그래피티를 그리고, 1년에 1000컷씩 일러스트레이션을 제작했다.

“친구들과 함께 작업실을 얻었지만,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은 많지 않았습니다. 작업실에 가면 한지를 두세 장 붙여놓고 영국 그룹 라디오헤드나 루시드 폴의 4~6분짜리 노래를 들으며 붓을 휘둘렀죠. 그들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림 그리기에 적당한 길이라서. 저도 배울 만큼 배운 화가라 가슴이나 손보다 머리가 앞설 때가 많은데, 머리를 비우기 위해 음악에 몸을 맡기고 미친 듯이 그렸죠.”

Flower is flower_ 140×30.5×79cm, stainless steel painted with acrylic and urethane, 2009
음악 틀어놓고 춤추면서 그림을 그리다 나가버리는 그를 보고 친구들은 “네가 그때 미친 줄 알았다.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맛이 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 춤추면서 그린 그림이 ‘동구리’의 원형이다.

“사회의 요구에 맞추느라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는 저 자신을 그린 것입니다. 현대인의 보편적인 모습이라 할 수도 있고요. 처음에는 먹물이 흘러내려 웃는 듯 우는 듯 기이한 모습이었죠. 그런데 우연히 월전미술관 식당에서 전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모양을 다듬어서 우드락에 인쇄했고,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동양화를 전공했다면서 만화 같은 그림을 컴퓨터로 인쇄해 전시했으니 당황한 사람도 많았을 겁니다.”

그는 대학원 시절 첫 전시부터 기존 전통을 깨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고, 이 때문에 동양화 화단에서는 외면당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경북 영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농사짓던 부모님은 미술이 뭔지도 모르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너는 동양화 감성이야’라고 하신 말만 믿고 동양화과에 진학했죠. 그런데 입학 때부터 ‘화려한 현대도시에 살면서 왜 시커멓게만 그려야 하는가’ 회의가 많았어요. 외환위기 때 첫 전시를 하면서는 축 처진 사람들의 뒷모습을 실물 크기로 그린 후 오려서 전시장 벽에 붙였습니다. 동양화가 여백을 중시하잖아요? 그림의 틀을 없애면서 전시장 전체를 여백으로 삼고 싶었죠.”


동양화의 재료가 아니라 정신을 잇고 싶다

매화초옥-설중방우_ animation, 2003
그는 스스로 “불평불만이 많다”고 하지만, 그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문제의식이 있다’는 뜻 아닐까?

“동양화를 전공하고 먹을 쓰지 않으면 대학 강의도 맡기 어려운 형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가 이어야 할 전통은 먹이나 종이 같은 재료가 아니라 옛 화가들의 미적인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양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증표로 남겨둔 게 검은색입니다. 동양화에서는 검은색에서 삼라만상 모든 색이 나온다고 여기니까요.”

밝고 화려한 색으로 꽉 찬 화면에서 ‘동구리’는 검은 윤곽으로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조각에도 검은색을 입혀 검은 필선을 연상시킨다. 그는 아크릴화, 조각, 설치,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를 망라한다. 애니메이션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는데, 세계 곳곳을 누빌 정도로 각광받았다.

“역시 아르바이트로 홈페이지 제작기술을 익혀 외주제작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선배가 ‘수묵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자’고 제의했습니다. 그게 문예진흥원 공모에서 당선됐죠.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면서 전시초청이 폭발적으로 많아져 일본 모리미술관 등 세계 곳곳에서 전시했습니다.”

그의 애니메이션도 동양화의 전통과 맥이 이어져 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제자 전기(田琦)의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 속으로 동구리가 찾아가는 작품도 있다. 매화초옥도는 산속에 은거하는 친구를 찾아가는 장면인데, 초옥에 앉아 있는 사람도 강아지를 데리고 초옥을 찾아가는 사람도 모두 동구리다. 작가는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다 다시 평면으로 돌아가면서 그는 종이와 먹 대신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림을 그렸다. 서양화 기법을 모르니 바탕에 제소를 칠하는 것부터 하나하나 배우고 터득해나갔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캔버스의 올이 느껴지지 않도록 10여 차례 제소 칠을 한 후 아크릴물감으로 여러 차례 꼼꼼하고 정밀하게 그리고, 마무리로 바니시 칠까지 한다. 바니시를 고르게 칠하기 위해 자동차용 스프레이까지 장만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인간 손의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붓질 자국이나 마티에르를 찾아보기 어려운 매끈한 화면이다.

화면 구상은 대부분 컴퓨터로 한다. 색상 조합을 마음껏 실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부분의 색깔 하나까지 고민을 거듭할 정도로 그는 색을 중시한다. 기존 물감으로는 원하는 색감을 낼 수 없어 물감을 섞어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다. 새로 만든 색의 물감마다 고유번호를 붙여 활용한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보면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색감에 먼저 반하는 이유다. “컴퓨터 작업을 그대로 프린트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아직까지는 내가 원하는 색상을 프린터가 재현해주지 못한다”고 답한다. 그의 작업실은 그래서 물감을 만들어 튜브에 주입하는 공간, 제소 그리고 바니시를 칠하는 공간, 캔버스 틀을 짜는 목공 공간까지 조직적으로 나뉘어 있다. 개인 작업실이라기보다 함께 일하는 작업장, 혹은 회사 같은 분위기다. 모든 작업을 혼자 하기는 어렵겠다고 짐작했지만, 심지어 아크릴물감을 칠하는 작업조차 조수들에게 맡긴다고 한다. 현대미술에서는 작가가 구상만 하고 실제 제작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게 흔하다. 그러나 회화 작업, 특히 동양화 출신 작가로는 파격으로 느껴졌다.

제목 미정_ 162.1×130.3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14
“저는 육체적으로 유한하잖아요? 하고 싶은 작품은 밀려 있는데, 저 혼자 힘으로는 그 양이나 질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혼자 작업하면 한 달에 한 작품도 하기 어려우니까요. 작업 과정을 표준화, 정량화하면 내가 하나하나 감독할 수 있는 범위에서 원하는 만큼 작품을 생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르네상스 시대에도, 김홍도도 제자나 조수의 도움을 받았으니 이게 그리 새로운 방식은 아닙니다.”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프랑스· 미국·중국·일본·대만·동남아·두바이 등 수많은 나라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수없이 많은 국내외 전시회에 참여해왔다. 동그라미·네모 등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에 화려한 색채, 장식적인 화면으로 그의 작품은 ‘네오 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동구리’가 대중의 사랑을 받은 것도 한몫했다. 작가는 그러나 동구리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소비되는 것을 경계한다. 일상용품과 접목할 때도 “미술과의 연관성”을 가장 중시한다고 말한다. 그의 작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통 수묵화의 정신과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가 함께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꽃은 안견 ‘몽유도원도’의 번안. 옛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모두 꿈꾸는 이상향, ‘도원’을 꽃으로 상징했다 한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forest’ 연작에서 대나무는 색색의 마디로 이뤄진 막대들로, 바위에 앉은 선비는 정육면체에 앉아 있는 동구리로 변용되었다. 어떤 배경에서도 똑같은 표정으로 빙그레 웃고 있는 동구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자화상 같다. 동구리 밑에 그려진 파문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에너지의 파장, 기(氣)를 의미했다 한다. ‘나, 여기 있어’라며 자신의 존재를 외치는 파장이라고 한다. 배를 타고 있는 강태공(姜太公)도 그가 즐겨 그리는 소재. 그런데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고 있는 듯한 죽림칠현도, 강태공도 해석은 다르다.

“죽림칠현이라면 부패한 정치권력에 등을 돌리고 죽림으로 들어간 7명의 현자들이 거문고를 뜯으며 맑은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마지막에는 결국 타협하거나 죽음을 당하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발버둥치고 번뇌했을까요? 결국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 아닐까요? 강태공도 사실은 이를 갈면서 때를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옛것에서 가져왔지만 오늘날 우리 현실, 우리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게 좋다

Black Forest-Seven_ 227.3×546cm, acrylic on canvas on board, 2006
그는 스스로에 대해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항상 갈등하고 고민한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의 밝은 표정만 본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 역시 그가 설명해주기 전에는 마냥 밝고 유쾌하게 보였다. 동구리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 같은 작품. 훨훨 자유롭게 나는 것 같은데 그는 “갤러리와 다투고 온 날, 폭발해서 연기를 뚫고 탈출하는 모습으로 그렸다”고 한다. 사람들이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그는 “아름다운 오해”라고 표현한다.

“보는 사람마다 똑같이 이해한다면 포스터밖에 더 되겠어요? 100명이 보는데 100명이 다 다른 이야기로 이해한다면 피드백이 100개가 되고 작품은 더욱 풍요로워집니다. 그게 예술의 역할이고요. 예술가는 이기적인 인간이라 저는 저 자신을 표출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작품을 할 뿐입니다.”

그에게서는 어떤 표현도 한번 정제되어 나오기에 이런 ‘아름다운 오해’가 생기는 게 아닐까?

“동양화가 원래 마음을 다스리는 기능이 있기 때문인가봐요. 선비들도 글공부 전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사군자를 그렸으니까요.”

그는 처음에는 버리려 했던 동양화가 스스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되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생활 때문에 온갖 다른 일을 하면서도 제 목표는 줄곧 작가였습니다. 한순간도 작품 활동을 놓친 적은 없었죠. 그러나 한동안 정체성이 모호한 작가였습니다. 동양화인지 서양화인지, 설치인지, 미디어 작가인지. 그런데 컴퓨터로 작업하면서도 동양화의 필법이 나오더라고요. 분수를 그리려는데 난초를 칠 때와 같은 필법을 구사하고 있고, 막대를 세워보니 대나무를 칠 때의 필법이었죠. 김홍도와 정선의 그림이 은연중 작품 속에 스며들고요.”

그는 “이 시점, 이 땅에 발을 붙인 채 전통과 서구에서 온 것, 동서양이 혼합된 것까지 반영하는 게 내 정체성이구나 생각한다”고 말한다. 작업실에서 만난 그의 최근작은 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전의 잘 정돈된 화면과 달리 직선과 구불구불 자유로운 필선 같은 곡선이 빽빽이 캔버스를 채우고,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이 교차하고 음영이 생기면서 화면이 중첩되고 깊어졌다.

“40대가 된 제 고민, 이야기가 좀 더 들어간 것 같아요. 제가 밝고 행복한 생각만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이 작품들은 12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서 처음 선보일 예정이라 한다.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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