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한 장면 - 기다림이라는 기도

글 : 이상희 

귀모자를 쓴 어린아이가 한길에 나와 있습니다. 먼눈을 하고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틀림없이 엄마를 기다리는 터입니다. 어디에 가셨기에, 언제 오시겠다 약속했기에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저렇게 서 있는 걸까요. 그처럼 어린아이가 혼자 서 있는 것이 지나가는 어른들이며 형들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합니다. 솜저고리 입고 붉은 목수건 두른 아저씨가 지나가며 아이 쪽을 보는 듯도 하지만, 저고리 주머니에 손을 푹 찌른 모습이 결코 아이에게 다가갈 것 같지 않습니다. 목수건 아저씨와 엇갈려 지나가는 머릿수건 쓰고 옆구리에 보따리 낀 아주머니 또한 주인공 아이보다 두어 살 많은 아이 손을 잡고서 가는 길이 바쁜 듯 땅만 보고 걷는 참입니다. 그 아주머니를 막 지나쳐 목수건 자락 펄럭이며 달리는 자전거 탄 이는 교모 쓰고 귀마개한 학생이지만 그 또한 누구라 보살필 처지가 아닌 듯 자전거 핸들 쥔 빨간 맨손입니다. 화면 왼쪽에서 들어오는 목수건 두른 젊은 아낙과 귀모자 쓴 다 큰 아이는 저고리 소매 속으로 시린 손을 오그린 채 각각 대나무 채반이며 상자를 들고 졌습니다. 잔칫집에 불려가서 호되게 시달리기라도 한 듯 귀밑 머리카락은 흘러내리고 눈이 때꾼한 이 아낙 역시 겨울 저녁 곤고한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간의 귀가가 급할 뿐, 어린아이가 혼자 나와 있는 것에 마음 쓸 여념이 없는 듯합니다.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낑’ 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섰습니다.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땡땡’ 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1930년대 문단을 주도했던 이태준의 동시 〈엄마 마중〉에는 가슴 저미는 속울음의 서사가 담겨 있습니다. 여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아홉 살 때 어머니를 잃은 채 구박데기로 친척집을 전전했다는 그의 쓰라린 유년을 떠올리면 ‘엄마가 영영 오지 않았다’는 뉘앙스의 매정한 결말에 불만을 표할 수도 없겠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김동성의 그림책 《엄마 마중》이 기도라고 할 만한 아이의 기다림에 따스한 응답으로 마감한 데 갈채를 보내게 됩니다.

비탈진 언덕배기 빼곡히 들어찬 집들 사이 좁은 골목길을 엄마와 아이가 나란히 눈발자국 찍으며 걷고 있습니다. 머릿수건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뭔지 모르게 먹음직스러운 것이 담긴 듯한 바구니를 든 채 아이 손을 잡고 가는 엄마, 간신히 엄마 무릎에 닿는 작은 키로 깡총거리듯 걷고 있는 아이… 아이의 한쪽 손에 막대사탕 같은 것이 들려 있는 이 마지막 장면의 ‘위로’를 찾아 즐기는 것, 그것이 이 그림책의 최대치 기쁨입니다.

《엄마 마중》
글 : 이태준 / 그림 : 김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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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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