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당신은 당신의 생각 보다 강하다

군 시절 이야기다. (군대 갔다 왔다고 자랑하는 건 아니다. 올해로 예비군도 끝난다고 자랑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어쨌든 군 시절 이야기다. 아, 이 이야기를 하려면 그로부터 6개월 전 신체검사를 받던 날부터, 아니지, 그 전날 있었던 대학 신입생 오티부터 이야기를 꺼내야겠다.

기존에 다니던 학교에 자퇴원서를 내고, 원하던 학교에 들어가게 되어서일까, 많이 신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신입생 오티에 간 본인은 평소 즐기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그날은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물 마시듯 마셨다. 그 와중에, 그 시절 한참 문제가 되던 스크린쿼터제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던 영화과 숙소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여기 분위기가 왜 이럽니까. 놀자 놀자 뿌우”라고 했고, 한 여선배는 “정민아, 술 취했으면 들어가”라고 했고, 나는 “스크린쿼터가 뭔데요. 난 그런 거 몰라요. 놀자 놀자 뿌우” 했다가 한 남선배한테 얻어맞을 뻔한 걸 그 여선배가 구해줬더랬다.

어쨌든 살면서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그날의 다음 날, 나는 병무청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고 소변검사 중에 살면서 가장 빨간 소변을 봤다. ‘이 정도면 최소 공익? 이게 웬 떡. 나이스’라고 생각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를 포함 3명의 이름을 호명하더니 지하실로 내려가란다. ‘아, 공익은 이렇게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나?’ 뛰는 심장을 움켜쥐고 지하실로 가는데 갑자기 오전에 작성한 인적성 검사지와 OMR카드를 다시 건네는 게 아닌가.

쳇, 뭔가 오류가 났나보군, 하고선 성실하게 오전과 다름없이 다시 작성한 본인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채 다시 올라와 결과를 기다렸다.

안과 소견 정상, 이비인후과 소견 정상, 치과 소견 정상, 내과 소견 정상.

‘내과 소견 정상? 쟤 오줌은 노랗고 내 오줌은 누가 봐도 빨갰는데? 정상? 말도 안 돼. 아 좋다 말았어. 양주를 더 마셨어야 되나. 아, 짜증난다. 아, 미치겠다. 아, 우리 아빠는 왜 정치 안 하지’ 하고 있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박정민씨?” “네?” “흠.” “왜요?” “혹시 신경정신과 다닌 적 있어요?” “그게 뭐죠?” “정신병원.” “뭔 개솔?” “흠.” “왜 그러시는데요?” “혹시 다녀볼 생각은 없어요?” “아 자꾸 뭔 개솔?”

생각지도 않았던 정신과 의사가 인적성 결과에 이상이 좀 있다고 했다. 순간 정상이 아닌 걸 보는 듯한 의사의 눈초리에 열이 좀 받은 본인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했고, 의사는 갸우뚱하며 알겠다고 정상 소견을 주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입대한 본인은 훈련소에서 나눠주는 신체검사 결과가 적힌 노란 종이를 받았고, 거기에 ‘공격성 척도 이상-정신과’라고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다른 동기들 종이에도 적혀 있는가 봤더니 그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공격성을 표출해서 이상징후를 보여준 후 제대해야겠다 싶어서 굉장히 공격적으로 훈련에 참여했더니 군대란 곳은 내게 훌륭하다며 포상을 주었다.

그랬다. 그렇게 적응해나갔다. 우리 정민이는 A급이야 A급이라는 대사도 들어봤고, 그 말에 신난 본인은 군대에 멋지게 적응해나가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상병 3개월 차던가. 점점 이상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관물대의 옷과 집기들이 각이 잡혀 있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고, 심지어 샤워를 마치고 수도꼭지를 가운데에 맞춰놓지 않으면 생활관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완전히 각이 맞지 않거나 가운데에 오지 않으면 10분이 넘게 그것들을 만지작거리곤 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그 짓거리를 하는 바람에 다시 샤워를 해야 했고 점점 그 증세는 심해졌다. 그렇게 맞춰놓지 않으면 잠도 오지 않아 새벽 3~4시에 잠이 드는 건 기본이고, 다음 날 생활에 지장이 오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당시 탈영병을 찾아 부대로 복귀시키는 사복헌병, 일명 군탈체포조라는 보직을 갖고 있던 본인은 영외에서 활동 중 보고 후에 허락을 받아 외부 병원을 갈 수 있었다. 오해 없으시길.)

그때 그 의사양반 말대로 됐구나. 터덜터덜 찾아간 신경정신과의 분위기는 예상대로 차분하고 고즈넉하기까지 했다.

“박정민씨 들어오세요.”

“네.”

“어디가 불편하세요?”

“이런이런 저런저런 증상이 있는데요.”

“혹시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구속을 많이 받았나요?”

“!!! !@$!$#%!$#^#@$!”

한 30분을 그 자리에서 울었던 것 같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렸다. 시간이 흘러 좀 진정하고 의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한다.

“누구나 강박장애를 갖고 있지만 정민씨는 그 수위가 좀 심한 것 같습니다. 좀 복잡하겠지만 전역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병원을 소개해드릴까요?”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동안 해온 군생활이 아깝기도 했던 것 같고, 지는 것 같기도 했고, 가장 크게는 이 증상만 제외하면 그리 어렵지 않은 군생활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약을 조금씩 먹어가면서 버틴 군생활은 어느새 끝이 보였고, 전역했다.

그리고 예비군도 끝나가는 이 시점에 그 강박증세는 어느 정도 남아 있긴 하지만 불편한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그 증세 덕분에 본인의 집은 언제나 비교적 깔끔한 편이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은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병이 정민씨가 사는 데 있어서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라던 그때 그 의사의 진단에 “뭔 개솔?”의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는 조금 그 말뜻을 알 것도 같다. 아마도 그때의 나 같은 증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몇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장병들도 분명 있을 거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하게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길 바란다. 혼자 갖고 있으면 곪는다. 뱉는 순간이 어렵지, 뱉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랬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박정민은 영화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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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 2016-02-21 ) 찬성 : 26 반대 : 20
요즘 따라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정말 맞는걸까? 라는 의심을 조그맣게 안고 있는데.. 흠흠 박배우님 글 보면서 위안을 얻어요
  임진아   ( 2015-02-05 ) 찬성 : 47 반대 : 23
가장 위로가 되는 글이 아닌가 싶어요 오늘도 배우님 덕분에 제 마음을 위로하고 갑니다 감사해요
  지영   ( 2015-01-26 ) 찬성 : 17 반대 : 14
오늘 하루만에 배우님이 쓰신 언희 싹 다 봤어요!
 우울하던 마음에 힐링힐링 놓아주고 가시네요ㅎㅎㅎ감사합니다!
  독영이   ( 2014-12-16 ) 찬성 : 26 반대 : 15
어떻게 보면 자신의 치부일 수도 있는건데
 한편으로는 진실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힘들어도 그 진실함을 느끼기 위해 배우님 글을 기다립니다
 힘내야죠!으쌰으쌰!
 배우님도 드라마 일리있는 사랑!힘!
 psㅋㅋㅋㅋ괜히 센치해졌네요
 
  독영이   ( 2014-12-16 ) 찬성 : 37 반대 : 34
고마워요 위로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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