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

생명에 대한 찬가, 치유를 주제로 작업

소년 카이토(무라카미 니지로)는 이혼한 어머니를 따라 외딴 아마미섬에서 살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를 원망한다. 카이토의 여자친구 쿄코(요시나가 준)는 죽을 병에 걸린 어머니가 자신을 두고 세상을 떠날까봐 두렵다. 8월 대보름 축제가 한창인 어느 날 마을 바닷가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되고, 카이토는 이를 보고 불안해한다. 소년과 소녀가 죽음과 상실을 마주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마을에는 태풍이 덮친다.

사진제공 : ㈜티캐스트콘텐츠허브
세 살 때 부모가 모두 떠나는 아픔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45)이 생애 처음으로 상실을 경험한 나이는 소년과 소녀의 그것보다 훨씬 일렀다. 세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신들의 삶을 찾겠다”며 그를 떠났다. 외할머니가 가와세 감독을 자신의 딸로 입양해서 키웠다. 일본 나라현(縣)에서 자란 그는 스물세 살 때 카메라를 들고 부모의 흔적을 좇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4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주목을 받은 후로 그는 사적(私的) 고백을 담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갔다. 스물일곱 살 때 만든 첫 장편영화 〈수자쿠〉가 1997년에서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에게 주는 상)을 받았다. 당시 영화제 역대 최연소 수상이었다. 어린 나이에 영화계에 입문하고 감독으로 인정받았지만, 그는 여타 감독들처럼 미친 듯이 영화관에 드나들던 ‘할리우드 키드’도 아니었고, 대가들을 흠모한 영화학도도 아니었다 . 그는 “어렸을 땐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농구에 빠져 프로선수의 길을 걸을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농구 선수는 평생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평생 동안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8mm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마치 타임머신을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있는 시간과 그 장소를 잘라내 그것을 미래에서 재현할 수 있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화는 또 하나의 인생이 됐습니다.”

가와세 감독은 “표현이란 개인을 깊숙한 곳까지 파헤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그에게 다른 감독들의 영화를 많이 보고 공부한다는 것이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기억도 안 날 만큼 어린 시절에 겪은 상실은 그의 원동력이고 영감이었다. 〈사라소주〉에선 쌍둥이형을 잃어버린 동생이,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너를 보내는 숲〉에선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에선 그 상실이 죽음과 더 깊이 연관돼 있다. 그를 딸처럼 키워준 외할머니(가와세 감독은 ‘양어머니’라고 부른다)가 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가와세 감독은 이번 영화를 “실제 인생에서 없어진 것을 재구축하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헤어짐은 남겨진 인간의 고독과 초조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 고독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는 따뜻함으로 승화되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고독이 깊으면 깊을수록 그 따뜻함도 더 강해진다”고 했다. 영화 속 소년과 소녀도 불안하고 외로울수록 서로를 더 단단하게 껴안고 바다를 찾는다.

“바다는 인간에게 있어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 안에 장시간 있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바다에 있는 생물들에게 육지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이 패러독스를 알게 된 것이 이번 영화에는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즉,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세상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의 일본어 원제는 〈두 번째 문〉이고,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했을 때 영어 제목은 〈스틸 더 워터〉였다. 가와세 감독은 영어 제목이 “물을 조용하게 만드는 파간(波間)의 순간적인 적막함”을, 일본어 원제는 “둘이 하나가 되어 함께 문을 열면 멋진 세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리고 “사람의 고독이나 초조함에 전혀 개의치 않고 이 우주의 섭리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존재한다. 양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여전히 해는 뜨고 달은 차더라. 그 자연의 위대함을 이 작품 속에서 최대한 그리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물과 생명의 만남을 영상으로 표현


“정숙한 물, 물은 바다를 의미하고, 강을 의미하고, 비를 의미하고, 눈물을 의미하고, 양수를 의미하며 ‘생명’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물과 생명을 상상할 때 그것을 같은 것이라고는 인식하지 않고 다른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러한 둘이 하나가 되면 문이 열리고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기대하게 합니다.”

지난 5월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가 상영됐을 때, 관객들은 소년 카이토와 소녀 쿄코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직 세상의 때가 덜 탄 듯 말간 얼굴을 가진 이들은 바다의 풍광에 자연스레 녹아들어갔다. 가와세 감독이 이전 작품에서도 전문배우를 기용하지 않은 적이 꽤 많았기 때문에 이들 역시 연기 경험이 전무한 신인일 것이란 예측이 있었다. 가와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대부분 전문 배우들이었고, 주인공인 두 남녀 배우만 오디션을 통해 뽑았는데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친구들이었다”고 했다.


“캐스팅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두 인물의 존재감이 아마미섬의 압도적인 자연의 존재감과 잘 어우러지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둘은 그 임무를 기대 이상으로 잘 해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눈빛이 매우 강렬했습니다. 어린 두 사람에게는 시나리오를 주지 않고 그곳에서 살게 했습니다. 원래 본인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화 속 등장인물인 쿄코와 카이토로서 살게 하고, 그 사이에 카메라가 들어가는 식이었습니다. 두 배우도 마치 카이토와 쿄코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면서 ‘이 영화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일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와 같은 고민에 대한 대화를 모래사장에서 계속 나눴습니다. 제가 특별히 주문한 것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저 두 사람에게는 ‘오늘은 버스로 여기까지 다녀오세요’ ‘오늘은 학교에 가서 친구를 만들어보세요’ 등의 미션을 주고 이를 해결하게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쌓아온 시간들을 통해 성장한 것 같습니다. ”


소녀는 바다를 즐기고, 소년은 바다를 무서워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무렵, 이 둘은 맨몸으로 함께 바닷속을 유영하고, 바다는 어머니의 손길처럼 이들의 온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가와세 감독의 영화가 다소 불친절한데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팬을 거느리고 있는 건 바로 상처를 매만질 줄 아는 감독의 손길 때문이다(한국에선 가와세 감독의 영화가 ‘치유의 영화’로도 불린다). 그는 어릴 때 자신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했고, 자신을 친딸처럼 키워준 양어머니를 떠나보냈고, 그 자신은 아이를 낳아 어머니가 됐다. 가와세 감독은 자신의 임신과 출산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출산〉을 찍었다. 아흔이 된 양어머니의 죽음과 이제 곧 태어날 아이를 함께 카메라에 담으면서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신 역시 어머니가 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선언했다. 그는 어머니가 된다는 것에 대해 “나 자신 이외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감정이 생겼다. 사람들은 그 감정을 모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즉, 나 자신 이외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은 설사 차이가 있을지라도 그로 인해 다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소년과 소녀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생명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을 통해 순환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한국어 제목은 감독의 이런 의도를 잘 살려낸다.

“인간의 생과 사는 물, 돌, 초목과 같은 자연과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감각 중에서 생(生)과 사(死)는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것은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삶과 죽음, 자연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연 소년과 소년에게, 그리고 영원히 계속되는 생명에게 찬가를 보내고 싶습니다.”
  • 2014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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