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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면 - 고양이와 함께
국화꽃 향기 들이키며

글 : 이상희 

주말 산골짜기집 뒤뜰을 지나 서고로 들어가는 참인데 무엇인가 휙 지나갑니다. 바람인가 싶어 사방을 둘러보자니, 오히려 풀잎 하나 흔들리지 않는 적요의 와중입니다. 시간도 잠잠, 풍경도 잠잠, 사람도 잠잠… 그렇게 우두커니 조금 전의 ‘휙-’을 잊었다 짹짹거리는 새 소리에 깨어나서는 서고 안으로 막 몸을 들이려는데, 왼쪽 옆구리 너머 ‘움찔’ 기척이 있는 겁니다. 아, 뒷집 울타리께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약동을 숨기지 못해 움찔거리고 있는 노르스름한 털뭉치라니!

그날 서고 앞에 엉거주춤 쪼그리고 앉아 해야 할 일을 밀쳐둔 채 “야옹- 야옹-!” 얼마나 녀석을 외쳐 불렀는지 모릅니다. 불러도 불러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약 올리듯 기척만 내던 그 녀석을, 애써 잊었다 떠올린 것은 며칠 후 보따리 싸들고 일하러 온 강남의 빌딩가 뒤쪽에서입니다. 어둑한 저녁인데, 손바닥만 한 어린 고양이가 줄에 매어 야옹거리는 것을 넥타이 맨 남자 어른들이 빙 둘러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겁니다. 몇몇은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느라 여념 없는데, 세상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듯싶었습니다.

고양이란 녀석은 그렇게 늘 우리 마음을 애태우며 사로잡습니다. 녀석이, 누구도 아닌 내 친구가 되어 나하고만 눈을 맞추고 나만 졸졸 쫓아다니며 내 곁에만 있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아이도 어른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권윤덕의 그림책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는 우리의 그런 소망을 그득히 채워줍니다. 주인공 여자 아이는 비록 어른들이 일하러 나가고 없는 빈집에 혼자 있지만, 자기를 쫓아다니는 고양이 친구 덕분에 온종일 심심할 새가 없습니다. 둘이서 신문지 밑이며 책상 아래며 옷장 속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고, 빨랫감을 뒤엎고, 이리 뛰고 저리 구르며 파리를 잡습니다. 둘이서 벌이는 아슬아슬한 소동은 다음 장면에서야 문득 멈춰집니다.

고양이가 코를 한껏 내민 채 국화꽃 향기를 맡고 있습니다. 국화꽃을 가운데 놓고 마주 앉은 여자아이도 꼭 고양이 자세 그대로입니다. 여태껏 어른 없는 빈집을 훌떡 뒤엎듯이 뛰어놀던 장난꾸러기들이 이토록 숨을 멈춘 채 지그시 취해 있는 참이니, 독자에게도 그 향기로움이 훅 끼쳐옵니다.

사실, 어떤 대가도 ‘꽃향기’ 그 자체를 그릴 수 없습니다. 꽃향기에 취하거나 꽃향기를 탐하는 존재를 그리는 것이 정답이랄까요. 그래서 ‘국화꽃 향기’를 그린 이 장면 그림은 당나라 휘종의 고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꽃밭을 지나간 말을 그리라’는 휘종 임금의 주문에 영민한 화가가 ‘말발굽을 뒤쫓는 나비떼’를 그려 답했다는 이야기 말이지요.

저녁 나절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혼자 노는 외동아이를 안쓰러워하던 ‘일하는 엄마’ 권윤덕이 바라는 바, 경쾌하고 발랄한 결말도 눈길을 끕니다. 고양이와 놀면서 고양이처럼 용감하게 높은 곳에도 올라가고 고양이처럼 몸도 마음도 한껏 부풀릴 줄 알게 된 아이가 마침내 집 바깥으로 달려 나가 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강렬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 민화와 불화 등 옛 그림 기법으로 구현한 만화풍 친근한 장면들이, 표지를 열 때마다 거듭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는 이 그림책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는 일상과 사물을 진정성 있게 그려내는 데 특히 탁월한 권윤덕 작가의 노작입니다. 소박하고도 알뜰한 단독주택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담담한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자라는 여섯 살배기 만희의 일상이 다큐멘터리적 시각으로 재현된 첫 그림책 《만희의 집》에서 최근 작 《꽃할머니》까지, 민화·탱화·산수화·공필화·불화를 두루 배우고 익힌 솜씨와 기량으로 우리 그림책의 고유의 예술성을 실험하고 모색하며 문제작을 내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나만 따라 해》
글 ·그림 : 권윤덕
창비
  •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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