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수퍼스타 스타일링하다 수퍼스타 되다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이효리·임수정·김태희·소지섭·비…
그의 손끝을 거쳐 간 수퍼스타들의 이름이다.
이제 이런 수식은 큰 의미가 없다.
한혜연이라는 이름 석 자를 걸고 진행 중인 TV 프로그램만 세 개,
스타일링으로 수퍼스타가 된 한혜연을 만났다.
“태양 같은 사람”

‘센 분’인 줄 알았다는 이실직고로 시작한 인터뷰에서 한혜연 실장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저요? 안 세요, 안 세. 방송에서 이미지나 첫인상이 좀 그래 보이는데, 안 그래요.”

살짝 흘겨보는 애교 섞인 눈길이 테이블 위에 머물렀다. 그와의 인터뷰는 신사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뤄졌는데, 사진기자가 나무 쟁반에 세팅해둔 쿠키와 잔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머, 이거 웬일이니. 너무 귀엽다.”

작은 아이템도 눈여겨보고, 자주 감동하는 게 한혜연 실장의 특징. 눈앞에서 보니 그런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현재 출연 중인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이하 도수코)>에서 참가자들이 작은 변화만 보여도 크게 칭찬해주는데 그 이유로 “패션계가 그렇게 각박한 곳만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저는 운이 좋았어요. 제가 일을 시작했을 때는 패션 관련 산업이 판이 커질 때였거든요. 코디네이터라는 직업도 처음 생기고, 패션 관련 잡지도 많아지고요. 전공은 디자인이었는데, 전공이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였거든요.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잡지 일을 하게 됐죠.”

잡지 일을 하면서는 ‘맞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했다. 1세대 코디네이터인 장유정 실장 밑에서 일을 시작했고, 사부였던 그가 외국으로 연수를 떠나면서 그가 하던 일을 이어받았다. 당시 현 <여성조선>의 전신인 〈Feel〉의 표지와 화보를 진행하게 됐는데, 스타일링계 입문 불과 2년 뒤의 일이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멋쟁이였어요. 그때 엄마 사진을 보면 지금 그대로 스타일링을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요. 그러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옷 보는 눈이 좀 트였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인데 옷을 사도 꼭 이대 앞이나 이태원 이런 데 갔었다니까요(웃음). 친구들도 다들 좀 조숙했어요. 예쁜 거 보면 꼭 먼저 사야 하고, 그런 옷을 가지면 너무 뿌듯하고요.”

<김종욱 찾기> 후 찍은 화보. 임수정·공유와 함께.
당시 한혜연 어린이 역시 표현력이 좋아 맘에 드는 옷을 고르면 거울 앞에서 “어머, 어머, 나 너무 예쁘다” “너무 귀엽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그의 시그너처(signature・패션계에서 쓰는 용어, 그 브랜드를 나타내주는 특징을 뜻한다)처럼 느껴지는 그런 감탄사들이,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후천적으로 생긴 말투가 아니었다. 그는 원래 예쁜 것을 보면 곧잘 감탄했다.

“아버지가 그 시대 어른같지 않게 표현을 잘 하는 분이었어요. 사랑한다는 말이나 예쁘다는 말을 아끼지 않으셨죠. 저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표현하면서 자란 거 같아요. 부끄럽다는 느낌 없이요. 지금도 아빠랑은 친구처럼 지내요.”

그는 ‘운이 좋다’고 했지만, ‘패션 스타일링’이라는 분야를 개척하며 걸어온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터. 스타일이라는 게 백인백색인데 그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 잡지만 촬영할 땐 몰랐어요. 워낙 패션 모델들이랑 작업을 하니까 어떤 옷을 입혀도 느낌이 나오거든요. 근데 일반인이나 연예인을 스타일링하면서는 난도가 높아졌죠. 생각과는 다른 스타일이 나오기도 하고, 의견이 부딪히기도 하고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더 철저하게, 더 완벽하게 준비하게 됐죠.”

한혜연 실장과 만남 뒤 스타일에 변화를 갖게 된 김태희.
실제로 한혜연 실장의 촬영 현장은 ‘매장 하나를 옮겨놓은 느낌’이 난다. 화보 한 컷을 위해 10벌이 넘는 의상과 그보다 많은 아이템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한혜연’이라는 브랜드 파워가 생긴 지금은 좀 적당히 할 만도 한데, 그는 그렇지 않다. 그럴수록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패션 일을 시작하면서 줄곧 슬럼프와 싸웠어요. 앞이 보이는 일이 아니잖아요. 누군가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도 아니고요. 스스로 채워가면서 만들어야 하는데 앞이 막막할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제가 스스로 관리하려고 하죠. 평소 생활이나 일할 때나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그 노력 중에는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분투’도 있고,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하려는 자존심’도 있다.

이 둘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게 그의 숙제다. 좋은 영감을 받으려면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잃어서는 안 되는데, 좋은 작업을 하려면 또 깐깐하게 챙겨야 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도수코>를 보다 보면 그가 가장 뜨거워질 때는 ‘의외의 지점’을 발견할 때다. 여려 보이기만 하던 도전자가 의외의 근성을 보이거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때 한혜연은 밤을 함께 지새워서라도 베스트 컷을 만들어낸다. 반면 가장 싸늘해지는 순간은 누가 봐도 우월한 도전자가 자신이 가진 것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을 때다. 그럴 때 그녀는 조언도 아깝다는 듯이 말을 아낀다. 소리를 지르며 현장을 진두지휘할 때보다 더 서늘한 모습이다.

소녀시대의 스타일링을 담당하고 있는 서수경은 한혜연 실장의 스튜디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스타일리스트로 성장했다. 패션계에 입문한 계기가 대한민국 대표 스타일리스트인 한혜연이라는 건 전혀 놀라울 게 없는 이야기였지만, “굉장히 나이스(nice)하고, 주변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이라는 부연은 다소 놀라웠다. 이른바 패션 피플의 날선 느낌은 물론 그가 교류하는 톱스타들 못지않은 ‘기(氣)’가 있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용기(?)를 내 인터뷰 약속을 잡고, 자료를 준비하면서 본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MBC <사람이 좋다>)에서 한혜연의 절친인 가수 이효리는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태양 같은 사람이에요. 주변을 따뜻하고 밝게 만들어주죠. 고민이 있으면 항상 언니에게 가장 먼저 전화해요. 저에겐 큰언니 같기도 하고, 엄마 같기도 해요.”


시작부터 지금까지, 슬럼프와의 싸움

‘수퍼스타 스타일리스트’의 삶이란 화려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고 한다. 그는 tvN <골든 12>를 통해 절친인 이효리와 함께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당시에는 당황스러웠는데 그렇게 편안한 사이에서 카메라 앞에 서게 된 게 다행이었다고 했다. 톱스타와 스타일리스트도 함께 있을 때는 친한 언니 동생처럼 서로 욕도 하고, 그렇게 지낸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린 셈이니까 말이다.

“처음엔 카메라가 도니까 조신하게 있었죠. 근데 워낙 카메라도 많고 하도 오래 찍으니까 끝까지 숨길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는 평소 하던 대로 욕도 하고 그랬죠. (이)효리가 그렇게 사람을 살살 긁는 데가 있어요. 딱 방송에서 재밌게 나올 수위도 알고요. 근데 사람들이 욕을 그렇게 귀엽게 하기도 어렵다고 하던데요?(웃음) 그러고 시작하고 나니까 방송 울렁증도 좀 줄어든 것 같아요.”


이후 한혜연의 행보는 보폭이 넓어졌다. 패션 관련 프로그램만 해도 <도수코 1, 2, 3, 4>를 비롯해 <겟 잇 스타일> <솔드 아웃> 등에 출연했다. 지난해에는 그의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 (<사람이 좋다>)가 방송되기도 했다. 이제 그의 스타일뿐 아니라 한혜연이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지고 있다. 방송국의 한 관계자는 다큐 중 인터뷰에서 한혜연을 보고 이제 “실력 있는 을(乙)이 진짜 갑(甲)”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를 찾는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그의 일정에 맞춰 작업 스케줄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갑이냐, 을이냐의 경계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 화보 일정이 어려운 건 제가 갑이라서 라기보다는(웃음), 워낙 요즘 아이돌이나 톱스타들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잖아요. 방송, 뮤지컬, 광고… 그러다 보니 서로 조율하기가 쉽지 않은 거죠. 그보다는 어떤 작업을 해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많은 작업을 하다 보면 힘에 부치지 않을까.

“다행히 아직 소진된다는 느낌은 없어요. 작업은 하면 할수록 더 발전하는 느낌이거든요.”

오히려 ‘순수함’을 잃을까봐 걱정된다는 한혜연 실장은 최근 밤샘 촬영이 예전 같지 않아 체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인터뷰에 이어 진행된 사진촬영에서 모델 못지않은 자세와 포즈를 보여주어 감탄했더니, 그가 하는 말.

“워낙 셀카를 많이 찍어서 그래(웃음).”

카리스마 넘치는 짙은 아이라인 사이로 찰칵, 소녀가 보였다.
  •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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