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앨범 발매하고 소극장에서 홀로 ‘노래하는’ 윤도현

나에게 포크송은 애틋한 첫사랑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장은주 

1995년 대학로에 한 ‘노래하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처음 선 무대는 학전에서 제작한 뮤지컬 <개똥이>. 대학로의 전설 김민기가 작사·작곡·연출을 총괄한 이 공연은 판소리에 랩과 록을 접목해 화제가 됐다. 특히 치열한 오디션 끝에 주인공 귀뚜리와 개똥이 역에 발탁된 배우는 단연 주목을 받았다. 이때 개똥이 역을 맡은 사람은 아직 무명가수였던 윤도현, 귀뚜리 역을 맡은 이가 실력파 배우 이미옥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함께 듀엣곡을 불렀고, 7년이 흐른 뒤인 2002년에는 부부가 된다. <개똥이>가 윤도현에게 뜻깊은 것은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서만은 아니다. 이곳 대학로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관객의 뇌리에 남길 수 있어서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사인을 해본 것도 이곳이다. 팬이라며 다가온 관객의 사인 요청에 ‘뭐라고 써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스물 셋의 청년은 궁리 끝에 이렇게 적는다. 흰 종이에 눌러쓴 일곱 글자. “노.래.하.는. 윤.도.현”.
19년 전 대학로에서 노래하던 한 무명 가수

19년의 세월이 흘러 같은 장소인 학전, 10월 2일부터 19일까지 소극장 콘서트가 열렸다. 공연의 이름은 <노래하는 윤도현>, 노래밖에는 내세울 게 없던 그때 그 청년은 이제 마흔두 살의 아이 아빠가 되었고, 한국 록밴드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여러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회사(DEE 컴퍼니)의 대표가 되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위치가 바뀌었음에도 바뀌지 않은 한 가지가 있었으니, 그의 속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였다. 심장을 관통하는 듯 시원한 샤우팅 창법은 윤도현의 전매특허, 더구나 그가 속한 YB는 ‘오 필승 코리아’로 한반도를 ‘들었다 놨다’ 한 밴드다. 그럼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이 록가수는 “문득문득 포크가 그리웠다”고 했다. 록에 대한 열정과는 별개로 포크송은 그에게 아련한 첫사랑 같은 존재다. 사실 윤도현의 데뷔곡은 ‘가을 우체국 앞에서’다. 서정적인 가사와 어쿠스틱한 멜로디로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에 대해 노래하는 이 곡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지난 9월 윤도현의 솔로 앨범이 발매됐다. 앨범의 타이틀 역시 <노래하는 윤도현>, 네 곡의 새로운 노래와 하나의 리메이크 곡이 실렸다. 그 한 곡이 바로 ‘가을 우체국 앞에서’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녹음하면서 마음속에 울컥 차오르는 것이 있었어요. 20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목소리도 정서도 달라졌지만, 이 곡이 주는 감동은 그대로더라고요. 공연 때도 가끔 이 곡을 부르는데 노래가 가진 힘이 있어요. 이 곡은 사랑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고, 이별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고, 또 인생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거든요. 누가 듣느냐에 따라 감동을 받는 부분도 다르고요.”

윤도현의 콧날이 시큰해진 부분은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이 저물도록 몰랐네”였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은 윤도현이 초창기 속해 있던 ‘종이연’이라는 밴드의 리더이자, 김광석이 부른 ‘이등병의 편지’를 작곡한 김현성이다. 윤도현이 20년 만에 다시 솔로 앨범을 내면서 이 곡을 리메이크한 이유는 그의 ‘처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곡이어서다. 공연장소인 학전도 그렇다.

“학전 소극장은 저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에요. 처음 공연을 한 곳이기도 하지만, (김)광석이 형 공연에 게스트로 올라간 곳이기도 하고요. 처음 사인을 한 곳도 여기예요. 이번 공연은 노래도, 연주도 저 혼자서 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에 장소를 어디로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학전에서 하길 잘한 것 같아요.”


옥상달빛·케이윌·타블로·에스나 등이 피처링에 참여


오랜만에 홀로 내는 앨범, 타이틀곡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몰라 더블 타이틀로 했다. 한 곡은 YB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허준이 작사하고 윤도현이 작곡한 ‘우리 사랑했던 시간만큼’ 줄여서 ‘우사시’다. 또 한 곡은 윤도현이 작사・작곡한 ‘빗소리’. 메인 가사는 윤도현의 절친인 웹툰 작가 강풀이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주르르르르르르륵 이 빗줄기처럼 / 내 마음도 흘러내려’ 부분이다. 멜로디는 2년 전 SBS 예능 프로그램인 <고쇼>에 출연해 즉석에서 만든 노래 ‘비’에서 시작됐다. 이렇게 틈틈이 써두었지만 알릴 기회가 없던 노래들을 이번 앨범에 담았다. 이번 앨범의 또 하나의 특징은 다른 뮤지션들과의 협업이다. 옥상달빛·케이윌·타블로·에스나 등이 피처링(다른 가수의 연주나 노래에 참여하여 도와주는 일)에 참여했다.

“(‘빗소리’에 함께한) ‘옥상달빛’은 제가 실제로 제일 좋아하는 후배 가수들이에요. 같이 작업하면 제 목소리가 가진 남성적인 느낌이 좀 중화되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좋더라고요. 케이윌은 같이 술 마시다가 함께 작업하게 됐어요. 제 이야기를 듣고 케이윌이 이 노래를 한 소절 부르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저보다 더(웃음). 바로 섭외했죠. 여기에 랩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연락을 한 게 타블로였고요.”

앨범이 발매된 건 9월 중순이었다. 공연을 앞두고 취재진에게 공개한 소극장 콘서트에서 윤도현을 만났다. 늘 YB밴드와 함께 서 꽉 차던 무대인데 이번에는 스포트라이트 하나에 사람도 한 명, 악기도 기타 한 대가 전부였다. 윤도현은 한번쯤 그런 공연을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사진도 많이 찍었다. 연주하는 모습, 기타를 안고 곡을 쓰는 모습, 풀밭 위에 벌렁 드러누운 모습… 앨범 안팎에다른 수식 없이 그저 ‘노래하는 윤도현’이 담겼으면 했다.


“요즘에는 컴퓨터를 이용해서도 음악을 많이들 만드시는데, 저는 지금도 기타 들고 오선지에 그려가면서 노래를 만들거든요. 옛날 식이긴 하지만 그런 모습들이 그대로 담겼으면 했어요. YB는 밴드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공연을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들게 되는데, 이번에는 공연이 아니더라도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고요. 그러다 보니까 ‘처음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옛날에 (김)광석이 형이 무대에서 공연할 때, 형처럼 혼자서 공연해보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형이랑 같은 무대에 서서 형처럼 공연한다는 게 감격스럽기도 해요.”

포크송(folk song), 민요의 그 소박한 가곡 형식과 정신을 이어받아 1950년대 말부터 미국 등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한 자작곡 중심의 노래를 뜻한다. 신대륙으로 온 이민자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만든 민요풍 노래라는 기록도 있다. 윤도현에게 포크송은 이미 록이라는 대륙에 우뚝 섰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리워지는 고향 같은 노래다. 목에 힘주지 않아도, 듣는 이들에게 내지르지 않아도 그냥 떠올라 흘러나오는 노래. 다른 장치에 기대지 않고 오직 노래로만 작은 극장을 채우고 싶다는 윤도현의 눈가에 작은 주름이 파였다. 밴드의 리더도 아닌, 회사의 대표도 아닌 그냥 노래하는 사람.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가을 우체국 앞을 서성이던 청년이 기타 한 대를 멘 채 돌아왔다.

반가운 소식 또 한 가지, 겨울에도 기타를 메고 무대를 거니는 윤도현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2006년 ‘음악으로 기억되는 사랑의 순간’을 그려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든 영화 <원스>가 동명의 뮤지컬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이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선보인다. 남자 주인공 가이(guy) 역에 윤도현이 캐스팅돼 요즘 불철주야 연습 중이다. 콘서트로, 뮤지컬로 이래저래 ‘어쿠스틱’한 밤낮을 보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공연 개막은 12월 14일, 장소는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이다.
  • 2014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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