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사람 - 스티브 잡스

디지털 시대의 문을 연 ‘혁신의 아이콘’, 추모 3주기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어떤 기업을 시작했다가 매각이나 기업 공개를 통해 현금이나 챙기려고 애쓰면서 자신을 ‘기업가’라고 부르는 이들을 나는 몹시 경멸한다. 그들은 사업에서 가장 힘든 일, 즉 진정한 기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일을 할 의향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두 세대 후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표상하는 회사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돈을 버는 기업이 아니라 영속하는 기업을 구축해야 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남긴 글 일부다.

사진제공 : 조선DB, 민음사
《스티브 잡스》(민음사) & 《미친 듯이 심플》(문학동네)
2011년 10월 5일, 56세 젊은 나이에 잡스가 암으로 세상을 떴을 때 많은 사람이 우려를 표했다. “잡스가 지휘하지 않아도 애플은 계속 일류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잡스의 가치관이 앞으로도 회사에 남아 있을까?” 그러나 잡스 사후 3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애플은 창사 이래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8월 말 기준 6019억 달러(약 615조원)에 달한다.

생물학적인 삶은 3년 전에 끝났지만, 사람들은 지금도 ‘혁신’이란 단어와 함께 그의 이름을 불러낸다. 그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된 데 이어, 어린이용 자서전과 잡스의 가치관을 재해석하는 경영서적이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100년 후에도 기억될 CEO


왜 사람들은 잡스를 잊지 못할까. 언론인 출신 월터 아이작슨이 쓴 전기 《스티브 잡스》(민음사)와 잡스와 17년간 일했던 켄 시걸이 쓴 《미친 듯이 심플》(문학동네)은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켄 시걸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뛰어난 디자이너와 엔지니어 마케터들을 고용한 후 자신의 구상과 지휘를 통해 ‘인류의 진보를 앞당길’ 제품을 고안하고 창조한 ‘선지자’였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를 우리 시대 비즈니스 경영자 가운데 100년 후에도 기억될 CEO라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역사는 그를 에디슨과 포드에 버금가는 인물로 평가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 이유는 잡스가 예술과 공학의 힘을 결합해 동시대의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혁신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잡스는 완벽에 대한 열정과 맹렬한 추진력으로 6개 산업 부문에 혁명을 일으킨 창의적인 기업가였다. PC와 애니메이션, 음악, 휴대전화, 태블릿 컴퓨팅, 디지털 출판이 이에 해당한다. 직접적인 혁명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방식을 고안해낸 소매상점(애플 스토어)을 추가하면, 그는 7개의 산업 부문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6년 애플 창업을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시켰고, 1990년대 후반부터 아이맥・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 등 세상을 변혁하는 제품을 내놓으며 대중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의 창조 신화를 만든 성공한 비즈니스맨’으로만 잡스를 기억하지는 않는다. 양부모에게 입양되어 자라 실리콘밸리의 거부가 되기까지 극적인 삶을 살았던 잡스의 인생 그 자체에 큰 흥미를 느낀다.

1955년 2월에 태어난 잡스의 생모는 당시 대학생이었다. 시리아인 유학생을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하고자 했으나 부모의 격렬한 반대로 결혼 전에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양육할 상황이 못 되었으므로 입양을 보내기로 한다. 모자는 잡스가 31세가 되었을 때 만났다. 성공한 잡스가 사설 탐정을 고용해 생모의 존재를 찾아낸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50세 생일파티.
잡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입양 사실을 알았다. 그의 친한 친구들은 한결같이 출생 직후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모종의 상처를 남겼다고 말한다.

“무엇을 만들든 완전히 통제하려 드는 그의 집착은 출생 직후 버려졌다는 사실과 그의 성격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주위 환경을 조종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개발하는 제품을 자기 자신의 확장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잡스는 이러한 견해를 일축했다. “버려졌기 때문에 열심히 일해 부모가 나를 되찾고 싶게 만들려고 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정말 말도 안 된다. 입양 사실이 내게 독립성을 키워주었을지는 모르지만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빠진 적은 없었다. 나는 항상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그렇게 느끼도록 해주셨다.”

잡스는 고등학교 2~3학년 때 전자공학에 광적으로 빠져 있는 부류와 문학과 창작에 몰두하는 부류의 교차점에 선 자신을 발견했다. 음악을 많이 들었고 과학이나 기술 분야뿐 아니라 인문학 책도 많이 읽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리어왕》에 심취했으며, 클래식 작곡가 중에서는 바흐를, 팝 가수 중에서는 밥 딜런을 가장 좋아했다.

1972년 잡스는 자유로운 영혼과 히피 생활방식으로 유명한 리드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선불교를 열성적으로 받아들였으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의 경영철학인 ‘집중’도 선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그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직관적인 통찰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직관적 이해와 자각이 추상적 사고와 지적 논리 분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시기였다. 그는 대학에 입학한 지 1년도 못 되어 자퇴했다. 양부모에게 등록금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잡스는 1976년 21세에 자신의 집 차고에서 고교 선배 스티브 워즈니악과 공동으로 애플을 창업했다. 애플Ⅱ는 워즈니악이 고안한 회로 기판을 컴퓨터광 이외의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로 전환한 제품이었다. 이 컴퓨터는 PC 업계를 탄생시킨 시발점이 되었다. 애플Ⅱ는 이후 16년간 다양한 모델을 출시하며 600만 대 가까이 판매된다. 1980년 애플의 기업 공개에는 1956년 포드자동차의 공모 이래 가장 많은 투자자가 몰렸다. 그해 말 애플의 기업 가치는 17억9000만 달러였다. 25세의 잡스는 2억5600만 달러의 자산을 가진 거부가 되었다.

승승장구하던 잡스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1985년 그는 매킨토시 팀장직을 박탈당하고 애플을 떠났다. 이후 1997년 애플의 임시 CEO로 복귀할 때까지 12년 동안 넥스트를 창업했고, 픽사를 인수해 컴퓨터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등을 제작, 대성공을 거두었다. 픽사는 나중에 디즈니에 합병된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와 다시 지휘봉을 잡은 1997년부터 2011년은 본인의 표현처럼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 1998년 출시한 아이맥은 키보드, 모니터, 컴퓨터를 하나의 유닛으로 결합한 올인원 제품이다. 아이맥은 판매 첫 6주 동안 27만8000대, 그해 말까지 80만 대가 팔리며 애플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판매된 컴퓨터가 되었다. 이후 잡스는 ‘주머니에 1000곡의 노래를 넣어 다니는 기쁨’을 간파하고 엄청난 자산과 유산을 가진 소니가 결코 해내지 못한 방식으로 아이팟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인터넷・전화・아이팟 세 가지 기능을 동시에 지닌 아이폰을 선보였다. 태블릿 컴퓨팅의 문을 연 잡스는 디지털 신문, 잡지, 책, 동영상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아이패드를 혁신했다.

애플의 성공신화 밑바탕에는 “단순함을 향한 집착”이 자리한다. 심플 스틱(simple stick)은 애플 내부의 핵심 가치를 상징하는 단어다. 심플 스틱은 영감을 자극하기도 하고 원시인의 몽둥이처럼 위협이 되기도 한다. 또한 애플이 여타 기술회사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언제나 상기시키고 이 복잡한 세상에서 애플을 돋보이게 한다. 그만큼 애플은 ‘단순함의 힘’을 거의 종교처럼 신봉한다.

2011년 10월 6일 서울 명동 프리스비 매장에서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를 추모하고 있다.
잡스는 애플이 오래된 대기업임에도 대기업형 사고를 대변하는 행동 양식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그는 ‘똑똑하고 창의적인 인재들로 구성된 작은 집단’이 애플의 놀라운 성공을 견인한 원동력이라고 판단했고, 그 생각을 고수했다.

잡스는 2003년 췌장암을 진단받고 2004년 대수술을 받는다. 죽음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엇이 우리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고 느낍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2014년 9월 초 아이폰6의 출시를 앞두고 애플은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사후에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뛰어난 애플의 제품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다.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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