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창겸

이미지로 위로와 치유를 전하고 싶어요

글 : 이선주 자유기고가  / 사진 : 하지영 

“너무 복잡하게 보지 마세요. 작가는 작품에 혼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스스로를 게임 프로듀서라고 생각합니다. 관람객이 즐길 수 있도록 게임을 만들어놓는 것이지요. 그들에게 작가는 새롭게 보는 눈을 제시하는 존재입니다. 흔히 봐오던 것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도록.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느끼세요. 작가가 아무리 뭐라고 정의해도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지난 8월 서울 강남대로 ‘스페이스 22’에서 열린 김창겸 작가의 개인전을 찾았다. 인도와 그리스 여행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품은 화려한 색감에 신화적인 분위기가 물씬했다. 말과 인간의 형상, 그리고 기둥이 등장하는 작품. 무의식 혹은 꿈의 세계를 실제 있는 것처럼 그린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우리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린다. 부서진 신전 기둥이나 고대 조각에 자주 등장하는 말, 세부 묘사가 생략된 인간의 형상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신화를 끄집어내는 듯하다. 고대문화를 품고 있는 폐허를 볼 때 우리는 묘한 기분을 느끼지 않는가. 분명 그들의 시대를 직접 살았던 게 아닌데 그것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매료된다. 그의 작품 역시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과거, 그리고 미래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작품을 들여다보니 조각 혹은 오브제를 배치해놓고 사진으로 촬영한 듯 보인다. 말 오브제의 표면에 그림처럼 붓 터치가 보이고, 화석문양이 찍혀 있기도 하다. 대학에서 회화를 공부한 후 이탈리아 유학을 떠나 조소를 전공한 작가이니 ‘조소와 회화를 두루 활용한 작품을 만들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속았다. 사실은 작가가 3D 기술을 익혀 컴퓨터로 작업한 후 출력한 작품이라 한다. 그림자와 빛, 반사광의 효과가 뚜렷하고, 사진촬영을 하면서 초점이 흐려진 것 같은 부분까지 있어 깜빡 속았다. 그 부분은 일부러 해상도를 낮췄다 한다. 솟아올랐다 내려앉았다 울퉁불퉁한 바닥은 언덕으로 보이기도 하고 화려한 문양의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바닥의 문양이나 말, 기둥에 들어간 문양이 모두 파울 클레의 작품을 무늬처럼 펼쳐놓은 것이라 한다.


현실에는 없는 색, 유토피아를 보여주다

Mythos#6_ Archival pigment print, 112×80cm, 2014
“사이버 공간에 망치도 있고, 톱도 있고, 붓도 있고,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어요. 그걸 가지고 작업했죠. 3D를 다루는 데 익숙지 않아 대상 하나를 3D로 모델링하는 데 석 달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색깔 사용은 정말 편리했어요. 색깔만 지정하면 전체 화면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잖아요. 보통 어느 색 옆에는 어느 색을 배치한다는 규칙이 있고 작가마다 쓰는 색이 한정되어 있는데, 전혀 엉뚱한 색끼리 배치하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마음껏 해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같은 리얼리티를 가지면서 현실에는 없는 색을 보여주는 거죠.”

현실에는 없는 색, 유토피아를 보여주는 작품은 또 있었다. 색색의 꽃들이 앞다투어 꽃봉오리를 터뜨리는 동영상 작품이다.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인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꽃들은 실제 존재하는 꽃이 아니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꽃의 이데아에 가깝다. 그는 “3D로 만든 것을 일부러 2D처럼 평면적으로 보이게 작업했다”고 설명한다. 화면 전체를 수놓는 꽃의 축제. 동영상으로 계속 꽃봉오리를 터뜨리고 있어 더 현란하다. 그 꽃 속에 들어간 인물이 눈을 깜빡거리는 초상작품도 있다. 전시회 때 신청을 받아 누구든 초상작품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원래는 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좋아져요. 꽃이란 소재가 주는 위안이 좋아요. 제가 작업하는 동안에도 위안을 받고, 보는 사람에게도 위안을 주고 싶어요.”

Mythos#13_ Archival pigment print, 112×80cm, 2014
그의 작품은 2012년 인도여행을 다녀온 후 밝고 환해졌다. 오랜 영상작업으로 시력이 극도로 악화된 후 떠난 여행길이었다. 인도여행에서 화려한 색과 정교한 문양, 가난하고 고단하지만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는 그는 3D 작업으로 인간과 동물, 자연이 공생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를 그려냈다. 50대 후반인 작가는 지금도 작품 방향과 매체를 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다. 새로운 기술도 적극 활용한다. 스스로 “‘나는 꼭 이 길을 갈 거야’라는 고집이 원래 없어요. 작품도 계속 바꿔왔죠”라고 말한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죽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진학한 미대 회화과. 대학 졸업 후에는 의사가 되라고 강권하는 어머니를 피해 무작정 이탈리아로 간 뒤 조각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대리석 산지로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이 작업했던 카라라의 아카데미에서 5년 동안 조각을 공부했다. 그리고 다시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귀국했다.

“이탈리아 대리석은 무르다고 들었는데 웬걸요. 돌과 씨름하느라 정말 고생했습니다. 채석장에서 돌에 깔려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어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보고 ‘돌이 무르지 않다면 저런 작품이 나올 리 없어’라고 추측한 데서 나온 낭설이 아닌가 싶어요.”

1994년 한국에서 조각전을 열었더니 모두 ‘이탈리아 대리석’에만 초점을 맞췄다.

“대리석은 그저 제가 작업에 사용하는 물질일 뿐이잖아요. 사람들이 호사스럽게 여기는 재료 때문에 제 작품의 의도가 가려져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sarubia dabang_ video installation, 7min. 30sec, 2003
사람들이 가치를 두거나 주목하지 않을 소재를 찾다 석고로 입방체를 만들었다. 측면에는 진짜 대리석을 붙이고 환등기로 대리석 영상을 비췄더니 사람들은 전체가 진짜 대리석인 줄 알았다. 환등기를 끄면 흰색 석고가 드러나 ‘당신이 비싼 대리석이라 믿었던 게 사실은 석고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이미지에 얼마나 속고 있는지 환기시키는 작품이었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게 사실은 조작된 이미지일 경우가 얼마나 많아요? 이미지는 쉽게 조작되고, 거짓말을 하고, 실상을 감추기도 하지요. 사람들을 세뇌시켜 진짜라고 믿게 하고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에서는 원본과 복사본,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와 구분이 점점 모호해지면서 가상 이미지가 현실에 영향을 준다”고 설파한 바 있다. 진짜 같은 가짜가 진짜를 대체할 수 있는 시대라는 이야기다.


실재와 환영 사이 경계를 탐구

물속에 비친 4계절 영상을 담은 모니터를 부착시킨 탁자
1990년대 말부터 비디오와 컴퓨터를 작품에 적극 활용하면서 미디어 아티스트로 불린 그는 이중 삼중 중첩된 가상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이것은 그저 이미지일 뿐’이라는 사실도 드러냈다. 영상 속에 거울이 등장하는데, 그 거울에 비친 인물과 거울을 바라보는 인물이 서로 다르다. 사실은 거울 모양의 석고에 다른 사람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비춘 것. 보는 사람의 모습을 반영해야 할 거울이 과거의 인물과 조우하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그림자가 지나가면서 이게 이미지의 중첩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전시장 한편에 놓여 있는 돌확이 그랬다. 돌확 안에 담긴 물에 어른어른 풍경이 비친다. ‘졸졸졸’ 물소리도 들린다. ‘퐁당’ 돌멩이가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니 물속 풍경이 흔들린다. 그런데 얼마 후 이게 모두 환영이었음이 드러난다. 먼저 물속 풍경이 지워지더니 돌확만 덩그러니 놓였다. 그런데 다시 돌확도 지워졌다. 남은 것은 그저 돌확 모양으로 만든 하얀 스티로폼 덩어리였다. 깜빡 속은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전시장을 찾았던 한 아이는 쭈그리고 앉아 돌확 속 물에 손을 담그려고 내밀었다. 작가는 “개가 물을 마시려고 한 적도 있었다”고 말한다.

실재와 환영 사이 경계를 끊임없이 탐구해온 작가의 작품에서 어쩐지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첨단 기술을 활용하지만 아날로그적 정서가 배어 있다. 그는 “사실 나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다. 내 작품에는 오랫동안 첫사랑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돌확에 비춘 영상에서도 첫사랑이 그림자로 등장한다. 헤어진 지 20년 만에 만나 촬영했던 영상을 20년 동안 작품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2012년 인도여행으로 그는 세상을 보는 눈도, 작품의 방향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저녁이면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눈 때문에 고통을 받을 때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지금은 눈부심을 막으려 선글라스나 특수 안경을 쓰고 작업하지만,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죠. 그러다 떠난 여행에서 타인이나 대상, 풍경을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색깔에 이끌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되었죠. 그전까지 이미지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이제 제게 이미지는 치유와 위로를 주는 존재입니다.”

water shadow four seasons_ video installation, 14min, 2014
물속 풍경뿐 아니라 돌확의 형태도 영상으로 비춘 것이다.
작업을 하면서도 그는 그 작품을 볼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기게 됐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몇 초나 머무는지 국가별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이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낄지 세밀하게 조율했다. 관람객이 돌아설 때쯤 ‘퐁당’ 돌멩이 떨어지는 소리나 발자국 소리가 나도록 해 다시 한 번 말을 건다. 이번 전시회에는 탁자 위에 LCD 모니터를 부착시킨 작품도 나왔다. 실제 탁자로 활용할 수 있는 작품으로, 모니터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물속 풍경을 14분에 압축시킨 작품과 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눈에 피로를 주지 않도록 조도와 속도를 조정했어요. 꽃봉오리가 피는 장면이 너무 빨라 어지럽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속도를 줄이고, 꽃을 3D로 만들면 눈이 피로할 것 같아 2D로 조정했죠. 물에 돌멩이가 떨어지고 물속 풍경이 흔들리는 장면은 일부러 속도를 늦춰 천천히 음미하도록 했습니다. 그 탁자 앞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포석정처럼.”

회화·조각·설치·미디어아트….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해온 그에게 다음 작품에 대해 물었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3D 프린터를 활용한 입체작업도 계획 중이다. 그의 변신과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 것 같다. 변치 않는 게 있다면 작품을 보는 사람과 호흡을 맞추겠다는 마음가짐 아닐까?

김창겸

1987년 세종대 회화과 졸업, 1994년 이탈리아 카라라 아카데미 조소과 졸업, 1995년 독일 뒤셀도르프 아카데미 수학, 2009년 크라스노야르스크 비엔날레(러시아), 2010년 Eternal blinking: Contemporary art of Korea(미국 하와이대 미술관), 2011년 Korean Art Today(호주 시드니 한국문화예술회관), 2013년 기계정원(서울 성북구립미술관), 2014년 대만 MOCATP 등 전시 참여. 2008년 중국 북경, 2010년 미국 살리스버리, 2012년 서울 파크하얏트호텔, 룩스갤러리, 2014년 부산 이배갤러리 등 개인전 10여 회.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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