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기획자로 변신한 개그맨 임혁필

‘펀타지 쇼’로 ‘개그 한류’를 꿈꾸다

글 : 최선희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세바스찬’ 역을 맡아 ‘나가 있어!’라는 유행어와 함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개그맨 임혁필. ‘개콘’ 무대를 떠난 후 방송활동이 뜸하던 그를 다시 만난 곳은 합정동의 한 소극장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따 ‘임혁feel 소극장’이라고 이름 붙인 이곳에서 그는 매주 세 차례(금~일요일 저녁) ‘펀타지 쇼(funtasy show)’를 무대에 올린다. 대사가 없는 넌버벌 퍼포먼스인 ‘펀타지 쇼’는 특별한 홍보나 마케팅 없이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4년째 장기 공연 중인 독특한 작품. 2010년 대학로에서 시작했지만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대관료를 견디지 못하고 올해 초 합정동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공연 제목이 ‘펀타지 쇼’인데 ‘판타지 쇼’라고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펀타지는 즐겁다는 뜻의 ‘펀(fun)’과 ‘판타지(fantasy)’의 합성어예요. 즐겁고 신비한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마술, 마임, 비트박스, 그림자쇼, 샌드 아트(sand art)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 흘러갑니다. 뮤지컬, 연극, 개그 공연과는 또 다른 재미와 웃음이 있어요.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전 세대가 함께 공감하며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요.”

공연은, 한때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이제는 꿈조차 가물가물해졌다는 한 중년 남자의 넋두리로 시작된다. 힘겨운 일상을 하소연하다 벤치에 누워 깜빡 잠이 들고, 그의 꿈속에서 동심을 일깨우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줄거리를 듣고 있자니 그림을 전공했지만 개그맨이 되었고, 다시 공연기획자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의 모습이 겹쳐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인지 묻자 그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니라고도 할 수 없다”며 웃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자연스럽게 서양화과에 입학했지요.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지방대 미대 출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지 않아 좌절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러다 ‘추억이나 한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KBS 개그맨 시험에 응시했는데, 덜컥 합격을 한 거예요. 그것도 한 번에. 활동하는 동안 인기도 얻었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쳤고 나이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제가 계속해오던 공연과 연출로 방향을 정한 거죠.”


인기 개그맨에서 공연기획자로의 변신은 쉽지 않았다. 대학로에서 첫 작품으로 펀타지 쇼를 무대에 올렸을 때, 직접 포스터를 붙이러 다녔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연 홍보도 했다. 처음에는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거리로 나가는 것이 망설여질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걸 깨지 못하면 평생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무엇보다 힘든 건 빠듯한 예산이었다. 공연은 잘됐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대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강연이나 방송 등 외부 활동으로 얻은 수입을 공연에 쏟아부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3년을 버티다 합정동으로 왔다.

굽이굽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그를 붙잡아준 건 관객들의 격려와 칭찬이었다. 한 중년 관객은 “좋은 공연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공연 후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간식을 돌렸고, “10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 본 공연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평을 남겨 그를 감동시킨 관객도 있다. 요즘은 외국인 관객 수도 부쩍 늘었다.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펀타지 쇼는 코미디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지요. 이 공연을 성공시켜 개그맨 후배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지금 국내 코미디는 ‘개콘’ 같은 공개방송 형태로 장르가 한정되어 있고, 개그맨의 수명도 짧아요. 이런 새로운 장르들이 많아지면 그만큼 개그맨들의 활동 무대가 넓어지잖아요. 관객의 사랑과 함께 선배 개그맨으로서의 사명감이 이 공연을 이어가게 하는 중요한 동력입니다.”


독학으로 익힌 샌드 아트, 공연에도 접목


펀타지 쇼에서 그는 기획, 연출, 배우, 샌드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중 불이 켜진 아크릴판에 모래와 손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리는 샌드 아트는 웃음과 감동이 함께 느껴지는, 이 공연의 백미다.

샌드 아트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문 작가가 손에 꼽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 그는 4년 전 외국 동영상을 보며 독학으로 샌드 아트를 익혔다. 샌드 아티스트로 명성을 얻은 지금은 펀타지 쇼 외에도 여러 무대에서 샌드 아트를 선보인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개콘’을 나온 이후 더 바빠졌다. 틈틈이 그린 그림을 모아 개인전도 열었고, 아트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아이를 키우며 겪는 좌충우돌 일상을 그린 육아 에세이 만화책도 펴냈고, 몇 권의 책에 삽화도 그렸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많은 사람들과 즐겁게 나누기 위해 벽화 그리기 봉사도 한다. 대학생 봉사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학생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진행하는 정기 봉사에도 꾸준히 참여한다.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다 같은 맥락이에요. 공연이든 그림이든 책이든 봉사든 표현하는 형식이 다를 뿐이지, 제 작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같아요.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꿈을 꾸게 한다는 건 기쁘고 보람된 일이잖아요.”

요즘 그의 바람은 “좀 더 넓은 공간을 갖는 것”이다. 현재 100석 규모인 소극장에서는 무대가 좁아 구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다 펼쳐 보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펀타지 쇼를 계속 발전시켜 ‘개그 한류’ 바람을 일으킬 만한 작품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도 품고 있다. 탄탄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넌버벌 개그’라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전 세계인을 웃길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공연기획자로 멋지게 변신한 개그맨 임혁필, 그의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다.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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