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 있는 배우 강예원

<내 연애의 기억> 찍으며 제 연애의 기억 떠올랐어요

글 : 유슬기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흔한 로맨스 영화라고 보면 큰코다친다.
<내 연애의 기억>은 제작진의 패기와 배우의 뚝심이 만든 영화다. 그중에서도 강예원의 뚝심은 더욱 우뚝하다. 저예산이든 독립영화든,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면 몸 사리지 않고 뛰어들겠다고 한다.
<내 연애의 기억>을 관람한 기억은 좀 복잡하다. 파스텔 톤으로 만든 포스터는 온몸으로 이 영화가 로맨틱 코미디라고 말하고 있었다.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자 소름이 돋았다. 느슨하게 풀어졌던 자세를 곧추세웠다. 제작진에게 ‘한 방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반전 로맨스’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좀 온당치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공유하는 일, 로맨스란 결국 그 모든 과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니까. 강예원에 대한 기억도 ‘예상을 빗나간다’는 점에서 영화와 비슷하다.

데뷔 이후 <마법의 성>(2002)으로 한 차례 홍역을 앓은 뒤, 그는 다시 신인의 자세로 돌아갔다. 매번 치열하게 오디션에 임해 한 작품 한 작품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그렇게 <해운대>(2009)를 만났고, <하모니>(2009)를 찍었고, <헬로우고스트>(2010)를 지나 <퀵>(2011)에 이르렀을 때는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작품마다 뜻밖의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였지만, 작품 하나가 끝나면 더 믿음직스러운 배우가 되어 있었다.

<내 연애의 기억>은 강예원으로 시작한 영화다. 애초 제작이 불투명했던 저예산 영화인데, 시나리오를 읽은 강예원이 단박에 출연을 결정했다. 주변에서는 말렸다고 했다. 환경이 열악한 건 둘째고, 이런 신선한(?) 스토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예원은 밀어붙였다. 무엇보다 시나리오를 읽다 저도 모르게 “악~!” 하고 소리를 지른 부분에서 관객도 동일하게 반응할 거라 믿었다.

남자 배우를 구하지 못해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송새벽에게 연락을 취한 것도 그다. 두 사람은 지난해 <조선미녀삼총사>에서 한 번 호흡을 맞췄던 인연이 있다. 많은 이들이 송새벽의 선량하고 바른 이미지를 좋아하지만, 그가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가진 배우인지 강예원은 알고 있었다. 만약 어눌하고 느린 송새벽이 이 역할을 한다면 더욱 맞춤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송새벽과 이권 감독의 만남을 주선한 것도 그다. 이렇게 안팎으로 노력한 끝에(?) 영화가 탄생했다.



전작 <조선미녀삼총사>(2013) 인터뷰를 보니 “현실적인 영화, ‘다큐 느낌이 나는 영화’를 찍고 싶다”는 부분이 있던데, 차기작에서 바로 실현했네요.

<내 연애의 기억>은 대본을 읽는 순간 내 얘기 같았어요. 사랑을 하다 보면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잘 알고 있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잖아요. (현실에) 발이 닿는 영화를 찍고 싶었는데,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말 그대로 ‘저예산 영화’잖아요. 그만큼 위험부담도 크고요.

주변에서는 말렸어요. 새롭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고, 반응이 별로일 수 있다고. 제작비도 적고 빠른 회차 안에 끝내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고생만 하다 끝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송)새벽씨에게 시나리오를 건넨 건 (시나리오가) 아까워서였어요. 처음엔 제작진도 ‘아무래도 안 하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는데, 제가 가져다주고 일단 감독님이랑 마주 앉게 했어요. 새벽씨가 모든 일에 뭔가 좀 느려요(웃음). 막 독촉했죠. “어때? 봤어?” 이렇게.


예원씨 내레이션이 신선했어요. “둘러대려고 한 말이 진심이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고요.

그 장면 찍으면서 제 ‘연애의 기억’도 떠올랐어요. 저는 늘 미안했거든요. ‘좀 더 잘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늘 해요.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지 저는 늘 미안한 연애를 했던 것 같아요. 그 장면 찍을 때 은진과 강예원은 하나였어요. “그때 내가 더 잘했어야 했는데… 앞으론 내가 더 잘할게.” 그 말을 할 때 저 스스로도 퍽 하고 터졌죠.


평소 낯을 좀 가린다고 들었는데, 작품을 하고 나면 동료들과 깊은 정을 나누는 것 같아요. 함께 <헬로우고스트>(2010)를 찍었던 차태현씨는 지금도 가장 친한 여배우로 강예원씨를 꼽던데요?

인연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모두와 똑같이 친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오래가고 싶어요. 촬영감독님이나 녹음감독님과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요.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촬영장에서 만나죠. 그럼 울컥해요. 한 번은 제가 <끝까지 간다> 촬영장에 갔는데 거기 버스 기사님이 예전 <헬로우고스트>팀 기사님이신 거예요. 기사님께서 “우리 예원이가 더 크고 좋은 차 타고 다녔으면 좋겠어. 좋은 차로 바꿨어?”라고 하시는데, 눈물이 나려고 하더라고요.


감동적이네요.

그게 영화의 맛인 것 같아요. 시작할 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막상 끝나면 너무 그립죠. ‘이 캐릭터랑도 헤어지고, 이 사람들이랑도 헤어지면 이 빈자리는 어떻게 채우나’ 싶고요. 그럴 때가 제일 힘들어요.


그 빈자리를 채울 방법을 찾았나요?

그림을 시작했어요. 유화로 채우려고요. 혼자 지내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하니까 너무 정 주지 말고, 좀 강해지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내 연애의 기억> 아트 포스터도 직접 그렸다고요.

그림은 계속 그리려고요. 감정을 다스리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마음을 더 넓게 쓸 수 있고요.


연기와 공통점도 있나요? 연기자는 한 작품이 끝나면 소진되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요. 생각해보면 ‘방배우’나 ‘방화가’는 없어요. 밖으로 나와야 해요.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비워야 채워진다’는 거예요. 전에는 감정 신(scene) 찍는 날은 슬픈 감정을 기억하고 그 마음 그대로 촬영장에 갔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그 인물이 되면 그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제가 은진에 대해 깊이 알고 있으면 그 상황이 충분히 슬픈 거죠.


여러 얼굴을 가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진 얼굴’도 있고요(웃음). 영화에서 첫 번째 남자친구가 일진이었죠? 학창시절은 어땠나요?

노는 친구도 많았고, 1등 친구도 있었어요. 분당 서현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거의 전교생이 공부를 잘했어요. 일진도 공부를 잘했죠. 우리 반 꼴등이랑 저랑 친구였어요(웃음). 당시에 느낀 게 ‘사람은 딱 양분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공부 잘하면서 잘 노는 아이도 있고, 논다고 다 나쁜 아이도 아니고요. 뭐가 좋다, 나쁘다를 구분 지을 수 없는 거죠. 그때부터 누구를 만나든 ‘함부로 판단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내 연애의 기억>의 기획 의도에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강예원씨는 어떤가요?

실제로 커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요. 제가 볼 때 은진은 그 사람을 기다리거든요. 그 마음이야 누가 알겠어요. 저 역시 사랑에 대해 좀 쉽게 생각했던 걸 반성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라는 질문이 남았어요.


서툴고 솔직한 은진의 ‘연애 흑역사’를 연기하는 동안 강예원의 사랑관은 좀 더 단단해졌다.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어떤 과거를 가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알아버렸다.

덕분에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강예원의 영화도 좀 더 풍성해질 듯하다. 사랑이든 영화든, 앞뒤 재지 않고 몸을 사리지 않는 게 은진과 강예원의 공통점이니까.
  •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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