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특집 | 가족을 말하다] 화가 이상권, ‘아버지’ 주제로 가평 설미재미술관에서 개인전

이제, 아버지의 모습에서 저 자신을 봅니다

글 : 이선주 자유기고가  / 사진 : 김선아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이 거의 없어요. 아버지와 나눈 대화라고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가 전부였습니다. 남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는 게 사회적 통념이었고, 아버지는 게다가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였으니까요. 주말에도 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항상 ‘부재(不在)’ 상태였습니다. 아버지가 남겨두고 간 용돈으로 형과 저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서 수없이 많은 영화들을 보았고, 부재중인 아버지 대신 ‘록키’와 ‘수퍼맨’이 우리의 영웅이자 아버지가 되었죠. 그들을 보면서 남자는 어때야 하는지를 배웠고, ‘남자는 강해야 한다’고 믿으며 성장했습니다.”
아버지의 옷을 입은 ‘수퍼맨’과 ‘록키’

8월 1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가평군 설미재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상권의 작품에서 아버지의 얼굴이 서양인으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 그의 아버지도 키가 훤칠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 서구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색소폰·드럼 등을 연주하며 밤무대 밴드로 활약했다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은 화려했으리라. 아버지는 피아노를 치던 어머니를 악기상에서 만나 결혼했다. 아들은 뮤지션 시절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의 기억 속 아버지는 그저 가장이라는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묵묵히 일만 하셨다. 알루미늄 재생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는 외환위기 때 부도를 당한 후 재기하지 못하셨다. 대신 어머니가 된장·고추장을 만들어 파시면서 가계를 꾸리셨다.

아버지의 저녁_ 162.2×112.3cm, 캔버스에 아크릴, 2012
“어릴 때 살았던 집이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됐는데, 작업실로 쓰려고 찾아갔죠. 그곳에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처음으로 아버지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됐죠. 아버지는 낮이나 밤이나 술을 드셨는데, 아들 앞에서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셨습니다. 막걸리나 소주를 사이다에 섞어 주스곽이나 우유곽에 넣어 드셨죠. 때론 다기에 넣어 드시기도 하고요. 다리가 휘청거리는 데도 꼿꼿이 걸으려고 안간힘을 쓰시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어릴 적 한없이 커 보이고 당당했던 아버지는 이제 약해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고집불통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 하나 둘 모여든 아버지 친구 분들은 ‘빛나던 과거’를 회상하며 끊임없이 옛날이야기를 했다. ‘저렇게 과거로 돌아가다가는 태아 때의 뱃속까지 들어가겠다’ 싶을 정도였다. 1950년대에 태어나 격동기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쉼 없이 달려왔는데, 이제는 더 이상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된 아버지들. 그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걸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아침_ 162×130cm, 캔버스에 과슈아크릴, 2012
2012년 한 해 꼬박 그는 ‘아버지’만 그렸다. 〈아버지의 저녁〉에서 아버지는 옛날 장군의 투구를 쓰고 별이 셋 달린 서양군복을 입고 있다. 아버지 앞에 있는 상에는 다기와 칵테일잔이 놓여 있다. 다기 안에도 술이 담겼으리라. 홀쭉한 얼굴에 은테 안경을 쓴 아버지는 손을 단정하게 포개고 입을 꽉 다물어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여주려 하지만 불그스름해진 눈가를 감출 수가 없다. 작가는 “아버지가 살이 많이 빠지셔서 저 작품이 실제 아버지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았어요”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아침〉에서는 수퍼맨 러닝셔츠를 입은 배 나온 아저씨가 맥주를 마시고 있다.

“수퍼맨도 록키도 이제 늙었겠구나. 힘이 빠졌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록키 시리즈의 마지막 회인 〈록키 발보아〉에서 늙어버린 록키는 과거의 영광만 되새기다 마지막으로 링 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장렬하게 싸우다 패배하지요. 어린 시절 영웅의 패배에 섭섭하긴 했지만, ‘저게 세상 사는 이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점심_ 162×130cm, 캔버스에 과슈아크릴, 2012
그는 마지막 싸움에서 흠씬 두들겨 맞아 멍이 든 록키의 모습을 ‘아버지’로 그리기도 했다.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역시 이제는 세 아이의 아버지로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절감하고 있다.

“스무 살, 아버지 역할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된 후 도망치고 싶었고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돌아온 자리에서 아버지를 만났죠. 한 번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 없던 아버지가 이제는 제게 ‘니도 힘들제? 힘내라’고 말하세요. 저도 ‘어머니 편만 들어서 섭섭하셨죠?’라고 말씀드렸죠. 저 자신 자식한테 뭐든 더 해주고 싶은 아버지가 되고 보니 ‘그때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헤아리게 됩니다.”


가장의 책임을 짊어진 예술가의 삶

대왕카네이션1_ 130×130cm, 캔버스에 과슈아크릴, 2012
〈대왕카네이션〉에서는 가슴에 커다란 꽃을 단 남자가 등장한다.

“1년에 한 번 아들딸이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이 사실은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라는 자격을 부여하면서 어마어마한 책임감과 의무, 희생을 요구하지요.”

작가로서의 길과 한 집의 가장으로서의 길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생활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일을 하면서도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제일 저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같고, 삶의 고달픔을 잊게 하는 희열이 있으니까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아버지들같이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대왕카네이션2_ 130×130cm, 캔버스에 과슈아크릴, 2012
스쿠버다이버로도 오랫동안 일했던 그는 현재 채소가게와 고추방앗간을 꾸리면서 일터 한켠에 작업실을 두고 틈틈이 그림을 그린다.

“저 자신을 돌아보니 어릴 적에 본 아버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주말에도 일하느라 아이들과 놀아주지도 못하고. 항상 시간에 쫓기고 여유가 없다 보니 아이들이 어디 가자고 조르면 ‘다음에 가자’는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나를 ‘다음에 가자’로 기억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되도록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려 노력합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_ 72.7×53cm, 캔버스에 아크릴, 2014
요즘 그는 경첩이 달린 옛날 장롱을 그리고 있다.

“어머니가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장롱이 있는데, 이제는 잡동사니를 담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한구석에 놓여 있습니다. 그 장롱도 숲 속에서 곧은 자태를 뽐내는 나무였던 시절이 있겠지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잘려 나간 나무는 장롱이라는 용도에 맞게 만들어졌다 이제는 그 존재 가치조차 퇴색해버린 겁니다. 세 아이의 아버지인 저도 ‘푸르른 나무였던 시절이 있었던가?’ 가끔 생각해봅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딸, 엄마만 찾는 아들, 아이들 키우는 데 골몰한 아내 사이에서 나란 존재는 무엇일까,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퇴색한 가구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이 옮겨주지 않으면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 마음속 서랍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는.”

태양은 어디에_ 54×40cm, 캔버스에 아크릴, 2014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에서는 장롱의 서랍 문이 열리고 호랑이·코뿔소·기린·코끼리가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있다. 2009년 부산 동아대, 2011년 부산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아직 젊은 작가다. 30대 초반인 그는 “20대 때의 작업과는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한 집의 가장이 되고 생활인이 되면서 거창한 주제니 개념 같은 게 점점 빠져나가고 비워지는 느낌입니다. 20대였다면 별별 이즘이나 개념을 덕지덕지 붙여서 제 작품을 설명하려 했겠지요.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해요.

앞으로 제 작품이 어떻게 변해갈지는 저도 알 수 없어요. 그러나 작품을 계속하고 있겠지요.”

화가, 예술가의 삶은 우리와 다를 것이라는 예상을 그는 깨뜨린다.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 현실의 무게를 저버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서 화가로서 자신의 길을 가려고 한다.

그의 그림은 그래서 오늘의 현실을 살아내는 그의 이야기이자,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tip

설미재미술관은 서울-춘천간 고속도로 설악 IC에서 자동차로 5분여 거리에 있다. 설악 IC를 통과해 유명산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변 언덕 위에 있는데, 산속에 폭 파묻힌 정경이다. 서양화가 추경씨가 설립한 사립미술관으로, 젊은 작가들을 육성하는 창작 스튜디오도 함께 운영한다.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유명로 1454-38, 031-585-6276
  •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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