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사람 - 앙겔라 메르켈

전 세계 영향력 있는 여성 1위 동독 출신 최초 여성 총리, 삼선 연임 성공한 유럽연합의 절대 강자

글 : 임현선 기자  / 사진 : 조선DB 

<포브스>가 201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로 선정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05년 11월 총리 취임 전까지 ‘아웃사이더’였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 통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통일독일에서 동독 출신은 종종 ‘멸시의 대상’이었다. 일부 서독인은 동독인을 ‘오시(Ossi)’라고 부르며 비하했다. 그는 가톨릭 전통이 강한 정당에서 개신교 신자였으며 남자들이 대다수인 정계에서 여자로서 수적인 불리함을 감수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정계에 입문한 메르켈은 2000년 기독민주연합의 대표가 되고, 2005년 통일독일의 최초 여성총리가 된다. 2009년 재신임 뒤에는 유럽연합을 뒤흔든 경제위기 문제를 진두지휘했으며, 2013년 삼선에 성공해 세 번째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의 공식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책담)는 그가 어떻게 ‘변방에서 중앙으로’ 진입했는지, 그 과정을 충실히 기술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위기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에 열광했던 소녀 시절

앙겔라 메르켈은 1954년 서독에서 태어났지만 곧 동독으로 이주했다. 아버지 호른스트 카스너 목사는 그곳에서 교회행정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어린 앙겔라는 정치적으로 열린 가정에서 성장했다. 라틴어와 영어교사였던 어머니로부터 언어적 재능을 물려받은 탓에 러시아어를 잘했다. 러시아어 올림픽에 출전해 전국 1등을 한 적도 있다. 청소년 시절 롤모델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마리 퀴리였다. 이에 따라 전공을 물리학으로 선택했고 라이프치히에 있는 카를마르크스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그는 여행을 좋아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겼다.

소련의 사회체제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러시아어와 소련 문화를 선호했다. 특히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1974년 교환학생 자격으로 소련에 갔고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를 여행했다. 여행에 동행했던 울리히 메르켈과 대학생 때인 1977년 결혼했으나 1982년 이혼했다. 이후 메르켈은 러시아 남부와 아르메니아・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을 밟았다. 트리빌리시에서는 역에서 노숙도 했다. 당시 그의 마음은 서방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욕구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미국을 동경했으므로 이 시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동독은 60세가 넘어 연금을 수령하는 여자들에게 서방국가 여행을 허락했기 때문에 젊은 그에게 미국 여행은 꿈과 같았다. 어렸을 때 그는 영화와 책, 때때로 서독에 사는 친척이 보내준 자료들에서 미국을 보았다.

“나는 아메리칸 드림에 감탄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곳, 성공이 있는 곳, 자신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10대들이 그렇듯, 나 역시 서독에 사는 친척이 정기적으로 보내주었던, 동독에서는 구할 수 없는 특정 브랜드의 청바지에 열광했습니다.”

메르켈은 석사학위 취득 후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일했다. 이곳에서 두 번째 남편 요아힘 자우어 박사를 만났다. 메르켈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일할 기회를 얻은 남편 덕분에 36세에 꿈에 그리던 미국 여행을 할 수 있었다. 2011년 7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미국 최고의 시민상인 자유메달훈장을 수여했다. 메르켈의 아메리칸 드림은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정치 입문


동독과 서독은 분단 이후에도 교류의 끈은 놓지 않았다. 그러나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생긴 뒤 더 이상 사람이 오고 가는 왕래는 어려웠다. 견고한 이 장벽은 1989년 11월 무너졌다. 메르켈은 어린 시절부터 독일의 분단을 수용하지 않았고 서독 정치를 열렬히 추종했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대가를 요구했다. 속내 감추기와 말조심은 감시국가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었다.

1989년 12월 메르켈은 동독의 야당인 민주약진에 가입했다. 신생정당인 민주약진은 많은 것이 미완성이라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메르켈은 이듬해 2월 학계를 떠나 정당인이 되었다. 민주약진은 보수당인 기독민주연합, 독일사회연합과 동맹을 맺고 선거에서 압승한 뒤 연립정부의 구성원이 되었다. 이후 민주약진은 기독민주연합과 통합했고, 메르켈은 정부 부대변인으로 행정부처에 입성했다. 헬무트 콜 총리는 1991년 통일정부 내각에 메르켈을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메르켈은 1994년 환경부로 자리를 옮겼고 1998년 총선 패배로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넘긴 뒤 기독민주연합의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비자금 스캔들로 당의 위상이 바닥으로 추락했던 2000년 당 대표를 맡았다. ‘위기’가 그에게 준 ‘기회’였다.


일방적 승리 아닌 연합정치를 통한 ‘반걸음’의 진전 선호

2013년 5월 출간된 《앙겔라 메르켈의 젊은 시절》의 표지.
자연과학자 메르켈은 우연의 힘을 믿지 않는다. 끊임없는 토론, 타협, 논쟁과 투쟁으로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을 통한 가장 합리적 승리의 방식을 추구했다. 정치인 메르켈에게 가장 큰 힘은 침묵과 무심함, 모호함이다. 멋진 말로 대중을 설득하기보다 침묵과 행동으로 자신의 정책을 하나씩 관철했다. 특유의 무심함으로 권모술수의 정치인들을 제압했다. 논쟁의 자리에선 강력한 논거와 신념으로 임하되, 일방적 승리가 아니라 연합 정치를 통한 ‘반걸음’의 진전을 선호했다. 한발 물러서는 유연함도 메르켈 총리의 장점이다. 그는 2011년 일본 해안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문제가 대두하자, 평소 신념이었던 원자력 안전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2022년까지 탈핵 국가가 되는 계획에 서명했다.

메르켈의 최측근에 따르면 “총리는 완벽한 탈정치적 정치가”다. 탈정치적 정치가는 한곳에 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다. 확신을 버리고 유연성을 유지하며 올바른 타이밍을 기다린다. 그는 이념적 신의를 요구하지 않으며 이념을 권력의 척도로 삼지 않는다. 합리적 가늠과 근거 있는 주장이 우선하는 세계, 즉 논리와 반대 논리의 세계에 참여하기를 요구한다.

메르켈의 외교 정책의 핵심에는 미국이 있다. 그는 지금까지 “외교정책에서 중요한 근본은 미국과의 파트너십과 국제적인 동맹”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메르켈에게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재건 및 서방국가동맹 합류를 도와준 나라다. 독일은 패전 이후 서방국가로부터 ‘고립’을 경험했으며 이 때문에 ‘동서 분단’이라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되었음을 늘 교훈으로 삼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촉발된 유럽의 경제위기 속에서 메르켈은 독보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며 전 세계적인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튼실한 독일경제가 있었다. 총리 취임 이후 메르켈은 해마다 중국을 방문한다. 그때마다 중국의 도로에서 쉽게 눈에 띄는 독일산 자동차를 확인하고 안도한다. 유럽연합이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절반은 독일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중국은 독일경제 안정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독일인이 메르켈 총리를 역대 가장 열려 있는 총리로 평가한다. 동독이라는 폐쇄적인 정치체제에서 성장했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을 잃지 않고 자랄 수 있음을 증명한 사람으로 인정한다. 한 명의 뛰어난 정치인을 통해 독일인들은 분단의 역사가 남긴 상처를 성공적으로 치유하고 있다.
  •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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