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대중화 이끄는 가객 정마리

자연을 닮은 우리 소리 정가(正歌)의 매력을 아세요?

글 : 이선주 자유기고가  / 사진 : 김선아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소리다. 맑고 투명하게 부르는 가성이 묘하게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숲 사이로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피리 부는 소리, 거문고 뜯는 소리 같기도 하다. 모시옷 사이로 맨살이 아른아른 비치는 것같이 보일 듯 사라지고, 숨어 있다 물결치듯 나온다. 정가(正歌)를 부르는 가객 정마리를 운현궁에서 만났다. 정마리에게 잘 어울리는 장소다. 한옥에서 열리는 음악회에 참가하는 일이 잦은 그는 자신에게 한옥은 굉장히 큰 악기와도 같다고 말한다.

“한옥은 나무로 지은 데다 바닥 밑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어 공명이 잘돼요. 또 나갈 소리는 나가고 반사할 소리는 반사하죠. 그 속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제가 가야금의 나무판 위에 얹힌 줄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옥은 어디 하나 똑같은 곳이 없어요. 주인양반의 키에 따라 툇마루나 대문 높이가 달라지고, 주변 산의 높이에 따라 비례도 달라지지요. 저는 보통 공연할 장소를 미리 가보고 그 공간에 맞는 소리를 준비합니다. 음색을 어둡게 낼지, 밝게 낼지, 소리의 밀도를 압축해서 낼지, 부드럽게 낼지, 소리의 그러데이션을 세심하게 조절하는 데 연주자의 능력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가는 선비들이 풍류 즐길 때 부르던 노래

노래 부를 때뿐 아니라 말할 때도 리드미컬한 그의 목소리가 감칠맛 나게 귀에 착착 감긴다. 정가는 가곡, 가사, 시조 등을 부르는 정악(正樂)의 성악곡으로, 아정(雅正)한 노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판소리는 자주 들어봤다는 사람조차 정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도 정가는 대중적인 음악이 아니었다. 선비들이 모여서 풍류를 즐길 때, 혹은 궁중행사에나 등장하는 음악이었다. 마니아층이 아니면 즐기기도 어려운 음악이다. 45음절을 10분으로 늘려 부르니, 버드나무의 경우 ‘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식으로 모음만 남아 노랫말을 알아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미 내용을 아는 사람들이 ‘이 가객은 어떤 색깔로 불러줄지’ 기대하면서, 각자 버드나무가 늘어서 있는 풍경을 연상하며 듣는 노래다. 그런데 그 독특한 매력에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노래이기도 하다.

“판소리가 말을 아주 많이 한다면, 정가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 노래입니다. 음색도 발성법도 다르죠. 판소리가 드라마틱하게 희로애락을 담아서 노래한다면 정가는 유리같이 맑고 정적인 소리입니다. 고요하고 평온하지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내게 하는,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노래죠.”

남자와 여자가 같은 창법으로 부르는 시조, 가사와 달리 가곡은 남자와 여자의 발성이 다르다. 남창가곡이 호탕한 기세로 임금님에 대한 충절 등을 노래한다면, 여창가곡은 임과의 이별, 세월무상 같은 노래를 섬세하게 육성과 가성을 오가며 부른다. 그는 여창가곡에 대해 “한국여성의 아름다움을 소리로 형상화한 듯하다”고 말한다.

“남창가곡은 선비가 불렀다면, 여창가곡은 전문예술인이라 할 수 있는 기생이 불렀습니다. 명기가 되는 첫 번째 조건이 노래, 두 번째가 춤, 세 번째가 악기 연주였을 정도로, 여성의 매력을 극대화해서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가야금・거문고・대금・피리・해금・장고 등 여섯 악기, 때로는 양금・단소까지 반주로 동원될 정도로 호사스럽게 불리는 노래였죠. 궁중행사에는 전국의 노래하는 기생 40명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국악고에 입학한 열네 살 때부터 마흔인 지금까지 26년 동안 정가를 불러왔지만 질리기는커녕 점점 더 좋아진다는 그는 “제가 정말 좋으니까 그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국악고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는 산골소녀였다. 서울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결혼 직후 지리산 쌍계사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산골에 터를 잡았다. 텃밭을 가꾸고 소 돼지 염소 닭 사슴 등 갖가지 동물을 키우고, 누에도 쳤다. 산골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다. 밤이면 촛불을 켜놓고 가족 노래자랑이 펼쳐졌다. 그러나 음악레슨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던 그의 꿈은 농장주였다.

“아버지가 ‘공부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며 농사일을 권하셨고, 저도 그게 제 적성이라 생각했어요. 동물들과 함께 생활하는 게 좋았거든요. 2년이나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해 열세 살 때 벌써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그해 4월에 장기 결석계를 내고 집에서 농사일을 배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여름방학 때 받은 탐구생활 교재에서 국악고 소개를 본 게 그의 삶을 바꿨다. 우리 노래로 판소리와 정가를 배운다고 하는데, 판소리는 알았어도 정가는 뭔지 몰랐다. 그는 국악고에 전화해 “정가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우리나라 선비들이 하던 음악으로, 목소리가 맑고 고운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라는 말에 그는 “이 학교에 가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했다. 석 달밖에 안 남은 입학시험을 앞두고 학교 음악선생님께 실기과목인 시창-청음을 배우고, 하루에 두 시간밖에 안 자면서 공부한 끝에 합격했다. 그리고 열네 살 어린 나이에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 하숙을 하며 국악고를 다녔다.

“새로운 공부가 신기하고 재미있어 너무너무 열심히 했어요. 서양음악을 먼저 공부했던 친구들은 서양음악의 틀을 우리 음악으로 바꾸느라 혼란을 겪었지만, 저는 처음 접한 게 국악이라 스펀지처럼 흡수했습니다.”


김광석 오마주 음반 ‘외사랑’을 정가로 불러 화제


그 후 서울대 음대 국악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전통음악뿐 아니라 서양 고전음악, 현대음악, 대중음악, 영화음악, 연극, 무용공연에도 참여하면서 외연을 계속 확장해왔다. 독일・일본・ 인도 등 외국에서도 공연했다. 일반인에게는 영화 〈해안선〉에서 미영의 테마로 등장한 노래 ‘모래숲’이나 최근 출시된 김광석 오마주 음반에 실린 ‘외사랑’ 같은 노래가 더 쉽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모래숲’의 경우 정가의 다양한 창법 중 일부인 곱게 소리 내는 법을 가져와 불렀습니다. ‘외사랑’은 ‘눈을 감으면 흘러내릴까봐 눈도 못 감는’ 사랑이잖아요? 울지 않으려고 꾹꾹 억누르니 더 슬픈 거죠.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가장 깨끗하게 불러야겠다. 담담하게 불러 내려야겠다’ 생각했죠.”

〈해안선〉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씨〉 〈바람난 가족〉 〈주먹이 운다〉 등 영화, 〈명월이 만공산 하니〉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레이디 맥베스〉 등 연극, 안은미・전홍조・홍승엽 등의 현대무용에서 노래를 불렀고, 가야금・거문고뿐 아니라 류트・하프시코드・켈틱 하프 등 서양의 고악기와도 협연을 한다.

“무용공연의 경우 안무가가 이제까지 무엇을 작업했는지까지 연구합니다. 그 공연에서 제가 꼭 있어야 하는 필연성을 찾기 위해서죠. 잘못하면 전통음악이라는 이미지가 쉽게 차용되고 소비되어 버릴 수도 있잖아요? 정가라는 게 사람들에게 그저 낯설고 신기한 볼거리가 되면 슬픈 일이지요. 정가의 매력을 표현하겠다는 목표는 같지만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지는 매번 영점에서 다시 생각합니다.”

2010년에는 미술작가 이수경과 함께 아르코미술관에서 <정마리의 정가 이수경의 헌신>이라는 색다른 공연 겸 전시를 했다.

“다른 작가의 전시회에서 제 노래를 들었던 이수경 작가가 ‘반했다’며 함께 작업을 하자고 청했어요. 작가는 저의 노래에 대한 오마주로 시각적인 공간을 만들고, 저는 그 공간을 소리로 채우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정가에서 반주를 빼고 오로지 자신의 목소리로만 60~70분을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한 공간에서 소리가 계속 이어질 때 듣는 사람에게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정된 자세로 앉아 쉴 새 없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9개월 동안 음식조절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몸을 만들었다. ‘헌신을 받는 존재’가 된 만큼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생각하려고 했다 한다. 반주 없이 부르는 정마리의 정가는 올해 <마리송>이라는 이름의 음반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오는 9월 17일 오후 8시, 그는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특별한 공연을 연다. 미사 형식을 취하면서 서양 고음악인 그레고리안 성가와 정가를 번갈아 부르는 공연이다. 전통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서양의 고음악도 궁금했던 그는 고음악 합창단의 소프라노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께 바치는 가장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노래를 추구했던 그레고리안 성가는 정가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많아 둘을 섞어놓아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고 한다.

“기획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제가 주최가 되는 독창회는 2005년 이후 두 번째입니다. 9년 동안 제가 어떻게 변했는지, 성장했는지 알 수 있는 기회죠. 9년 전 저는 제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느냐를 먼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면 너무 좋아서 열심히 부르는 가수였죠. 그러나 여러 작업을 거치면서 이제, 저의 방향은 달라졌습니다. 그저 제 소리를 그 공간에 잘 놓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특별한 시간과 공간을 경험했으면, 그래서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저만 행복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감사하니까요.”
  • 2014년 09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1

2019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