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금(禁) 애니 <발광하는 현대사> 홍덕표 감독

사랑과 욕망, 권력과 착취에 관한 보고서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한국 현대사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담고 있을 것 같은 제목의 <발광하는 현대사>는 사실 성인 애니메이션이다. 그것도 극장 개봉 없이 VOD로만 승부하는, 국내 최초 VOD 전용 애니메이션이다. ‘성인’과 ‘애니메이션’이라는 두 단어의 조합이 농도 짙은 그림을 연상시키지만 오해 마시길. <발광하는 현대사>는 포르노가 아니다. 사랑과 욕망, 권력과 착취, 지배와 종속에 관한 보고서다.

<발광하는 현대사>는 제작 단계부터 업계의 관심을 받았다. 강도하 작가가 쓴 동명의 웹툰이 원작인 데다, <돼지의 왕> <사이비>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새롭게 쓴 연상호 감독이 프로듀싱을 맡았기 때문. 여기에 <남자다운 수다>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집행위원회 특별상을 받으며 애니메이션 최초 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둔 홍덕표 감독이 합세하면서 모두의 이목이 쏠렸다. 작품이 공개된 지 1주일 만인 지난 7월 17일, 홍덕표 감독을 만났다. 그는 “연상호 감독 없는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라 설렌다”며 쑥스러워했다.


<발광하는 현대사>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늘 갈증이 있었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대부분 아동용, 가족용이지 않나. 좀 더 사실적이고 적나라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웹툰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만화적인 작품보다 우리 삶에 밀착돼 있는 현실적인 작품이 보고 싶더라. 그런데 웹툰 <발광하는 현대사>를 보며 그간 애니메이션과 웹툰에 느꼈던 갈증이 일시에 해갈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웹툰으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싶었다. 연상호 감독이 제안했을 때 바로 수락한 이유다.

기존 애니메이션과 구별되는 이 작품만의 특징은 뭔가.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이야기라는 것. 적나라하고 노골적이다. 현대는 결혼을 하고도 끊임없이 다른 여자를 탐하고, 순이는 그걸 알면서도 현대와의 관계에 집착하며 가정을 유지하려 한다. 교수인 춘배는 권력을 이용해 조교 미정을 학대한다. 애니메이션치고는 지나치게 사실적이다. 과연 이런 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할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이야기 전개 순서가 웹툰과 약간 다르더라.

이야기가 좀 더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에피소드 배치를 다시 했다. 또 원작이 너무 직설적이라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은 덜어내려고 했다. 순이와 그의 직장 동료 훈이 이야기를 따뜻하게 그린 것도, 중간중간 음식 이미지를 넣거나 로맨틱한 음악을 깐 것도 분위기 전환을 위해서였다.


10명 이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가장 공감 가는 캐릭터를 꼽는다면.

주부학생. 사랑하는 사람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에 공감이 갔다. 비슷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내게도 있고. 매력적이라고 느낀 건 민중이었다. 일단 제일 어리고(웃음), 다른 인물이 모두 현실적이고 정적인 반면 민중은 역동적이다. 애니메이터에게도 신경 써달라고 했다. 표정도 풍부하게 하고, 움직임도 과하게 잡아주고. 체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 이야기가 잠깐 나왔는데, 최근 성인 애니메이션은 한 편도 안 나온 것 같다.

10년 넘게 안 나오다 <발광하는 현대사>가 툭 던져진 거다. 그만큼 제작 여건이 안 좋다. 일단 소비자층이 검증되지 않았다. 제작하는 사람이나 투자하는 사람이나 ‘검증된 시장’을 보고 뛰어들 수밖에 없는데, 검증된 건 TV시리즈물이나 가족용 애니메이션뿐이다. 다시 말해 데이터가 없다는 얘기다.




<발광하는 현대사>가 잘되면 하나의 데이터가 될 수도 있겠다.

맞다. 물꼬를 틀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사명감도 있다.

검증된 성인 애니메이션 소비자가 없는 건 결국 성인 애니메이션이 없어서 아닌가.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밝고 동화적인 작품들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그런 성향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다양한 창작 욕구는 있겠지만 그게 시장까지 도달하기 힘든 측면도 있고.


시장은 다양한 작품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길 기대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 속도도 매우 중요하다.

1년 만에 작업을 끝마쳤다. 보통 극장용 애니메이션 한 편을 만들려면 최소 4년, 길게는 7년이 걸린다. 그림 퀄리티에 지나치게 매달리기 때문이다. 그래선 안 된다. 그림과 움직임이 완벽하지 않아도 스토리가 탄탄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애니메이션도 결국 영화 아닌가. 관객은 드라마를 보지 그림을 보지 않는다. 산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애니메이션이 산업으로서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맞는 말이다. 장가 가고 싶다(웃음). 애니메이션 만들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 내게 <발광하는 현대사>는 큰 의미가 있다. 이전까지는 작업을 하나의 ‘활동’으로 생각했다면, <발광하는 현대사>는 ‘일’로 생각했다. 직업으로서의 감독이 되고 싶다. 애니메이션으로 멜로도 하고, 성인층을 겨냥한 액션도 하고 싶다.
  •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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