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 비디오 아티스트 김순기

예술은 저항이다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예술은 저항이다.’라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프랑스를 기반으로 세계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비디오 아티스트 김순기 씨가 주인공이다. 보통 그를 일컬어 “예술과 자본, 그 속에서 예술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비디오 작가”라고 칭한다.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달, 어디에, 시장을 넘어서, 침묵,≫전에서 그를 만났다.

사진제공 : 아트선재센터 www.samuso.org
“어느 날 장주(莊周)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별이 있기는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사물의 변화’라 한다.”

위 내용은 <장자>에 실려 있는 ‘나비의 꿈’이다. 비디오아티스트 김순기 작가(68)는 ‘나비’를 자신의 자화상이라 여긴단다. “한 작가의 작업이란 신비스럽고 절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자아의 감정이나 이데아를 표현해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작업 그 자체’로서만이 가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이란 ‘내가 없음 (무아)의 행위함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장 뤽 낭시에게 보낸 1997년 4월 3일자 편지의 한 구절, [멀티미디어 아트에 대하여] 중에서)

그는 1970년대 초부터 퍼포먼스,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하고도 실험적인 형식의 작업을 해왔다. 노장사상과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을 작업의 근저로 해 시간과 언어,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사유를 심층적으로 다루어 왔다.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사유에 집중


그는 1971년 서울대학교 미대와 대학원을 수료하고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 프랑스로 건너갔다. 작가로 활동하며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마르세이유 고등미술학교, 디종 국립고등미술학교의 교수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나봐요.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화가가 되라고 하셨는데 ‘자유롭게 그림 그리는 사람’이 화가라는 말을 듣고 그때부터 파리의 화가는 제 꿈이었죠. 장학금이 끝나는 시점에 교수자격 시험을 치라는 권유를 받았어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었죠.”

1973년 처음 비디오 작업을 시작한 이래 설치, 비디오, 멀티미디어 아트, 퍼포먼스, 사진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그의 작품은 광주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오스트리아 현대미술관, 보스니아 아르 에비(Ars Aevi)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까르띠에 파운데이션, 니스 근현대미술관, 캘리포니아 샌디에고 미술관 등에서 전시했다.

최근 전시로는 2013년 12월 6일부터 올해 2월 8일까지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슬라우트 파운데이션(Slought Foundation)에서 열린 김순기 개인전 《비팅 더 마켓(Beating the Market)》이 있다. 또한, 『게으른 구름(Nuages Paresseux)』(1999), 『산, 바다요 / 장자 & 비트겐슈타인(Montagne, C’est la Mer / Tchoung-Tseu & Wittgenstein)』 같은 시적 그리고 철학적 담론을 담은 저서를 발간했다.

이번 전시는 2000년 ≪주식거래≫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개인전 ≪달, 어디에, 시장을 넘어서, 침묵,≫전으로 예술과 자본의 문제에 대한 작가의 오랜 탐구를 담았다. 전시장 안에는 예술가 및 철학자들과의 인터뷰 작업, '편지 시리즈', '바보 사진 시리즈' 등을 볼 수 있다.

그는 장자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바탕으로 실험적 형식 속에 시간과 언어,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아내고 있다. “나비를 좋아해요. 누군가 나에게 나비 같다고 한다면 가장 큰 칭찬일 거에요.”

장자를 가까이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할아버지 영향이 컸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밑에서 고전을 배웠고, 고등학교 때부터 국립국악원에서 단소를 배웠고 주역을 몰래 읽었어요. 노자는 윤리적인데 비해 장자는 파격적이고 자유로워요. 예술은 유유히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이다라는 패러독스한 모습이 있어요. 장자는 읽을수록 시원합니다.”

이런 사유는 작품 <달들>에도 잘 드러난다. 어려서부터 그는 달을 좋아했다고 한다. “집에서 자주 없어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달구경을 간 것이었어요. 달은 매우 여성적이이죠. 동양사상은 정적인데 침투해서 싸우는 철학이 아니라 받는 철학이라 할 수 있어요. 방어하는 게 더 중요한 거죠. 철학자인 데리다가 말하길 서양철학은 피라미드형 권력지향적인 사상이다. 중요한 것은 피라미드 위에는 아무것 도 없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어요. 바깥으로 나가는 즉 남성적이고, 전략적이고 침투하고 싸우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흥미롭게도 유럽에서는 동양사상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미 다 갖다버리다시피 한 전통을요.”

작품 <달들>은 그가 직접 제작한 핀홀 카메라를 이용해 얻은 사진이다. 우연의 일치인 셈인데 사진기에 구멍을 뚫어 오랫동안 고정시킨 것이다. 달을 둥글다고 생각하는 관람객들에게 이런 직선적인 달은 낯설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무작위로 편집한 영상과 승무 인간문화재 이애주의 모습을 합성하여 랜덤으로 처리한 비디오 작업인 <애-주-애-주(AIE-JOU-AIE-JOU)>(2013)도 패러독스가 강한 작품이다. ‘편지시리즈’는 아예 왼손으로 쓴 서예다.

“이애주는 고등학교 때 친구이기도 한데 애주는 심심하면 찍었어요. 애주는 춤추는 사람인데 오히려 그냥 앉아 있는 게 강한 인상을 주죠. 춤은 오히려 비디오가 춥니다. 중요한 소리일수록 말이 없어요. 너무나 중요한 순간엔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작품에 소리를 없앴어요.”

전시 제목인 ‘달, 어디에, 시장을 넘어서, 침묵’도 매우 상징적이다. 그는 오늘날의 미술, 그리고 국제화된 미술계와 미술시장과 작가 간의 관계에 대해 중요한 질문들을 던진다. 이 질문은 5월 20일에 열린 “어떻게, 침묵은, 저항은, 김순기의 예술(Comment arrive, Silence, Résistance, Dans L'art de Kim Soun Gui)” 컨퍼런스의 주제이기도 했다. 한국, 미국, 프랑스 철학자들이 참여하는 컨퍼런스에서는 스카이프 연결을 통해 장-뤽 낭시와 토론을 펼쳤다. 장뤽 낭시와의 대화는 2002년 광주국제비안날레 행사에 소개되기도 했다.


예술가는 스스로를 ‘질문하는 자’


<데리다와의 대화(Conversation with Derrida)>(2002)에서는 세계화에 저항하는 '침묵의 예술'에 대한 관심과 동양 정신성의 관점에서 해체주의의 근간을 고민하는 철학적 사유를 보여준다.

아트선재센터 전시 외에도 현대미술관에서 7월 중순까지 열린 아시아 여성 미디어 작가들을 모아서 전시하는 그룹전 “인피니트 첼린지”에서 그는 새 비디오 설치 작업에도 참여했다.

“‘예술행위’는 무엇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가 중요한 것 같아요. 행복합니다. 프랑스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세상이 나아가는 것을 보면 처량하지만 그렇지만 난 행복하다.’ 나 역시 하고싶은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를 인터뷰한 날은 마침 구십이 되신 어머님 유연준 씨의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평생 서예가로 살아오신 어머니는 어쩌면 살아있는 한국사의 아카이브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전통이 단절되는 우리 시대를 안타까워하는 그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이 왜 동양사상을 지금 그토록 열정적으로 공부하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파리 근교의 시골농장 작업실에서 조용히 작업을 하면서 세계와 예술가들에게 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질문하는 자’라고 명명하고 있다.
  •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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