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사람 - 8월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한국에 가면 가장 작은 차를 이용하고 싶다.” 8월 14~18일, 4박5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인에게 당부한 말이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종교 유무와 상관없이 교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황은 전 세계 인구의 17%에 달하는 13억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며 ‘살아 있는 신의 대리자’로 불린다. 그동안 유럽 출신 추기경들이 교황 자리를 이어왔다. 지난해 3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미 출신 첫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 세계 언론은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곧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교황의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 검소한 생활 방식, 진정성 있는 발언에 호감을 보이고 있다.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아홉. 그의 생애를 다룬 전기 《교황 프란치스코》(RHK),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하양인)를 통해 교황이 그려온 삶의 궤적을 살폈다.

사진제공 : RHK·하양인
그를 프란치스코라 부르는 이유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으로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프란치스코 교황의 본명은 호르헤 베르고글리오다. 교황 선거 결과가 확정되었을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클라우디오 후메스 추기경은 베르고글리오에게 축하인사를 전하며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이 순간 베르고글리오는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써달라”고 기도했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떠올렸다.

“개표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나는 지난 세월의 여러 전쟁에 대해 생각했다. 프란치스코 역시 평화를 대변했던 사람이다. 나에게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평화,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대변인이다.”

그 후로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불렸다. 교황의 이름으로 프란치스코가 채택된 경우는 처음이다.


교황은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5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회계사였고, 어머니는 문학과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화목한 가정에서 큰 어려움 없이 자란 그에게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노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너도 이제 중학교에 입학할 테니 일을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얼마 후 그는 아버지가 회계 업무를 봐주던 양말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 2년 동안은 청소만 했고, 3년째부터 관리 업무를 맡았다. 식품화학을 전공하는 공업학교에 진학한 이후에는 제약회사에 입사해 오전 7시부터 오후 1시까지 근무했다. 일이 끝나고 나면 오후 8시까지 수업을 들어야 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당시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교황은 이 시기를 “업무가 나의 단련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7세 때 신부가 되기로 한다. 그전에는 친구들과 가끔 춤을 추러 다니는 평범한 10대였다. 좋아하는 여자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다가온 영적 체험은 그를 성직자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다고 곧장 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아니다. 약 4년간 아무에게도 자신의 결정을 말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식품영양분석실에서 계속 일했다.


21세 때 그는 예수회에 속한 신학교에 입학하기로 한다. 당시 교황은 폐렴을 앓아 우측 폐상엽 절제술을 받았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흘간 치열하게 싸우면서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고통과 마주했다.

“고통은 그 자체로 미덕이 아니지만, 고통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고결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소명은 온전함과 행복이다. 이를 찾는 과정에서 고통은 제한 요인일 뿐이다.”

종교인으로서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즐거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마더 테레사가 한 말로 알려진 “슬퍼하는 성자는 변변찮은 성자다”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콘스티투시온 광장 미사 집전.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학에서 인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산타페 고등학교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가르치며 교육자로 일했다. 이후 예수회 수련장, 막시모 대학의 학장과 신학 교수 겸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좌주교를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 되었으며, 2001년 추기경단에 등록되었다. 자서전 집필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매혹적으로 사람의 시선을 끄는 인물이 아니라 매우 낮은 톤으로 그러나 심오한 내용을 강론하는 분”으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에도 교황의 검소함이 종종 소개돼 화제가 된 바 있다. 교황으로 선출된 날, 그는 자동차 행렬을 거부하고 간소한 경호와 경찰의 선도 차량 없이 사람들 앞에 나섰다.

추기경 시절, 교황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위치한 여러 빈민가를 자주 방문했다. 한번은 바카라스에 위치한 교구에서 수백 명의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벽돌공이 일어나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추기경님이 자랑스럽다. 내 동료들과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오면서 보니 추기경님이 마치 주민의 한 사람처럼 마지막 줄에 앉아 있어 구분이 어려웠다. 내가 저분이 추기경이라고 동료들에게 말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그때부터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이들은 가슴 한편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담아두었다.


인권유린·식량부족 고발은 신자의 의무

프란치스코 교황은 추기경 시절 전용차 대신 지하철과 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조국 아르헨티나의 정치 사회적 현실의 영향 아래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아르헨티나의 인구는 약 3억 명. 거듭된 경제정책 실패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곤율은 50%에 달한다.

“아무 데나 씨를 뿌리기만 하면 바로 식물이 자라는 비옥한 땅에 살고 있는데, 왜 인구의 절반은 빈곤선 아래에서 시달리고 있는가.” “이 나라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잠재력을 온전히 개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든 국민에게 성장의 혜택이 골고루 미치지 않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교황이 끊임없이 묻는 것들이다.

아르헨티나는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의 폐해로 1976년부터 1983년까지 3만 5000명의 사상자를 낸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기간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육과 사목을 동시에 맡으면서 한편으로는 독재정권의 폭력에서 신자와 사제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정권에 쫓기는 사제에게 자신의 신분증을 주어 국경을 넘게 한 적도 있었고, 실종된 사제들을 찾아 정권과 협상을 벌여 석방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교황은 당시 남미를 지배했던 해방신학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사제는 게릴라나 혁명가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교회가 현실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개입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민촌에서 진행한 세족식에서 주민의 발을 닦아주고 있다.
“인권유린과 착취, 교육과 식량부족 고발은 정당 정치가 아니다. 가톨릭 교회의 사회교리 요강을 보면 수많은 고발 건이 있지만, 그것은 어떤 당파를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면 정치를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나는 ‘우리는 복음의 측면에서 정치한다’고 답한다.”

교황에게 인간이 가져야 할 최고의 미덕은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사랑”이다. 반면 그는 오만함을 가장 혐오한다. 그가 설명하는 오만이란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는 매일 자신의 오만함에 대해 성찰한다고 고백했다. 끊임없이 자기 생각과 행동을 반성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아르헨티나 국민뿐 아니라 세계인이 교황에게 마음을 활짝 연 이유가 여기 있었다.
  •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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