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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면 - 기적의 시간

글 : 이상희 

외딴섬의 초등학교 행사에 초대받은 작가 넷이 티켓을 손에 쥔 채 연안부두에서 발이 묶였습니다. 석 달 전에 프로그램 회의를 하고 예매를 하고 준비물을 선박 택배로 부치고 강연 자료를 거듭 챙기며 수없이 떠올렸던 아이들을, 결국 그날은 만나지 못했지요. 새 일정을 잡아 헤쳐 모이기로 한 뒤로도 바다를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은 이즈음, 태평양 건너 메인 주의 섬과 바다의 자연을 그득히 담은 그림책 《기적의 시간》으로 숨을 고르는 참입니다.



1
페놉스코트 만의 물 위로 바위투성이 해변이 불쑥 튀어나와 있는 섬이 있습니다. 거기 가면 시간이 흐르는 걸 볼 수 있지요. 일 분 일 분이 흐르고 한 시간 한 시간이 흐르고 하루 하루가 흐르고, 계절이 흐르는 걸 말이에요.


이렇게 시작되는 그림책의 첫 장면은 바다 위에 초록 허파처럼 떠 있는 섬들과 하얀 돛배들과 뭉게구름과 하늘입니다. 그중의 한 섬으로 가족과 함께 여름을 지내러 온 아이들이 눈과 귀와 마음을 활짝 열고 마음껏 자연을 들이키는 장면이 이어져요. 맑았던 하늘이 문득 어두워지며 바다 수면으로 나무로 풀덤불로 빗방울 수백만 개가 후두둑 떨어지는 풍경, 갑자기 철썩거리며 밀려오는 파도 소리, 갈매기와 가마우지 떼가 오르르 절벽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듣지요. 돌돌 말린 고사리 머리 펴는 소리가 들릴 만큼 고요한 바닷가 뒤쪽 숲에서 벌들이 붕붕거리고 벌새가 노래한다 싶은데, 갑작스레 안개가 걷히고 사방에서 파란 물이 반짝거려요. 얼른 바다로 나오라는 듯이 말이지요. 아이들은 보트를 타고 작은 항해를 시작합니다.



2
오후가 되면 우리는 산들바람에 실려 섬 사이를 떠다닙니다. 스웨인스 코브 레지 근처로 가면, 엄마물개가 아기물개에게 젖 먹이는 것도 볼 수 있지요.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바다거북이 우리 배 근처에서 빠끔거리며 놀기 시작하면, 집이 있는 섬 쪽으로 배를 돌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결코 곧장 집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과도 한바탕 어울려야 하고, 뜻밖에 마주치는 멋진 것들과도 다정한 인사를 나눠야 하니까요. 그러느라 아이들의 보트는 어느새 밤, 밤바다에 떠 있게 됩니다.



3
하늘에서는 별이 내려다보고, 물에 비친 별빛은 우리를 올려다봅니다. 밤은 고요한데 수백 개의 눈동자가 우리를 쳐다봅니다. 네 개의 눈동자는 사방을 쳐다보고요.


밤하늘과 밤바다, 별과 바닷물 위에 비친 별, 하늘의 별과 바다의 별을 쳐다보는 두 아이는 이른바 물아일체(物我一體)를 구현합니다. 그야말로 ‘기적의 시간’이지요. 그러나 섬에서의 나날과 순간이 늘 이처럼 평화롭고 즐거울 수만은 없어 어느 날 태풍이 휘몰아쳐요. 섬사람들의 지혜를 좇아 온갖 대비를 해두지만, 나무가 우지끈 부러져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현관으로 밀려드는 바람과 바닷물에 집안이 아수라장이 되는 국면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다음 날 아침 펼쳐지는 또 다른 ‘기적의 시간’을 만나게 되고요.

이 그림책으로 1958년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책에 수여하는 칼데콧상을 수상한 로버트 맥클로스키가 ‘바닷새가 되고 물고기가 되어가는 듯’했던 메인 주 바닷가에 살던 그 시절에 만든 《블루베리 따는 샐》과 《어느 날 아침》 또한 ‘기적의 시간’을 담은 그림책이라 할 만합니다. 이제 곧 한반도 서쪽 섬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낼 나의 시간도 ‘기적의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기적의 시간》
글·그림 : 로버트 맥클로스키
옮김 : 김서정
문학과지성사
  • 2014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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