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장생》 펴낸 박수지・이상환

우리를 지켜주던 십장생 이야기

글 : 천수림 TOPCLASS 객원기자  / 사진 : 하지영 

학·거북·사슴·구름·산·물·해·불로초·돌·소나무. 우리 선조들은 이 10가지 물상들을 ‘십장생(十長生)’이라 부르며 병풍, 베갯머리, 혼례 때 신부의 수저 주머니, 선비의 문방구 등에 새겨 가정의 안녕과 개인의 생명을 지키려는 간절함을 표현했다. 우리를 지켜주던 이 ‘에너지’를 다시 일상으로 불러들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 최근 《100% 장생》(디자인로커스)을 펴낸 일러스트레이터 박수지씨, 콘텐츠 기획을 맡은 이상환씨를 만났다.

사진제공 : 디자인로커스
박수지(왼쪽)·이상환.
“신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혼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세계를 연결하는 열 가지 영물이 있어 이를 십장생(十長生)이라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혼재된 시간을 틈타 피안의 언덕에 있는 신비한 에너지 장생을 욕망하게 됩니다. 이에 신선들은 장생을 피안의 언덕 밑 인간의 세상 속에 이동시켜 미망을 해결하려 합니다. 하지만 미망은 미망을 더하므로 장생은 더 이상 인간과 함께하지 못하고, 일상 깊숙이 숨어들게 됩니다.”

《100% 장생》 책의 서문이다. 《100% 장생》은 민화 십장생도(十長生圖)를 원형으로 하는 10가지 영물을 새롭게 창조한 그림책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십장생의 요소가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이런 전통은 단절되었고, 현대에 이어지지 못했다.

“전통의 옛 습관과 이야기를 우리 일상에 연결하기 위해 ‘십장생’을 ‘100%장생’으로 새롭게 해석했어요. 100%는 전부를 뜻합니다. ‘지혜의 무늬를 붙이고 사는 거북’ ‘머리엔 하늘을 향한 나무 사슴’ ‘구름을 닮은 신비로운 풀잎 불로초’ 등 캐릭터의 성질을 일러스트와 함께 고유한 이야기를 입혔어요.”

일러스트레이터 박수지씨는 그동안 《반짝벌레》 《통통아, 빨리 와》 《호랑이한테 잡아먹혔다가》 《나 안 할래》 《왜? 호기심 백과》 《창의력 뛰어난 아이 만들기 1, 2, 3》 《물과 불》 《구멍 속으로 쏘옥》 등의 동화책을 펴냈다. 1995년 출판미술대전에서 신인부문 대상, 2003년에는 제4회 한국출판미술상 본상 김영주상을 받았다.

기획을 맡은 이상환씨는 현재 커뮤니티디자이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동안 정동길과 삼청동길, 옥천 향수30리 길 등 다수의 예술 프로젝트를 맡아 감독과 작가로 활동해왔다. 이 둘이 의기투합한 계기는 돌실나이의 젊은이들을 위한 새 브랜드 ‘꼬마크CCOMAQUE’ 론칭 프로젝트 때문이었다. 10가지 영물 십장생을 새롭게 발굴해낸 프로젝트는 박수지씨가 그린 캐릭터 원화에 이상환씨가 이야기를 붙였고, 원화를 응용한 텍스타일 패턴, 캐릭터를 의상 및 소품에 적용했다. 이 과정을 《100% 장생》에 담았는데, 책과 함께 원화와 의상, 소품은 돌실나이 4층에 위치한 창의물류갤러리에서 6월 초까지 전시했었다.


모든 존재에는 정령이 있다

두 사람은 1년여 동안 함께 작업하며 ‘장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십장생은 정령이죠. 우리에게는 수호신이 있었어요. 현대를 사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지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켜주는 존재가 필요했어요. 친구나 부모, 연인, 선생님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영원불멸한 정령과는 좀 다른 개념이었을 거예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권은 ‘모든 존재에는 정령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잖아요. 그 정령들을 이제 일상으로 불러내자는 뜻입니다.”

박수지씨는 십장생이라는 주제가 워낙 무겁게 느껴져 고심했다고 한다. “십장생에는 장수, 복, 행운이 담겨 있어요. 여기에 문화를 담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어요. 무지개도 산이면서 나무가 자라면 어떨지, 불로초 역시 버섯도 아니고 구름도 아닌 형상이 되었어요. 재미있고, 귀여운 쪽으로 가려고 노력했죠. 지혜의 무늬를 운반하는 거북의 등도 그렇게 나왔어요. 소나무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고정관념이 컸거든요. 솔잎을 손으로 만들어 친숙함을 더했죠. 캐릭터들은 튀지 않고 착한 인상이에요. 옷이 나왔을 때 너무나 예뻤어요. 캐릭터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

《100% 장생》은 소나무·학·거북 등 민화 십장생도를 원형으로 하는 10가지 영물을 새롭게 창조한 그림책이다.
《100%장생》은 박수지 작가의 동화적 상상력이 덧입혀지면서 신선한 캐릭터로 재창조되었다. 우리 선조들은 산은 신성한 곳으로 산의 기운을 받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장수한다고 믿었다. 박수지씨는 십장생 요소의 하나인 산을 거북이의 무지갯빛 등 위에 사슴의 뿔이 나무처럼 어우러진 ‘거북산’으로 재창조했다. 이외에 하늘 나라를 가르는 경계 구름도 ‘구름의 주술사’로 태어났다.

“하나하나 흩어지면 제각각이었다가 모이면 더 예뻐지는 게 장생 캐릭터의 특징이에요. 이 친구들은 혼자 존재하지 않아요. 함께 놉니다. 사슴뿔에서 풀이 자라기도 하고, 바위틈에서 풀이 자라죠. 이런 틈이 주는 재미를 발견하는 거죠.”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자연이 만든 일상엔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아이였을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이나 물건에 커서도 애착을 갖는 것처럼 십장생도 그중 하나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상환씨는 십장생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시키기 위해 스토리텔링에 공을 들였다. “사슴 뿔은 왜 요란하지? 했다면 사실 뿔은 신의 뜻을 수신하는 수신기 역할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길 바라는 거죠.”

박수지씨는 얼마 전 정령이 사는 마을을 다룬 일본 드라마를 인상 깊게 봤다고 한다. “어느 시골 마을에 정령을 봤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해요. 정작 본 사람은 없는데 모두 자신이 본 정령 이야기를 하면서 마을 전체에 따뜻함이 감돌게 된다는 이야기예요.”

이들에게는 다음 세대에게 장생의 전통을 연결해주고 싶은 꿈이 있다. “우리를 지켜주는 일상용품으로 진화하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여러 예술가와 협업할 계획이에요. 근현대 100년을 지나며 잃어버린 우리 일상생활 소품을 계속 만들어내는 겁니다.”

이들도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던 따뜻한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 2014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11

201911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11

event
event 신청하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30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