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소문’ 타고 대학로 달구는 코믹풍자극 <소문>

베테랑 정의갑, 신예 권혜영·황미선의 빼어난 연기에 관객 몰입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지난 7월 4일 대학로의 한 소극장.
꽉 들어찬 객석에서 웃음이 쉴 새 없이 새어나왔다.
극단 ‘십년후’의 코믹극 <소문>이 공연 중이었다.
2009년 인천 초연 이후 일본 삿포로연극제, 중국 연변 예술대학에 초청되며 호평받은 이 작품이 드디어 대학로에 상륙한 것이다.
왼쪽부터 권혜영·황미선·정의갑.
<소문>은 창단 20주년을 맞은 인천 토박이 극단 ‘십년후’의 레퍼토리 공연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을 모티프로, 사람들의 입이나 인터넷, SNS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코믹극이지만 묵직한 풍자도 있다.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철거를 앞둔 달동네, 귀머거리 ‘선이’가 배를 움켜쥐고 헛구역질을 하자 사람들은 선이가 임신을 한 것 같다며 속닥거린다. 선이 오빠 ‘봉학’이 돌아올 때가 되자, 사람들은 봉학이 자기들에게 책임을 물을까 두려워한다.

초반부터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리던 관객들이 파안대소하기 시작한 것은 중반 이후였다. 동네 주민들이 화난 봉학을 제압한다며 엉터리 작전을 짜자, 관객들은 자지러졌다. 웃다 지쳐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보였다. 배우들은 이런 반응이 익숙한 듯 웃음기 없는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무대 한가운데에서 중심을 잡는 건 연극·영화·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전천후 배우 정의갑이었다. 지난 7월 7일, 정의갑과 극단 ‘십년후’ 소속 배우 권혜영·황미선을 만났다. 정의갑은 이번 공연에 봉학 역으로 합류하며 이들과 처음 연기 호흡을 맞췄다.

“이 친구들이 연습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인천에 숨은 진주들이 있구나’ 했죠. 몰입을 넘어 이미 극중 인물이 돼서 살고 있더라고요. 리듬감, 순발력 등 후배지만 배울 점이 많아요.”


그의 말대로 무대에서 권혜영·황미선은 배역 그 자체였다. 이들은 각각 극중 소문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주인집 아줌마와 셋방 새댁 역을 맡았다. 80년대생인 두 사람은 팔자주름 짙은 중년의 아줌마와 세파에 찌든 새댁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큰일이라도 난 듯 호들갑을 떠는 모습, 야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아줌마였다. 두 사람의 호흡도 더할 나위 없었다. 만담을 보는 듯 속도감이 넘쳤다.

권혜영이 입을 열었다. “스물여섯 살부터 아줌마 역을 맡은 덕인가봐요. 몇 년 전 할머니 역할을 했던 경험은 특히 도움이 많이 됐죠. 제가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서 할머니는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편견이었어요. 할머니라고 모두 힘없고, 약하고, 구부정한 건 아니더라고요. 할머니를 거치고 나니 아줌마는 편해요(웃음). 의상 입으면 자연스레 아줌마 동작이 나오죠.”

여자라면 누구나 ‘예쁜’ 배역에 욕심이 있을 터. 그러나 그는 “고등학교 연극부 시절 3년 내내 남자 역할만 했다”며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어 보였다.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할 줄 알게 됐다고 할까요. ‘줄리엣’을 하고 싶다고 모두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죠.”


대구에서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연극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스물두 살에 상경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천에 자리를 잡았지만 연고도, 친구도 없었다.

매일 극단에서 살며 종일 연습에만 매달렸다. “선후배를 붙잡고 ‘연습하자’는 얘기만 반복했어요. 동기들이 친구를 만나러 가면 ‘연습해야지, 왜 친구를 만나? 친구보다 연습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라고 물었어요.”

많은 사람이 극단을 스쳐가는 동안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12년간 지속된 뚝심은 그에게 ‘전국연극제 여자연기자상’을 안겼다.

일찌감치 진로를 정한 권혜영과 달리, 황미선은 뒤늦게 이 길에 접어들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대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곧 그만뒀다. 스물여덟 살까지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했다. “건설회사, 보험회사, 무역회사, 병원, 옷가게 등 다닌 곳만 10군데가 넘어요. 길어야 1년이면 흥미가 떨어져 새로운 일을 찾기 바빴죠. 그땐 아무 목표도 없었어요. 학교 안 다니면 회사 다니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건 술주정과도 같았던 외마디 고백이었다. 회사 동료와 술을 마시던 중 그가 “사실 내 꿈은 배우”라고 털어놓았다. 동료는 아는 사람이 있다며 극단 ‘십년후’를 소개했다. 그게 연기 인생 시작이었다. “며칠을 고민하다 힘겹게 극단을 찾아갔어요. 그러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길로 주저앉았죠. 첫 무대에서 어마어마하게 울었어요. 남들은 ‘극단 들어온 지 고작 2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에겐 엄청난 일이었어요. 늘 1년을 못 버티고 싫증을 냈으니까요.” 늦게 시작한 만큼 그의 열정은 뜨겁다. 홀로 남아 연습에 박차를 가하는 건 물론, 성에 차지 않는 후배는 엄하게 꾸짖는다.

“연극 한다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단지 연극이 좋아서 모인 사람들인데, 열심히 하지 않는 걸 보면 화가 나요.”

베테랑 배우 정의갑은 이들 사이에서 단단히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들에게 정의갑은 연기 멘토이자, ‘앉아만 있어도 포스가 남다른’ 하늘 같은 선배다. “선배님이 항상 가르쳐주세요, 배우는 무대에서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같은 공연을 여러 번 하다 보면 대사가 습관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거죠.”(권혜영)

정의갑 역시 후배들을 보며 연기를 다시 느낀다.

“이 친구들을 보면 제가 처음 섰던 무대가 생각나요. 커튼콜 때 20년 묵은 눈물을 쏟아내며 엉엉 울었던 기억이요. 요즘 대학원을 다니며 초심으로 돌아가 연기를 배우는데, 깨닫는 게 많네요. 머리로만 알던 걸 가슴으로 다시 느끼고 있죠. 학교에서 교수님께, 현장에서 선배들에게 배운 것을 대학로의 새로운 힘이 될 이 친구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극단 ‘십년후’
창작극·창작뮤지컬을 주로 제작한다.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우현예술상 등을 수상하며 인천 대표 극단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현재 ‘찾아가는 연극 공연’을 통해 소외 지역에 문화를 나누는 활동도 하고 있다.

공연 정보
·기간 : 7월 3일~8월 3일
·장소 : 대학로 스타시티 예술공간 SM
·시간 : 평일 오후 8시 / 수요일 오후 3시·8시 / 토요일 오후 3시·7시 / 일요일 오후 3시
·문의 : 032-514-2050
  • 2014년 08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1907

201907

구독신청
낱권구매
전체기사

event2019.07

event
event 신청하기
영월에서 한달살기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