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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과 ‘빛’의 만남, 매혹적인 색채의 유혹

화가 이지수

캔버스를 가득 메운 몽환적인 색채가 강렬한 아우라를 뿜어낸다. 빛으로 가득한 화폭은 지극히 초현실적이다. 복숭아와 사과에 난 ‘y’자 곡선은 언뜻 젊은 여성의 엉덩이를 닮아 있다. 팽팽하게 부푼 불빛 기둥은 남근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미지가 형태를 갖추어갈수록 더욱더 은밀한 무언가를 떠오르게 한다. 작가 이지수가 색과 빛을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는 ‘빛과 색 너머의 무엇’을 상상하게끔 유도한다.
Blue_ Oil on Canvas on Panel, 152×162cm, 2012
<이지수의 빛과 색, 상상할 수 있는 너머의 유혹>展이 6월 12일~7월 1일 서울 서초동 갤러리 마노에서 열린다. 뉴욕에서 활동하며 색과 빛을 화폭에 담아온 작가 이지수가 한국에 돌아와 여는 첫 개인전이다.

그의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된 매개체가 있다. 바로 ‘틈’이다. ‘틈’은 보는 이의 심리에 따라 빛을 뿜어내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빛을 삼키는 은둔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 ‘틈’에서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하며 관객과의 소통을 노린다.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그가 처음 발표했던 ‘틈 시리즈’는 지금의 오일페인팅이 아닌 수묵화였다. 중첩된 수묵의 붓놀림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는 명료하면서도 몽환적이었다. 흑백의 이중구조 속에서 부드러운 면 위로 확고한 실루엣이 더해지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킨다. 작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묵의 ‘틈’에서 자신을 마주했다고 말했다.

“틈이라는 존재가 나와 같다고 생각했어요. 틈은 보기 싫고 필요 없는 것, 보잘것없고 하찮은 존재. 마치 열등감에 빠진 저의 모습이라 생각했죠.”

그는 어렸을 적부터 열등감이 많았다. 항상 성적이 우수한 형제들과 달리 학교 성적이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단번에 알아들은 적도 없었다. 항상 자기 안에 갇혀 지냈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워 따로 과외를 받았던 과거를 떠올리기도 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수업 중에도 필기를 해본 적이 없어요.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거든요. 문제가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했어요. 최근 우연히 알게 된 정신과 의사에게 당시 제 증상을 이야기했더니 ‘주의력결핍장애(ADD)’라는 진단을 내리더군요.”

주의력결핍장애는 아동기에 많이 나타나는 장애로, 집중력이 낮아 집중 시간이 짧고 산만하며, 충동성을 보인다. 읽기장애와 산술장애, 운동조절장애, 언어장애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묻는데, 저는 고심 끝에 ‘나비’라고 대답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과학자나 대통령을 꿈꿀 때였어요. 그때 선생님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물어봤어요. 그땐 뭔가 더 크고 화려한 것을 말해야 하나 싶어 ‘호랑나비’라고 대답했어요. 그때는 뭐가 잘못된 건지 몰랐습니다.”

Untitled_ Oil on Canvas on Panel, 72.7×72.7cm, 2014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자아성찰과 자기 성장의 과정을 거친다. 그는 자기가 만든 굴 안에 갇혀 지내면서 ‘틈’만을 그려오다 점점 그 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틈은 빛이 있어야 만들어지잖아요. 작업을 하다가 어느 순간 ‘저 틈에서 나오는 빛이 내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변화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때의 작업은 그가 조금 더 세상으로 나가는 힘이 되었다. 수묵화로 시작한 틈 시리즈가 확고해지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무렵인 2004년, 그는 홀연히 뉴욕행을 결심했다. 그의 나이 마흔 살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떠나자는 생각에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이미 두 발이 뉴욕 땅에 닿아 있었다. 작가는 ‘더듬이’처럼 무언가에 이끌려 본능처럼 행동했다고 회상한다.

뉴욕으로 떠나서 첫 1년은 아무런 작업을 할 수 없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누구 하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어렵게 시작한 뉴욕 생활을 그대로 흘려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가장 먼저 학교를 찾았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예술전문 대학원인 프랫 인스티튜트 회화부에 무작정 등록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수묵이 아닌 오일페인팅으로 작업을 전환한다.

“작가에게 붓이란 손과 같아요. 그만큼 페인팅 재료로 무엇을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종이와 묵은 어느 정도 농도를 주어야 하는지부터 작업량과 시간을 가늠할 수 있지만, 오일페인팅은 아예 초보자 수준이었어요. 남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학교에 제일 일찍 가고 제일 늦게까지 남아 손에 익도록 노력했어요.”

Colours1_ Oil on Canvas on Panel, 101×101cm, 2012
뉴욕에서의 생활은 학교생활에 집중하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남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다. 집 안에 틀어박혀 작업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는 자신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표현했다.

“하루는 집에 가만히 앉아 거실을 바라보는데, 밑에서 위를 향하는 램프의 빛이 모서리 양옆으로 상을 비추더라고요. 그 안에서 새로운 틈을 발견했어요.”

그는 벽 모서리, 먹던 과일 위로 닿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해왔던 틈 시리즈 위에 색채가 더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빛은 세거나 어두워도 형태가 왜곡되는 착시현상을 낳아요. 빛이 사물을 비추면 더욱 아름답고 선명해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왜곡이 일어나며 다른 형태로 보이고, 다른 것을 연상시키기도 하지요. 보이는 대상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에 따른 착시현상이나 연상되는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해요.”

그의 작품에는 마치 은밀한 부위를 훔쳐보는 듯한 묘한 떨림이 있다. 수묵화에서 벗어나 색채가 가미되면서 더욱더 은유적인 신비로움이 더해졌다. 그의 붓이 닿는 순간 대상은 관능적이면서도 육감적으로 변모한다.

“궁극적으로는 퀘스천 마크(?)예요. 모티프는 사물에서 출발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가 재생산되는 것이지요.”

이어 시작한 작품은 스트라이프 시리즈다. 이전보다 여러 가지 색을 사용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바쁘고 화려하고 복잡하잖아요. 뉴욕을 떠올리면 화려함, 그러면서도 쓸쓸하고 외롭고 척박한 공간이라는 이미지가 그려져요. 마흔에 맞닥뜨린 환경이기 때문에 ‘이곳은 어딘가’ 하는 고독감에 빠졌어요. 그 마음을 담은 작품이 스트라이프 시리즈예요.”

그 후 뉴욕에서의 활동은 급물살을 탔다. 뉴욕 A.I.R 갤러리의 작가로 지냈고, 2008년에는 뉴욕 카네기홀이 선정한 우수 작가에 뽑혀 카네기홀에서 발행하는 잡지의 커버를 장식하기도 했다. 2009년 4월엔 <더 아트리스트>라는 작가들을 위한 웹매거진에서 ‘4월의 작가’로 뽑혔다.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며 뉴욕에서의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를 만날 때가 있어요. 맨 처음 마주했던 저는 상처받고 작고 볼품없었어요. 참 많이 울었죠. ‘나를 더 많이 사랑해주자’ 다짐했어요. 두 번째는 조금 더 치유 되었을 때였어요. 돌아보면 변화를 인지했기 때문에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나를 많이 깨고 나왔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어릴 적 그가 대답했던 장래희망은 헛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번데기 속에서 세상으로 나아갈 날개를 만드는 나비처럼 그도 웅크려 지낸 시간을 통해 새 빛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그의 장래희망은 이미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이지수

1989년 이화여대 미술학부 동양화과, 2003년 이화여대 대학원 조형예술대 한국화과, 2007년 미국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MFA 페인팅 졸업. 1998년 덕원갤러리, 2003년 인사아트갤러리, 2010 뉴욕 킵스캘러리, 2012년 뉴욕 A.I.R. 갤러리 등 해외 54회, 국내 30여 회 전시. 1998년 춘추미술대전 입선, 2002년 동아미술제 입선, 2003년 서울미술협회전 특선. 2008년 뉴욕 카네기홀 프로그램지 선정작가, 5월호 커버 장식. 2009년 미국 더 아트리스트닷컴(The ArtList.com) ‘4월의 작가’ 선정.
  • 2014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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