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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면 -
날마다 날마다 힘써 나아가야 할 때

글 : 이상희 

이해할 수 없이 참혹한 사태를 맞았으나 탓할 만큼 믿을 데도 없을 때, 또렷이 자초지종을 캘 데도 없을 때 자신을 탓하기로 합니다. 내가 잘못한 일들이 모이고 모인 탓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따금 횡단보도가 멀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건너던 도로를 암만 바빠도 제대로 건너기로 합니다. 급히 세우느라 삐죽이 튀어나온 자동차를 주차선 안에 반듯이 세우기 위해 동승자들을 먼저 보내고 돌아갑니다. 운동화 끈이 풀린 줄 모르고 겅중겅중 달려가는 낯선 아이를 목청 높여 불러 세우고는 무릎 꿇고 앉아 고쳐 매어 보냅니다. 그래도 이제 어찌 다시 살아봐야 하나,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에게서 제대로 사는 방법을 들어보나, 사방을 둘러봅니다.

눈주름 깊은 노스님이 눈을 내리뜬 채 나무망치와 자귀를 들고 목탁을 깎고 있습니다. 사방에서 연꽃이 피어나는데, 연꽃이며 연꽃잎 사이에 조그만 목탁을 들고 싱긋 웃음을 베어 문 어린 스님이 서 있습니다. 양쪽 펼침 화면 위쪽으로 온통 초록색·나무색·노란색 색점이 떠 있고요. 어린 스님이 두드리는 목탁 소리가 또드락또드락 울려 퍼지는 참입니다. 연꽃잎에 앉아 있는 개구리들도 박자 맞춰 개골개골하고 있겠지요.

위로 기다란 판형의 목판화 그림책 《신기한 목탁 소리》(한승원 글, 김성희 그림)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오직 목탁을 깎을 뿐인 노스님의 환한 얼굴이 대자대비 미소를 띤 관세음보살 같다는 글을, 화가는 더도 덜도 없이 무념무상 자비로운 얼굴로 구현했습니다. 지금껏 무슨 이야기가 진행되어서 이 같은 결말에 이르렀는지 몰라도 좋을 만큼, 이제 막 이야기가 시작되어도 좋을 만큼 완벽히 평화로운 장면입니다.

“귀가 깜깜절벽인 데다 글자를 몰라 경전을 읽지 못하고,/ 큰스님 설법이며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노스님은 작업실에 들어앉아 목탁만 깎고 다듬습니다. 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무연히 관심 없는 채, 자기가 깎은 목탁이 어떤 신비로운 기운을 지녔다고 소문났는지 알지 못한 채, 그래서 신기한 목탁을 갖고 싶어 하는 스님들이 얼마나 많아졌는지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일에 전념합니다. 절에 목탁 주문이 얼마나 밀려들었는지 알지 못한 채, 재무 스님이 한 달에 세 개를 만들라고 재촉하는 것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는 채 늘 하던 그대로 목탁을 깎고 다듬습니다. 한 달에 단 하나를 만들어냅니다.

목탁 깎는 일은 공정이 길고, 공력도 많이 듭니다. 오래된 살구나무 뿌리를 구해 3년을 진흙에 묻습니다. 그렇게 진을 뺀 다음 소금물에 담가 가마솥에 쪄내고, 그늘에서 천천히 말려서는 목탁 크기에 맞게 자릅니다. 그러고서야 본격적인 목탁 깎기에 들어갑니다. 겉을 먼저 둥글게 깎은 다음 속을 파냅니다. 맑고도 그윽한 소리가 저절로 날 리 없어, 온 마음을 모으고 온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노스님은 수없이 작업하던 손길을 멈춥니다. 자귀와 망치를 내려놓고 목탁을 쳐보고, 또다시 자귀와 망치를 듭니다.

노스님이 목탁을 깎아내는 속도는 ‘신기한 목탁 소리’를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관건입니다. 그런데도 재무 스님은 그 세 배를 깎으라고 재촉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도 이율배반적인 요청인지 깨닫지 못하듯, 우리 삶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터무니없는 요청과 그에 휘둘리곤 합니다. 당연히 조악한 결과물과 끔찍한 참극을 낳게 되지요. 자명한 진실을 매 순간 자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직 목탁을 깎을 뿐인 노스님의 한결같은 태도는 정진-순간 순간 나날이 힘써 나아갈 따름입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흙탕에 물들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숫타니파타》). 한평생 글쓰기에 매진해온 노 작가의 글을 손이 나무가 되도록 한 장면 한 장면 공들여 깎은 이 목판화 그림책은 특히 해외에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신기한 목탁 소리》
글 한승원·그림 김성희
보림
  • 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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