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모임 ‘북 코러스’와 문학다방 봄봄’ 운영하는
김보경 대표

소리 내 함께 읽는 낭독이 삶을 바꿉니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이화여대 정문과 신촌역 사이, 경의선 철로를 마주보고 있는 좁다란 골목에 자리 잡은 자그마한 공간. 주변이 어둑해지자 환하게 불을 밝힌 이곳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10여 명은 20~30대부터 60대까지, 가정주부부터 회사원, 여행사 대표, 교수까지 나이로나 성별로나 직업으로나 공통점을 찾기 어려웠다. 김밥과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 나눠 마신 사람들은 단숨에 책읽기에 몰입한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낭독하며 책을 읽는데, 두 시간가량 집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분에 만나 함께 책을 읽는 이들이 이날 새로 읽기 시작한 책은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었다. 전 주까지는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윤독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같이 얇은 책은 몇 주 만에, 《특이점이 온다》나 《총 균 쇠》같이 두꺼운 책은 몇 달이 걸려서라도 끈질기게 읽어냈다고 한다.

이들이 ‘북 코러스’란 이름으로 함께 모여 책을 낭독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6월부터였다. 이들은 ‘소리 내어’ ‘함께’ 책을 읽는 행위가 삶을 바꾸어놓았다고 한다.

책읽기가 승진이나 돈벌이같이 눈에 보이는 이득을 가져오진 않았지만,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며 주체적으로 살게 하는 힘을 길러주었다고 이들은 말한다. 책 읽기를 통해 누구는 묻어두었던 열정을 되찾았고, 누구는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누구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목소리를 섞어 함께 책을 읽으며 이들은 가족과도 같은 탄탄한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고, 서로의 삶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응원해주게 되었다. 이들에게 남녀노소의 차이는 장애가 되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는 이들의 아지트 역할을 할 ‘문학다방 봄봄’이 신촌역 앞에 둥지를 틀었다.


‘북 코러스’를 만들고 ‘문학다방 봄봄’의 문을 연 김보경씨(50세)는 최근 낭독모임 이야기를 엮은 책 《낭독은 입문학이다》(현자의 마을 刊)를 펴냈다. ‘문학다방 봄봄’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대 앞 분위기와 달리, 조용하고 한적한 골목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실내도 요즘 유행하는 카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넓지 않은 공간 구석구석에 책을 놓아두어 책이 거의 유일한 장식 요소로 보였다.

벽에 선반을 짜 넣어 책을 올리고, 테이블 유리판 아래에도 책을 집어넣었다. 김유정・김동리・윤후명・정지용・김소월・오정희・이상・박태원・헤밍웨이・무라카미 하루키 등 문인 30명의 인물 스케치를 그려달라고 화가 이인씨에게 부탁했는데, 그마저도 공간이 좁아 한 번에 두세 명의 인물 스케치를 돌아가면서 벽에 걸고 있다고 했다. 화가 최석운씨도 ‘문학다방 봄봄’이란 예쁜 간판 글씨를 써줬다.

실내가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유리문 안에서 새어나오는 불빛과 네모난 간판이 어둑한 주변을 밝히는 것이 ‘세상을 밝히는 문학의 빛’처럼 보였다. 이 다방을 찾은 사람들이 책을 읽다 감명받은 구절을 포스트잇에 써서 벽에 붙여놓은 것도 보였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이다.

함께 낭독하는 모임 ‘북 코러스’는 김보경씨의 개인적인 갈증에서 시작됐다. 그는 “디지털 시대라면서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시대를 꿰뚫는 혜안을 갖고 싶었지만, 혼자 하는 독서는 오래가지 못했다. 마침 삼성경제연구소 사이버포럼 트렌드연구회 시삽이었던 그는 ‘두껍거나 어려운 책 읽기 낭송 모임’을 시작한다고 회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때 모인 사람들이 20여 명. 20대에서 5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낭독을 통해 ‘경청의 힘’을 얻다


“혼자서는 읽어내기 어려운 ‘두껍거나 어려운 책’을 함께 읽되, 부담은 갖게 하지 말자는 취지였습니다. 미리 책을 읽고 와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보통의 독서 토론과 달리, 그 자리에서 함께 읽고 말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었죠. 책을 돌려가면서 읽을 수 있으니, 심지어 책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되는 모임입니다. 부담이 없다는 점과 특히 낭독을 한다는 데 흥미를 느낀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사람들이 책에, 또 서로에게 젖어들었다고 한다.

“‘두껍고 어려운 책’일수록 저자가 일생동안 치열하게 연구하고 통찰한 내용이 집약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내용을 각자의 목소리를 통해 뱉어내니 저자와 일체화되는 느낌이 들죠. 낭독을 하거나 듣는 동안은 딴 생각을 할 수 없어 눈으로만 읽을 때보다 집중하게 되고,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돼 한 구절 한 구절 뇌리에 새기게 됩니다. 이렇게 저자와 깊이 있게 교류할 때 분명 삶을 바꾸는 힘을 얻게 됩니다. 낭독을 통해 내공이 생긴 회원들은 삶에 대한 불평이 줄어들고, 굵고 짧게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 경청의 힘이 생기게 되었죠. 저 역시 낭독 모임을 시작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변화입니다.”

‘북 코러스’가 처음 읽은 책은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었다.

“회원들이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는다더니 왜 이렇게 쉬운 책을 읽느냐’고 하더군요. 덕분에 다음 책으로 세계금융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화폐전쟁》을 읽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책을 연이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전략이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회원들이 다음에 읽을 책을 추천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어떤 책은 회원들 사이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의 강연회에 함께 참석하고, 문학기행을 하고, 전문가 초청 강연도 갖는 등 종종 이벤트도 가졌습니다.”


삶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할 힘을 얻은 회원들은 그동안 여행을 떠나고, 춤을 배우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다른 공부 모임에도 참여했다. 자신의 지역, 혹은 직장에 책 낭독모임을 따로 만든 회원도 있다. 문학소녀였지만 결혼 후 책과 멀어졌던 가정주부 이희복씨는 아이들이 성장한 후 빈둥지 증후군을 겪고 있을 때 ‘북 코러스’를 찾았다. 낭독을 하면서, 문학과 인문학・과학책을 골고루 찾아 읽으면서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요즘 문학공부에 푹 빠져 지낸다.

‘문학다방 봄봄’에서는 월요일 ‘북 코러스’ 낭독모임뿐 아니라, 화요일 저녁에는 문장미가 두드러지는 소설 읽기, 수요일 저녁에는 김주영의 장편소설 《객주》 읽기 모임이 열린다. 전체 열 권인 《객주》는 완독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대장정. 요즘은 잘 사용하지 않는 토속어가 많아 낭독하기 만만치 않다고 한다. 40대 여성이 주로 참여하는데, 소설을 읽다 각자 삶속에 쌓여 있던 이야기들이 터져 나와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고 한다. 김보경씨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망하지 말고 오래오래 견디라’고 덕담(?)을 한다”면서 이 공간에 대한 자신의 꿈을 말한다.

“문학다방을 중심으로 낭독모임을 더 만들고, ‘문학의 밤’도 복원하고 싶습니다. 문학과 인문학 강연과 교육 프로그램, 인문학 여행, 미술과 문학을 아우르는 행사와 공연 등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이곳에서 사람들이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행복을 만들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2014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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