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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면 - 숲이라는 치유

글 : 이상희 

일요일 아침,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숲골짜기 집을 나섭니다. 집을 둘러싼 숲을 지나 일상 너머 원시原始의 뒷산을 오르려고요. 그러나 온몸에 붙어 있는 일 생각, 책 생각이 떨쳐지려면, 진정한 산책자가 되려면, 적어도 30분 이상 묵묵히 걸어야 합니다. 문득 눈을 들었을 때 매 순간 꽃망울이 터지는 듯 새로이 어여쁜 봄 나무와 봄 나무들이 비 온 뒤 시간을 기뻐하는 것이 보이고, 봄새들 또한 홀로 높이 빠르게 날거나 우르르 몰려다니며 마음껏 꽃 시절을 노래하는 것이 들리려면 말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산책자의 발길이 숲 한복판에 이를 때, 사방이 오직 나무와 나무로 둘러싸인 바위와 풀과 나무로 이루어진 적요를 만날 때의 감흥은 무엇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꼭 그런 숲에, 봄이라기에는 조금 더 나뭇잎 짙고 창궐한 초여름 숲에, 파란 멜빵 바지 노란 셔츠 입은 이가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습니다. 빨간 구두를 벗어던진 발이며 팔자로 뻗은 다리며 옆으로 길게 늘어진 꼬리가 한가롭고도 자유로워 보이는데, 사람 옷을 입은 이 생쥐는 눈 뜬 채 꿈꾸고 있는 듯도 합니다. 우듬지가 여백 프레임을 넘도록 한없이 높고 높을 키 큰 나무들의 무성한 잎새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두어 그루 나무는 오래전 파란 멜빵 바지 생쥐의 전생에 심었지 싶게 둥치가 엄청납니다. 화면 아래쪽 중앙을 가로지르며 길게 쓰러져 누운 나무는 작은 울타리처럼 주인공의 휴식을 완벽히 안전하고도 평화로이 구축하고 있고요.

“나는 해 질 무렵까지 그곳에 누워 숲의 아름다움에 한껏 빠져 있었어요.” 이 그림의 왼쪽 페이지에 단 한 줄, 일인칭 시점의 내레이션은 마법의 주문과도 같이 독자들 또한 그 숲에 해 질 무렵까지 머물게 하고, 마음을 쉬게 해줍니다.

작은 마을에 살면서 숲 지대를 두려워하는 주인공은 그에 대한 악몽을 꾸곤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또다시 숲 꿈에 시달리다 깨어나서는 오랜 두려움과 맞서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섭니다.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안락한 집과 마을을 이따금 뒤돌아보며 걷고 또 걸어서 언덕을 오르지요. 마침내 숲 속으로 들어간 주인공은 오직 자기 내부에서 들끓는 두려움에 휘둘려 허둥대다가 발을 헛딛고 곤두박질친 다음 정신을 잃습니다. 한참 만에 눈을 뜨고서야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 숲 속 빈터의 이끼밭에 엎어져 있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따뜻하다는 것, 커다란 나비가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며 자기를 염려하는 듯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이어서 숲에서 나는 온갖 사랑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몸을 뒤집어 고개를 들고 나무들 우듬지 사이로 보이는 높디높은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사실 이 그림의 다음 장면이야말로 숲의 전경을 보여주는 펼침 그림입니다만, 주인공이 일어나 앉아 구두를 신으며 떠날 채비를 하고 있어서 ‘그림책 한 장면’이 되기엔 완성감이 떨어집니다.)

최소한의 글과 최대한의 그림으로 두려움과 평화에 대한 걸작 그림책을 만든 작가 클레어 A. 니볼라는 속표지에 이러한 헌사를 써두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숲 속 나무들, 미리엄과 헤다, 앤, 댄, 루디에게

전쟁터에서 ‘드높고 공평하고 온화한 하늘’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었던 《전쟁과 평화》의 안드레이 공작에게


그러니까 주인공이 보고 있는 하늘은, 톨스토이 장편소설의 이름난 주인공 안드레이 공작이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투에서 패해 부상당한 몸으로 눈만 뜬 채 벌판에 누워 있을 때 바라본 바로 그 하늘로도 간주됩니다. 숲 우듬지 너머 아득히 높은 푸른 하늘은 온갖 두려움과 마주 선 이후에 맞닥뜨린 평화의 상징인 셈이지요. 우리에게도 오래된 두려움이 있다면 이 숲 그림책 한 장면의 치유가 요긴하리라 생각합니다.

《숲 속에서》
글·그림 : 클레어 A. 니볼라 / 옮김 : 김기택 / 비룡소
  •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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