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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껍데기〉열고 있는 작가 곽남신

덧없는 것에 매달리는 우리 삶에 대한 따뜻한 유머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미술관에 들어서자, 주먹을 움켜쥔 채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정면을 응시하는 근육질의 남자가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벽면 뒤를 돌아서자 거대한 남자가 온몸이 절단된 채 달빛 같은 조명을 받으며 누워 있다. 가까이 다가서자 남근을 세우며 일어서려 안간힘을 쓰지만, 그만 다시 널브러지고 만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46-15번지, OCI미술관에서 4월 30일까지 열리는 곽남신 개인전 <껍데기>다. 드로잉·회화·네온작품·입체설치 등을 망라해 1, 2, 3층 전시장을 채운 그의 작품들에는 과장되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마초 맨’들이 등장한다. 역기를 든 채 한껏 부풀어 오른 자신의 팔 근육을 만족스레 바라보는 남자, 근육을 키우기 위해 헬스기구에 매달려 용을 쓰고 있는 남자들. 진지하게 몰입해 있는 그들을 보자니 ‘왜 저렇게까지 애를 쓸까?’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전시장에서 만난 곽남신 작가는 “과도하게 근육을 키우는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옷을 입었을 때도 별로 태가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렇게까지 근육에 집착하는 것이 남자들의 과시욕, 권력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고 말한다. <보디빌더> 잡지에 실린 사진을 가지고 드로잉을 한 후 프린터로 확대, 다시 더 과장되게 표현하는 작업과정을 거쳤다 한다.

포토제닉 Photogenic_ 트레이싱지에 잉크젯 프린트, 먹 드로잉, 30×300cm, 2014
온몸이 절단된 남자가 바닥에 누워 있는 작품은 〈홍동지 와상〉. 연성 우레탄으로 만든 몸이 절단된 채 와이어로 연결되어 있는데, 센서가 관람객의 움직임을 감지하면 모터가 작동해 움직인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안쓰러운데, 마지막에 남근을 좌우로 흔들어대다 푹 쓰러지는 데서 페이소스와 블랙유머가 묻어난다. 2층 전시장에는 비닐로 만든 거대한 〈홍동지 두상〉이 놓여 있다.

“홍동지는 우리나라의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에서 괴수를 퇴치하는 등 남성다운 역할을 도맡아 하는 존재입니다. 남근을 커다랗게 표현한 게 변강쇠의 전신이라는 말도 있고요. 동지는 첨지처럼 벼슬 이름입니다. 원래 3m50cm의 거대한 조각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전시장 높이가 낮아 세울 수가 없었어요. 해체시켜 눕힌 후 와이어로 연결했는데, 일어서려 애쓸 때 기술적으로 미숙해 덜덜거리는 게 오히려 작품 개념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홍동지 와상 洪同知 臥像 Gisant of Hongdongji_ 연성 우레탄, 모터, 센서, 가변설치, 2014
개인전 제목은 왜 ‘껍데기’일까?

“전시를 준비하던 지난해 많은 일을 겪었어요.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나이를 먹다 보면 ‘사람 사는 게 참 빈 껍데기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물리학에서는 우리라는 존재가 뭉쳐놓으면 먼지 크기의 질량도 갖지 못하는 에너지 다발에 불과하다고 하잖아요. 우리 몸이라는 게 유전자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갈아타기 위한 껍데기라고 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허무하다고만 보지는 않아요. 그저 나를 포함해 쓸데없는 일에 집착하는 허허로운 삶 자체를 한마디 유머로 표현하고, 삶의 씁쓸한 진실을 드러내고 싶을 뿐이죠.”

깜짝이야! Oops!_ 종이에 목탄, 106×75cm, 2013
〈깜짝이야〉라는 같은 제목으로, 화산 폭발을 피해 달아나는 해골의 모습을 종이에 목탄으로 그린 작품과 번개를 맞아 몸이 쭈뼛 선 것을 윤곽선으로 표현한 네온작품이 있었다.

“같은 역사,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면서 아무 준비 없이 당하는 듯 ‘깜짝이야’라고 하는 게 우리 모습이지요. 그리스 소포클레스 시대의 희곡을 보면 사람 사는 모습이나 모략이나 지금과 똑같더군요. 많은 철학자, 작가들이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2000년이 넘도록 이야기했지만, 달라진 게 없는 거죠. 젊을 때는 그런 문제에 무겁게 다가갔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자꾸자꾸 가볍게 바라보게 되네요.”

추락연습 Practice of Falling down_ 네온, 합판에 각목, 가변설치, 2013
또 다른 네온작품인 〈추락연습〉은 높이뛰기 선수가 도약 후 떨어지는 모습이다. 높이뛰기는 추락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는 의미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우리 주변 삶에 대한 바라보기”라고 설명했다.

신윤복이 우리 시대에 살아 있다면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험적이고 세련된 표현 양식으로 우리 삶의 본질을 위트 있게 풍자하고 있는 것이.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품 30여 점은 그가 최근 2~3년 동안 작업해온 신작이 대부분으로, 그전 전시회에서 선보였던 작품은 3점밖에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구구한 설명을 붙이지 않았다.

“작품세계를 얘기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정리해서 이야기할 때도 많지만, 그럴 때마다 ‘그것만이 진실일까?’ 하는 회의가 들어요. 물론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 그들의 입장에서 여러 층위로 읽었으면 합니다.”

바디빌더 Bodybuilder_ 종이에 색연필, 56×76cm, 2013
그는 작가가 너무 논리를 내세우며 가르치려 하는 태도에 대해 반대했다.

“모호한 개념이나 인문학적 거대담론을 들어서 우리를 훈계하려는 작가들도 있는데, 자신은 그렇게 사는지 묻고 싶어요. 그것도 일종의 껍데기죠. 글로벌화하는 미술시장의 트렌드에 따라 지나치게 하나의 방향으로 경도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동안 비엔날레를 자주 찾기도 했지만, 그 나물에 그 밥 같아서 이제는 보기 싫어요. 그런 것에 지나치게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바디빌더 Bodybuilder_ 종이에 스프레이, 색연필, 84×80cm, 2013
그가 작가로서 걸어온 길을 보면 외부 환경뿐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에도 묶이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가 홍익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던 1970년대, 한국미술을 사로잡은 것은 ‘한국적 모더니즘’으로 일컫는 단색회화였다. 캔버스는 그저 평평한 물질일 뿐이지, 거기에 일루전이나 이야기를 담는 것은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는 그러나 그림에 형태나 정서, 의미를 넣을 수 없는 게 불만이었다. 1980년대 초 돌파구로 찾은 게 ‘그림자’였다. 흑연가루로 나무 그림자를 희미하게 그렸다. 그림자는 애초에 평면이라, 평면을 평면으로 그리는 것이기에 모더니즘의 강령을 지키면서 정서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림자 화가’로 이름을 얻으면서 여기저기 전시 초청이 줄을 이을 때 그는 프랑스 유학을 감행했다. ‘여기 있으면 도저히 안 되겠다. 타성을 끊고 다시 시작하려면 스스로를 이 환경에서 단절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는 판화를 전공했다.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러 가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당시로서는 뉴미디어 역할을 하던 판화를 배우고 싶었고요. 당시 유럽은 신표현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모더니즘의 틀에 갇혀 있던 저를 해방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유학을 가면 완전 그것밖에 몰랐을 테지만, 저는 작품 활동을 하다 갔던 만큼 제 중심을 가지고 그곳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살았던 세상이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귀국할 즈음 홍익대에 판화과가 생기는 바람에 바로 교수가 되었죠.”

끄~응! Mhmmph!_ 종이에 색연필, 56×76cm, 2013
그 후 다양한 표현양식을 시도했지만, 그를 사로잡은 것은 결국 ‘인간사의 덧없음’이 아니었을까? 대학원 졸업 직후 나무 그림자를 그린 게 당시 미술계의 요구에 따른 것도 있지만, 사실은 그것이 바람결 따라 움직이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허무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1990년대 중반 시작한 ‘아이콘 시리즈’에서 그는 이루지 못한 꿈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인간사의 ‘덧없음’을 종교적 아이콘을 통해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2000년대 들어서 그의 작품에 다시 ‘그림자’가 등장하는데, 그림자가 세부가 생략된 실루엣으로 본질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스프레이로 물감을 칠해 경계선이 똑 떨어지지 않는 스푸마토 효과를 주거나 색깔을 자제해 정제된 톤을 유지하고, 마티에르가 분출하지 않는 것도 그의 작품의 특징. 이 때문에 따뜻한 정서가 느껴지면서도 세상사에 매몰되지 않고 일정하게 거리를 두는 그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저도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거운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결국 즐겁게 잘사는 일을 추구하는 것 아닙니까? 철학도 예술도 우리를 더 골치 아프게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의 작품에서 삶의 페이소스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워야겠다.

곽남신

홍익대 미대 회화과와 대학원 졸업,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졸업,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교수.
금산갤러리 〈멀리 누기〉, 성곡미술관 〈바라보기〉, 갤러리 이마주 〈Silhouette Puzze〉, 가인갤러리 〈On Light〉와 파리·브뤼셀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 20여 회, 파리 살롱 드 메, 폴란드 크라코프 국제 판화 트리엔날레, 독일 국제판화전, 류블리아나 국제 판화 비엔날레 등 국제전과 국내외 단체전 다수 참여. 대영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성곡미술관 등에 작품 소장.
  •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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