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앨범 〈I'm Good〉으로 돌아온 래퍼 이센스

“첫 커리어 시작한 기분, 그야말로 I’m Good.”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래퍼 이센스가 싱글 앨범 〈I’m Good〉으로 돌아왔다.
음원이 공개된 지난 3월 27일 오후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이센스를 만났다.
지난해 힙합신을 뜨겁게 달군 이후 그가 처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자리였다.
이센스는 검정색 후드티 차림에 비니를 쓰고 랩을 흥얼거리며 인터뷰 장소로 들어왔다. 결과물을 내놓은 홀가분함 덕분인지 표정이 밝았다. 소감을 물었다. “개운해요. 이번 싱글 제목이 ‘I’m Good’이잖아요. 제목처럼 지금 I’m Good이에요(웃음). 이제 첫 커리어를 시작한 기분이랄까.”

‘I’m Good’은 이센스의 현재 심경을 대변한 곡이다. ‘I’m living good. I’m living right. 그래 나 잘 지내, 듣고 있듯이’로 흘러가는 가사에서는 이제야 비로소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온 듯한 행복감이 묻어난다.

“진보(Jinbo)형이 처음 이 비트를 가지고 왔을 때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3주 동안 작업했는데, 가사를 수십 번 고쳐 썼죠. I’m Good에 맞는 가사가 나오려면 제 상태가 진짜 ‘good’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거든요. 주위에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게으른 놈이 뭘 할 수 있겠어? 피처링 몇 번 하다 말겠지’ 식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물론 있었겠죠. 그런 것들 때문에 마음이 어지러웠어요. 그런데 하루는 작업을 하다가 막혀서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들어오는데 기분이 정말 좋은 거예요. ‘예전에 일에 쫓겨 살 때 가장 하고 싶었던 게 이렇게 스튜디오에 콕 박혀 있는 거였는데, 나 지금 그러고 있잖아?’ 하고 깨달은 거죠. 그 자리에서 가사를 모두 완성했어요. 그게 녹음 전날이었고요. 사실 써놓은 양으로만 보면 여섯 곡은 나왔을 거예요. 한 곡에 이렇게 시간을 많이 쓴 건 처음이거든요(웃음).”

그는 “작업하는 동안 ‘I’m Good’만 1600번을 돌려 들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해 이센스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오랜 기간 함께해온 아메바컬쳐와 이별했고, 슈프림팀은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다. 힙합신을 뒤흔들었던 ‘디스전’ 광풍의 한가운데에 서 있기도 했다. 세간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대중은 그의 노래에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궁금해했고, ‘더 강력한 한 방’을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센스는 그 기대를 보란 듯이 배반했다.

“저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곡이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 안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기 싫었어요(웃음). 뻔할 것 같았거든요. 물론 부담감도 있었죠. 사람들이 저 이상을 기대하는 것 같았어요. 음악이 게임도 아닌데,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마인드로만 접근할 수는 없었죠. 응축된 감정을 다 써버린 것 같기도 했고요.”



‘비스츠 앤드 네이티브스’로 새로운 문화 만들겠다

이센스의 싱글 앨범은 ‘비스츠 앤드 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힙합팬들은 새 노래만큼이나 이 생경한 이름의 웹사이트를 궁금해했다. ‘이센스가 만든 레이블일 것’이라는 추측도 나왔다.

“비스츠 앤드 네이티브스는 생각하시는 것처럼 레이블 이름은 아니에요. 좀 느끼한 말이지만 문화 에이전시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죠.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모여 실험도 하고요. 랩을 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글 쓰는 사람, 영상 만드는 사람, 건축을 하는 사람 등 분야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예술가들을 모으려고 해요.”

비스츠 앤드 네이티브스는 ‘즐기려고 해도 향유할 것이 없는’ 문화적 빈곤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저는 ‘힐링’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학창 시절 매일 늦은 시각까지 공부하고, 대학 가서 죽어라 스펙 쌓고, 힘겹게 취직해 대출금 갚으면서 사는 사람들을 ‘달래준다’는 뉘앙스가 싫어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준다는 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관심을 둘 수 있는 것, 즐길 수 있는 것을 만들어주면 그걸로 족하죠. 비스츠 앤 네이티브스가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관심 있는 분은 연락 주세요(웃음).”

비스츠 앤 네이티브스를 만든 데서도 알 수 있듯 이센스의 관심은 비단 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인간’ ‘예술’과 같은 보다 근본적인 주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예술이란 단어를 신성시하는 풍토도 바꾸고 싶어요. 예술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 절대 아니거든요. 모든 예술은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빈 곳이 있고 결핍이 있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저는 음악을 할 때 제 찌질한 모습을 숨기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른 이들의 부족함도 이해하려고 하죠. 그렇기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올해 말 〈the Anecdote〉 발매할 계획

한창 방송활동을 하던 당시 이센스는 미디어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고 말했다. “제 노래를 듣고 무대를 본 사람들이 실제 제 모습보다 더 저를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독’을 발표하고 나서 그런 인식이 절정에 달했죠. 제가 돈도 싫어하고 꿈만 좇는 ‘진정한 래퍼’가 돼 있더라고요.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돈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좋은 차도 타고 싶어요. 그런 욕구를 숨기고 싶지도 않고요. 만약 그런 이미지를 이용하려고 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대중이 어떤 특정한 이미지를 기대하는 것에 신경 쓰는 건 언더그라운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대중을 ‘내 노래를 사줄 사람들’로 보면 안 된다는 거죠. 이 얘기를 꼭 해야겠다고 판단해서 그대로 밀고 나가면 그게 바로 언더그라운드예요. 미디어를 등지고 기성 질서를 거부하는 게 언더그라운드가 아니고요. 그런 의미에서 전 언더그라운드입니다(웃음).”

이센스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정규 1집 앨범을 올해 말 발매할 계획이다. 앨범 이름은 이미 정해졌다. 〈디 애닉도트(the Anecdote)〉, ‘개인의 일화’라는 뜻이다. “애닉도트는 저의 정규 1집 프로젝트예요. 첫 트랙부터 끝 트랙까지 들으면 저를 모르던 사람도 저에 대해 알 수 있을 거예요. 한 살 때부터 약 2년 전까지 이야기를 전부 담을 거거든요. 어떻게 보면 긴 일기장 같고, 원기옥 같은 앨범이죠(웃음). 물론 그전에 싱글은 계속 발표할 거예요. ‘I’m Good’ 한 곡으로는 완벽하지 않잖아요.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을 싱글로 내려고요. 한 달 안에 무료 공개곡도 발표할 생각이고, 뒤이어 나올 곡도 좀 있어요. 물론 애닉도트와는 상관없는 곡들이고, ‘I’m Good’도 애닉도트에 안 들어가요. 애닉도트는 발매 전까지 정보가 전혀 없을 거예요. 근데 이렇게 말씀드리면 너무 기대하실 것 같아서, 저를 스스로 함정으로 몰아넣는 기분인데(웃음).”



이센스의 못 다한 말.말.말.

이센스에게 힙합이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나보다 먼저 성장한 남자의 존재’를 항상 갈구했는데 힙합이 그 자리를 채워줬어요. 고1 때 빠져들어서 매일 이어폰 꽂고 가사를 썼죠. 인생에서 처음 만난 재미있는 일이었어요. 고등학교를 그만뒀다가 다시 복학한 것도 힙합 때문이었어요. 랩을 통해 한국 이야기를 하려면 우리나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삶에 대해 배우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센스 하면 플로(flow)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독보적인 플로를 자랑하는데.

“감사하죠. 그런 피드백이 원동력이 되고요. 저한테 제일 필요한 건 사람들의 피드백이었어요. 2년 동안 그렇게 못 했잖아요. 딱 ‘독’ 한 곡 있었어요. 피드백이 없으니까 가사 쓸 거리도 없더라고요. 확실히 제 영역은 있다고 생각해요. 근데 그 영역이 철옹성은 아니라고 봐요.”

라임(rhyme)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인정 못 해요. 라임 쓸 줄 아는 사람한테 제 가사 찬찬히 뜯어보라고 해주세요, 라임이 없는 부분이 있는지. 가사 쓸 때 저보다 많이 고치는 사람 몇 명 없을 거라고 확신해요. 똑같은 가사를 구조만 열 번 이상 바꿔요, 듣기 좋게 하려고.”

가사를 쓰기 위해서 공부도 많이 할 것 같은데, 책도 많이 보나.

“가사를 쓰다 보면 막힐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책을 임의로 대여섯 권 꺼내 와요. 그러곤 아무 데나 펼쳐서 단어를 먹듯이 닥치는 대로 읽죠. 브레인스토밍을 하는 거예요.”

사이먼디와 재결합할 가능성이 있나.

“둘이 얘기했는데 그럴 것 같지는 않아요. 제가 형한테 ‘형이나 나나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당장은 슈프림팀에 대해서 생각 안 하려고 해요. 하지만 기석이형이랑 저는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사이예요. 서로의 아들에게 삼촌이 되겠죠.”
  •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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