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한 장면 - 세상 모든 꽃밭을 위하여

글 : 이상희 

100년 전에 살았던 시인이자 사상가, 디자이너 윌리엄 모리스에 관한 책을 두루 탐독하면서 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게 됩니다. 그의 유토피아론 가운데 특히 “시골이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곳이어야 하고 지성과 활기로 가득 찬 곳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데 마음이 끌립니다. 자연이 자연답게 살아 있는 곳이 바로 유토피아라는 의미로도 읽히고요. 이것은 당시 산업혁명 이후 생겨난 거대 도시의 풍경이 공장 굴뚝 연기와 물신주의로 손상되는 데 대한 영민한 대안이면서 동시에 어린 시절에 바로 그런 자연을 누렸던 그의 미의식이 품은 원형이었을 테지요. 지금도 세계의 디자이너들이 으뜸으로 손꼽는 그의 디자인 철학과 작품에는 다름 아닌 풀과 나무와 꽃이며 열매가 그득합니다.

풀꽃 그득히 피어난 자연 세상을 보여주는 그림이 여기에도 있습니다. 사람 옷을 입고 곡괭이를 어깨에 걸머진 채 주위의 아름다움을 둘러보고 있는 오소리와 패랭이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오소리 둘 덕분에 얼핏 환상세계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풀밭은 우리 땅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이지요. 흙내음 풀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 풀꽃 세상이 윌리엄 모리스의 것처럼 세련되어 보이지는 않지만 더없이 다정하게 여겨지는 이유 또한 그 풀꽃들이 낯익기 때문이고요. 자주 흙 땅 밟을 일 없이 살아온 도시내기들도 소풍길이며 산책길, 등산길에서 맞닥뜨렸을 풀꽃이니까요. 잔대꽃·도라지꽃·용담꽃·패랭이꽃… 윌리엄 모리스가 보여준 풀꽃 세상이 그쪽 지리생태계를 기반으로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그림책 《오소리네 집 꽃밭》의 이 그림에서 우리는 우리 땅, 우리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이 그림책을 보고나서야 우리 풀꽃의 아름다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에 눈떴다는 어른도 여럿 뵈었습니다.

《오소리네 집 꽃밭》
글 : 권정생 / 그림 : 정승각 / 길벗어린이
한지 바탕에 흙물을 들여가며 이 풀꽃 세상을 회화적으로 구현한 정승각은 자연을 잘 아는 화가입니다. 풀꽃 하나하나를 이름 불러주고 교감하며 살아가는 분이라는 것을 그림에서 느낄 수 있지요. 무엇보다 화가가 권정생의 글에 깊이 감동했다는 것을, 그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려 애썼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과잉되지 않은 붓질과 가볍지 않은 색감으로 풀꽃 세상의 자연과 자유를 진솔하게 구현하면서도 오소리 아저씨·아줌마가 빚어내는 동화 세계를 풍부하게 살려내고 있습니다.

우연히 산 아랫마을 학교 꽃밭을 보고 감탄한 오소리 아줌마가 산속 집에 돌아와 꽃밭을 만들자고 합니다만, 오소리 아저씨가 꽃밭 터를 닦으려 괭이질을 하려 들 때마다 패랭이꽃이·잔대꽃·용담꽃이 피어 있어 거듭 포기하게 되고, 결국 자기들의 삶터가 곧 꽃밭 속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장면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그림 위에 얹힌 글도 진솔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 대체 꽃밭을 어디다 만들자는 거요?”

“꽃이 안 핀 데를 찾아보세요.”

“여기도 저기도 다 꽃인데, 어디 틈난 데가 있어야지.”

그러고 보니 오소리 아줌마도 할 말이 없었어요.

오소리네 집 둘레엔 온갖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었으니까요.

모두 그대로 꽃밭이었어요.

잔대꽃·도라지꽃·용담꽃·패랭이꽃…

‘원하는 것은 가까운 곳에 있다’는 파랑새 이야기식 교훈이 아니더라도 이 그림과 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삶과 아름다움, 아름다움과 삶을 사유하게 합니다만 무엇보다 감동적인 독후감은 아이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린 독자들이 등산길에 풀꽃 덤불을 만나면 으레 이렇게 소리친다는 거지요. “저기 좀 봐, 오소리네 집 꽃밭이네!”
  •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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