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에 등단한 소설가 박찬순,
새 소설집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 펴내

어릴 적 꿈 되찾은 지금이 행복합니다

글 : 이경후 인턴기자(연세대 4)  / 사진 : 김선아 

따듯한 시선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가 박찬순. 그에겐 ‘늦깎이 작가’ ‘영상 번역의 산증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2006년 환갑의 나이에 등단한 그는 원래 1000편 이상 영화를 번역한 영상번역가였다. 등단 후엔 소설집 《발해풍의 정원》을 썼고, 2011년 아이오와 국제창작프로그램의 레지던스 작가, 2012년 서울문화재단 문학창작기금 수혜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최근 그가 두 번째 소설집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를 냈다. 이 소설집은 호평을 받으며 올해 소설집 부문 한국소설작가상을 수상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덕소의 한 작은 공동체 카페에서 소설가 박찬순을 만났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강의하며 젊은 학생들을 만났기 때문일까, 그가 친근하게 대학생인 기자에게 다가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덕소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인터뷰도 밝은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는 4년 전 발간된 첫 번째 소설집 《발해풍의 정원》보다 좀 더 유머와 언어유희가 첨가됐다. ‘살사에 한 다리만 걸치면 살자, 가 된다’와 ‘인간은 원래 실수투성이인데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그런 조건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로프공의 현실이고 숙명이다’라는 로프공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글에서 여유와 소설가로서의 관록이 느껴진다.

“첫 소설집을 쓸 땐 신인이다보니 리얼하게 쓰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이번 소설집에선 유머와 상징들을 좀 더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의 작품은 ‘기호학’적인 측면이 많다. 소설집 해설을 맡은 양윤의 문학평론가는 “기호들의 채집물로서의 세계 산출 사전”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그가 사회를 기호학적인 상징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제2의 창작을 하는 번역가로 활동했던 게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됐다”며 양윤의 문학평론가의 해설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동의했다. “이미지에서 상징을 보여주고 싶은 건 제가 영화광이라는 영향이 큰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도 실수투성이이며 실패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표제작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에서 ‘나’는 대학을 나오고 수많은 스펙을 쌓았지만 직장을 잡지 못해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로프공이다.

‘나’의 여자친구인 수희 역시 뭐든 다 갖춘 것 같으나 스튜어디스 시험에서 낙방한다. ‘나’의 어머니는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며 돈을 번다.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도 ‘나’는 스스로의 직업에 대해 도시의 빌딩에 ‘세례를 주는’ 멋진 일로 표현하면서 자존감을 세운다. 그의 소설에는 왜 이런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실패하고 실수하는 게 보통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주위에서 묵묵히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고된 삶이 조금은 덜 힘들지 않을까요.”


〈무당벌레는 꼭대기에서 난다〉의 마지막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로프공 중 한 명인 ‘창이’의 안전판이 돌풍에 팽그르르 돌면서 꼬여버리는 위급상황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사장은 구조는 뒷전이고 신입 로프공을 투입시켜 유리창 닦기 시합을 펼친다. 섬뜩한 이 장면을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무서우리만큼 목숨 걸고 경쟁하잖아요. 죽기 살기로 순위에 들어야 살아남는 오늘날 우리 현실에 대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회비판적인 작품이 많은 이번 소설집에선 특히 물질만능주의를 경고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루소와의 산책〉에서는 열처리 회사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지나친 물질만능주의를 꼬집는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작가처럼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해결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싶어요.”

그런 시선으로 그는 문화인류학・사회학 등도 틈틈이 공부 중이었다. 소설 창작에서 그만의 철칙이 있는지 묻자 그는 “뼛속까지 솔직해지자”는 마음가짐으로 소설을 쓴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결함이나 실수 등은 자신의 것인 경우가 많다고 고백한다. 주제 선정, 성적인 표현, 세밀한 내면 묘사 등에서도 젊은 작가 못지않게 솔직하다.

그는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고상한 척하면 그게 글일까요?”라고 말했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인 로프공의 삶을 알기 위해 실제 로프공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들이 일할 때 안전판을 잡아주는 등 그들의 삶에 가까이 가려고 노력했고, 함께 술자리를 가지며 생생한 삶의 애환도 들었다.

작가는 60대 나이에도 젊은 세대의 관심사를 꿰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했다. 소설가가 되기 전 그는 라디오방송 PD, 외화번역작가, 교수 등 다양한 일을 해오던 커리어우먼이었다. 그러다 2006년 환갑 나이에 〈가리봉 양꼬치〉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그는 어떻게 늦은 나이에 등단할 생각을 했을까.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던 작가는 중고등학교 때 문예반에서 활동했고, 연세대 영문과에 진학한 후에도 학보사와 소설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읽은 후에는 진지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대학 신입생 시절 선배의 말 한마디에 상처 입고 주눅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다음부터 의기소침해져서 글을 써도 사람들에게 안 보여줬어요.”

결혼 후엔 사업을 하는 남편 대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글 쓸 여유가 없었다. 남편을 원망하진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밥벌이를 하면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신성한지 알게 해줬으니 고맙다고 생각해요.”

그는 다시 소설을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쉰세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제게도 머지않아 죽음이 닥쳐오겠다는 걸 느꼈죠. 그때부터 조금씩 습작을 하기 시작했어요. 문단에서 활동하는 대학친구인 소설가 윤후명이 계속 글을 꼭 써보라고 당부했던 것도 큰 힘이 됐고요”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에게 “소신껏 살라”고 했다. “남의 말에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학시절 제 소설을 보고 호된 평을 해서 저를 좌절시켰던 선배에게 훗날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정작 기억도 못 하고 있었어요. 저는 바보처럼 주눅이 들어서 달팽이처럼 쏙 들어가버렸는데요.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면 줏대를 가지고 밀고 나가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어요.”

그의 삶에는 결핍이 많았다고 한다.

“6・25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의 부재를 결핍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살다보니 결핍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다면 축복이 될 수도 있구나 싶더군요. 젊은이들에게 ‘어려움은 너의 성장에 동력이 될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해줘요.”

얼마 전 상을 받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상을 받고 안 받고는 상관없이 제 생활 자체가 글 쓰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장편소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청탁이 들어오는 대로 단편소설을 써서 새로운 소설집도 낼 생각이다. “다음에는 무엇으로 저를 까발려야 할지 고민이에요.” 그의 소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 2014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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