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에쿠우스> 주인공 맡은 지현준

10년 무대에 서보니, 이제 한 발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글 : 류동연 인턴기자(서강대 4)  / 사진 : 하지영 

지난해 그는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다.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시작으로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 <단테의 신곡> <스테디 레인>까지 쉴 틈 없이 작품 활동에 매진했고, 출연하는 작품 모두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다. 특히 <신곡>은 전회 매진을 기록하며 모처럼 연극계에 좋은 소식을 안겼다. 연기 인생 10년 만에 신인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대한연극대상과 동아연극상을 수상하며 “10년을 하고나니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많았는데, 감사히 상을 주셔서 다음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다른 분야였다면 중견이란 소리를 듣기 충분한 경력이지만, 그는 이제야 ‘신인 배우’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 내공이, 그런 깊이가 그를 더 겸손하고 단단하게 만든다. 그는 현재 연극 <에쿠우스>의 준비로 한창 바쁘다. 얼굴만 보면 주인공 알런이 아니라 ‘말’로 출연해야 한다며 농담했지만,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무언가 확신이 있었다.


<에쿠우스>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그동안 <에쿠우스>에서 나올 수 있는 방향은 다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새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인상을 받고 다시 연극을 시작하게 된 지금이 마치 아무것도 모르고 연극에 발을 들였던 그때와 비슷해요. 가난하지만 정신이 살아 있었던,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지만 제 자신을 믿고 밀어붙였던 그 시절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가장 기본적인, 가장 텍스트에 충실한 연극으로 제 자신을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에쿠우스>는 영국 극작가 피터 셰퍼의 대표작으로, 1975년 극단 실험극장이 국내에서 초연한 이후 매번 화제를 낳은 작품이다. 故 강태기를 시작으로 조재현・송승환・최재성・최민식・조재현・류덕환 등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주인공 알런 역을 거쳐 갔고, 올해는 그의 차례다.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이 맡았던 배역인데 부담은 없나요?

“딱히 없어요. 이제까지의 알런과는 많이 달라서 호불호는 있겠지만, 제가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이 있거든요. 대본 어디에도 알런은 조그맣고 파마머리에 나약하게 생겼다는 말은 없어요. 그저 볼이 움푹 파이고 마른, 멍든 사춘기를 가진 열일곱 살 소년이라고만 나와 있죠. 알런의 본질을 생각하고 그것을 제가 가진 얼굴과 몸으로 잘 표현한다면 충분히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포스터에 신, 인간, 섹스라고 적혀 있듯이 이번에는 말과의 교감을 좀 더 섹슈얼하게 표현해볼까 합니다.”

<에쿠우스>는 관객에게 무거운 화두를 던진다. 평소 정신과 치료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던 의사 다이사트는 말 26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찔러 병원을 찾은 알런을 만난다. 이 소년을 치료할 수 있을까? 그것이 올바른 ‘치료’인가?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가?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가? 둘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다이사트가 알런의 원시적인 욕망을 동경하게 되면서 극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연거푸 무거운 작품에 출연하고 있는데, 이유가 있나요?

“그런 작품들이 개인적으로 재미있어요. 우리가 위로받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은 즐거울 때가 아니라 혼자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때잖아요. 어떤 때는 괴롭고 외롭고 우울하지만, 그 시기를 잘 활용하면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다음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죠. 연극이 할 수 있는 역할의 중심은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위안을 주고 더 밝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그는 무대 위에서 ‘보이지 않는’ 배우를 꿈꾼다. 그가 생각하는 참된 배우는 장면을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제시’하는 것이다. 관객을 극에 몰입시키는 올바른 통로로서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할 뿐이다. 그러면 어느새 무대 위에서 배우는 자취를 감추고 캐릭터만 남는다. 이것이 그의 연기 철학이다.


<에쿠우스>가 끝나면 연희단거리패로 돌아간다고 들었습니다.

“연희단은 제게 제2의 집이죠. 아버지 이윤택 선생님과 많은 형제들이 있는 집, 제 뿌리와도 같아요. 배우로서 살아갈 때의 철학과 가치를 모두 이윤택 선생님께서 심어주셨거든요. ‘좋은 인간이 배우다.’ ‘배우는 세상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있지만 시선은 항상 하늘을 향해야 한다.’ ‘배우는 관객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영혼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연극을 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모르던 당시 선생님께 들었던 말들이 되살아납니다. 그 말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축이 되었죠.”

연극은 가난하다. 하지만 힘이 있다. 비어 있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고, 편하지 않기 때문에 겸손해진다. 연봉이 50만원도 채 되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그는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연극이 항상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깨어나게 한다”고 말했다.



훗날 연희단거리패와 같은 극단을 꾸릴 생각이 있나요?

“자신 없어요. 능력도 안 되고(웃음). 학교를 짓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있어요. 저는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고, 발성이나 화술에 대해서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않았어요. 대신 삶을 배웠죠. 어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라 피아노를 배웠고, 피아노가 싫어 바이올린도 배웠고, 3년 동안 무용단에 있었고, 미술 퍼포먼스에 나가기도 했고, 요새는 노래를 배우고 있고.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며 쌓은 경험이 연극·뮤지컬·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좋은 배우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되요. 우리나라에서는 배우에게 대사와 기교만 가르치잖아요. 저는 배우에게 좋은 운동과 책과 음악과 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배우가 되기 위한 소양을 가르치는 거죠.


인간 지현준의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연극을 하면서 저도 예술가라고 세상에 한마디하고 싶고,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싶어지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에겐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면서. 어머니께도 살갑게 대하지 못하고. 많이 보고 익숙한 사람에게 잘할 수 있어야 관객에게도 잘할 수 있겠죠? 이제부터라도 가족에게 잘하려고요(웃음).”

연극 <에쿠우스> 공연 정보

기간 : 3월 14일 ~ 5월 17일
장소 : 이해랑예술극장
시간 : 평일 오후 8시 / 토 오후 3시, 7시 / 일·공휴일 오후 2시, 6시
문의 : 02-889-3561
  • 2014년 04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