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영화 같은 인생

참 싫습니다. 영화 같은 인생 말이죠.

옆집 꼬마가 악당들에게 잡혀가 그 아이를 구한답시고 거울을 보며 삭발을 하고, “금이빨 빼고 다 씹어먹어주겠다”는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험한 말을 하고, 게다가 차 안에 있는 악당에게 총알을 발사하는데 “이거 방탄유리야, 이 누렁이 2세야”라는 험한 말을 듣는, 그런 인생은 생각만 해도 참 번거롭고 끔찍합니다.

아, 너무 끔찍합니다. 좀 사랑스러운 비유를 해봅시다. 내 첫사랑이 수지예요. 수지랑 철길도 걷고, 김동률 노래도 듣고, 버스 정류장에서 뽀뽀도 했습니다. 근데 그 수지가 술에 취해서 칠봉이랑 같이 자취방으로 들어갔어요. 그걸 내 눈으로 목격했어요. 그런 수지한테 “꺼져”라고 말한 이제훈이 존경스럽습니다. 나 같으면 금이빨 빼고 다 씹어먹어주겠다고 했겠지요. 그래도 수지는 좋겠다고요? 수지는 나중에 커서 한가인이 되었지만 이혼을 하는데 엄태웅이랑도 안 이어짐. 망함.

영화 같은 인생은 이토록 파란만장합니다. 이종석이 토익 공부를 열심히 해서 대기업에 취직해 30년 정년을 아주 순탄하게 마치고 은퇴 후 귀농하여 고구마를 심는 영화는 재미가 없겠지만, 이종석이 토익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도저히 안 돼서 귀농 후 고구마를 심었는데 거기서 민들레가 나는 영화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파란만장하니까요.

이런 파란만장한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서 배우들은 그 역할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분석합니다. 그 인물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특기는 물론이거니와 작은 버릇과 말투, 표정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분석을 하고 표현해내지요. 얼마나 세밀한가, 얼마나 정확한가, 얼마나 특별한가의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인물에게 얼마나 다가가는가, 그리고 그 인물을 내게 얼마나 끌어오는가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그 인물이 됩니다. 매 작품 그런 것들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배우들이 있습니다. 인고의 노력 끝에 화선지 위에 일필휘지하는 서예가처럼, 그들의 표현은 간결하고 매끄럽지만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크린 안의 혹은 무대 위의 그 인물은 굉장히 파란만장해집니다. 심지어 그 번거로운 영화 같은 인생을 한번쯤 살아보고 싶게 만들어버립니다.

한 달 조금 넘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다른 사람과는 조금 차원이 다른 ‘다른 사람’입니다. ‘절망’과 맞닿아 있는 사내입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죽지도 못하는 상태가 ‘절망’이라고 합니다. 사내에겐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어야 한다’가 아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 사내는 죽지도 못하는 ‘절망’의 상태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지긋지긋한 삶에 구원을 얻어보려 자기가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는 한 여자를 자기가 있는 공간으로 부릅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연극의 인물입니다. 절대로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은 사람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을 표현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조금은 어둡지만 아주 작게나마 ‘절망’을 맛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대에서 한 시간 동안 관객들에게 일필휘지의 강렬한 이미지를 선사하려 합니다. . 참고로 제 돈 내고 만드는 거예요. 도와주십쇼. 잘할게요.

아무튼 영화 같은 인생은 참 힘이 듭니다. 하지만 결국 힘이 들어도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걸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저뿐만 아니라 수많은 배우들이 밤을 지새우며 활자와 싸웁니다. 살아보지도 않은 인생을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그럴싸하게, 있음직하게 표현해야 관객들이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영화 같은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은 이렇게 영화 같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의 인생도 당신이 아닌 누군가에게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영화 같은 인생입니다. 영화 같은 인생을 사시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절망’하지 말고 고구마를 심은 곳에 민들레가 나도 껄껄 웃으면서 살아요. 어차피 끝내는 전부 다 잘될 겁니다.
  •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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