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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한 장면 - 말을 타고 달리다

글 : 이상희 

말(午)해의 시간이 갈기를 휘날리며 내달리고 있습니다. 4월에 중대한 일정이 있고, 10월에 그에 버금가는 막대한 일정이 있으니, 새 달력을 펼쳐놓고 그 두 가지 일의 흐름을 가늠한 이후로는 앉아서도 누워서도 줄곧 마음이 꼭 그렇게 내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더구나 말 다리 넷 대신 바퀴 넷을 굴리며, 같고도 다른 풍경 속을 덧없이 스치는 장거리 운전이 다반사… 일상이 주마간산(走馬看山)입니다. 실제로 말을 타고 정확히 그 속도로 달려본 적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나 말을 타고 달리자고만 들면, 언제든 순식간에 끝없이 펼쳐진 몽골 초원으로 데려가주는 마법의 그림이 있긴 합니다. 붉은 바람 자욱한 사막을 색색 두건을 쓴 젊은이들이 제각기 자기의 하얀 말 또는 검은 말, 갈색 말을 타고 달리는 그림입니다.
펼친 그림 그득히 말굽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한 손으로는 고삐를 팽팽히 당겨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채찍을 쳐들거나 이제 막 내리치면서, 젊은이들이 자기 말 이름을 외쳐 부르는 소리도 들리는 듯합니다. 왼편에서 달려 나오는 말들이 꼬리를 치켜든 채 허공을 날 듯 오른편을 향해 내달리는데, 말 등에 납작 엎드린 몽골 복식의 젊은이들은 주황색·초록색·갈색·빨간색 등 색색 두건 자락을 휘날리며 맨발 양다리로 말의 배를 단단히 죄고 있습니다. 선두가 달리고 있는 오른편 앞쪽이 빈 걸 보면, 막 출발선에서 달려 나간 모양입니다. 그들은 어디로, 무엇을 향해 이처럼 열렬히 달리는 걸까요.

어떤 스펙터클 동영상보다도 역동적인 이 붓그림에서 네 번째로 달리고 있는 빨간 윗도리, 빨간 두건 젊은이가 하얀 말과 대비되어 불그레한 모래바람 배경 속에서 또렷이 도드라집니다. 바로 주인공 수호입니다. 누구보다 깊숙이 말을 껴안고 있는 듯합니다. 한 폭의 중후한 기념비적인 벽화 같은 이 그림은, 《수호의 하얀 말》을 백 번도 넘게 거듭 읽고 또 읽는 내게 처음 이후로 매번 가슴 아픈 장면이기도 합니다. 이 장면의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 수많은 독자도 알다시피, 수호와 하얀 말이 함께 누렸던 순정무구한 기쁨의 세계가 이 장면을 기점으로 파괴되니 말입니다. 어이없이 억울한 일을 당한 끝에 수호는 앓아눕고, 하얀 말은 죽고, 죽은 하얀 말의 뼈와 가죽과 심줄과 털로 마두금이라는 악기가 만들어집니다.

《수호의 하얀 말》
글 : 오츠카 유우조 / 그림 : 아카바 수에키치
옮김 : 이영준 / 한림출판사
이 그림이 담긴 일본 그림책 《수호의 하얀 말》의 첫 장면은 광활한 사막 초원지대 지평선에 펼쳐진 무지개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무지개를 볼 수 없는 섬나라 아이들에게 무지개를 보여줄 수 있는 그림책을 만든다’는 기획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사막 초원지대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찾아낸 복음관출판사의 기획자 마츠이 다다시 선생은 몽골에서 청년기를 보낸 아카바 수에키치를 찾아내 그림을 맡겼습니다.

양옆을 펼쳐 열면 두 배의 그림이 되는 그림책의 마법적인 구조에 의해 광활한 초원의 무지개가 완벽히 펼쳐집니다만, 원서의 첫 장면은 물론 말들이 초원을 내달리는 여러 장면들은 하마터면 번역본에서 시원찮게 편집될 뻔했습니다. 펼친그림의 양쪽 가장자리를 조금씩만 자르면 종이를 아낄 수 있다는 제작팀의 생각을 꺾느라, 편집자가 사표를 걸고 원본의 판형을 고수하려 애썼다는 내력은 다행스러운 한편으로 안타까운 얘기입니다.

아카바 수에키치는 2차대전 무렵 만주에서 통신과 운송 관련 일을 하며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가 귀국,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는 한편으로 무대미술 작업을 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50세에 우연히 그림책 작가가 된 뒤로 1990년 8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0여년간 80여 권의 그림책을 그렸지요. 이 그림책 《수호의 하얀 말》로 1980년 ‘어린이책의 노벨상’으로 일컫는 국제안데르센상을 받았습니다.
  •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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