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미술작가 정승

현대미술은 물음표에서 시작합니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본떠 층층이 둥글게 짜 넣은 선반 위에 빽빽하게 놓여 있는 자그만 인형들. 동그란 가분수 머리를 한 인형들이 ‘째깍째깍’ 동시에 쉴 새 없이 좌우로 머리를 흔든다. 그러다 하나 둘 ‘툭 툭’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산산조각이 난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가슴이 ‘툭’ 내려앉는 듯 싸해진다. 묘한 슬픔이 밀려온다.
정승 작가의 설치작품 〈스펙터클리스 콤플렉스(Spectacleless Complex)〉. 현대미술 중 이렇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작품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량생산·대량소비 사회에서 획일화된 인간들. 똑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시간들을 쉼 없이 살아내야 하는, 그러다 어느 순간 추락하고 마는 군중의 모습을 목도하는 것만 같았다. 2011년 갤러리 비원에서 전시되었던 이 작품은 현재 두 번째 버전으로 독일 본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Spectacleless Complex
“태양열 전지로 고개를 움직이는 일본의 노호혼에 수퍼마리오 캐릭터를 입힌 인형입니다. 장난감 가게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1년 동안 머릿속에서 숙성된 끝에 나온 작품이지요. 전시장에서는 강한 형광등 빛에 작동합니다. 빈틈없이 놓여 있는 인형들이 진동으로 서로 몸이 부딪히면서 하나 둘 떨어지는 거지요. 몇 개만 놓여 있으면 그저 장난감이지만 수백 개, 수천 개가 모여 있으면 자연스럽게 ‘관중’ ‘군중’으로 해석되면서 의인화됩니다. 선반에 올린 인형 수를 세어보니 1975개더라고요. 제가 1975년생인데, 우연의 일치라도 재미있었죠.”

본 미술관 전시에서는 아레나(arena·원형경기장 모양)가 조금 더 동그래지고, 형광등 불빛이 더 강해져 인형들이 더 강렬하게 움직인다. 선반의 높이는 2m40cm. 아레나 안에 들어서면 2000개 가까운 인형들이 동시에 내는 소리에 묘하고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고 한다.


“관람객의 질문을 많이 받았던 작품입니다. 그저 ‘귀엽다’면서 보다가 인형이 툭 떨어질 때 깜짝 놀라는 분이 많았습니다. 작품의 의미에 대해 묻거나 자신이 느낀 것이 맞는지 물어오는 분도 많았죠. 좀 더 깊게는 ‘스펙터클’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원형경기장 좌석에 앉아 있는 인형들이 내려다볼 때 무대가 비어 있습니다. 볼거리, 스펙터클이 없는 거지요. 그래서 제목이 스펙터클리스 콤플렉스입니다. 관람객이 혹은 선반 위에서 떨어진 인형들이 스펙터클이 되는 거지요. 상업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이미지로 대중을 휘두르는 스펙터클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고요. 그러나 이제는 그마저도 새로울 게 없고, 힘을 잃어 ‘스펙터클리스’가 되고 말았다는. 현대미술에서 ‘이것은 이런 의미’라고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담론들을 유도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장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지요.”


‘군중’의 문제는 2009년 〈Circling Complex〉에서 먼저 다뤘다. 200개의 인형이 한꺼번에 자전거를 타고 빙빙 도는 작품이다.

“지하철역을 지나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자전거 타는 인형을 팔고 계셨어요. 그 느낌이 강렬했는데, 1년 뒤에 작품으로 만들어졌죠. 하나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기까지 보통 1년 정도 걸려요. 확신이 들 때까지 생각을 거듭합니다. 지하철 1호선 신도림역을 지나가다보면 ‘군중’의 존재를 강하게 느낄 때가 있어요.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글바글 머리만 보이는데, 그 흐름에 떠밀려서 움직여야지 거슬러갈 수는 없죠. 출퇴근 시간이라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굳어 있고요. 맹목적으로 달리면서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군중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미학적 담론, 개념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 구체적인 이야기도 하고 싶던 차에 이 작품을 만들게 됐습니다.”

Circling Complex
그의 작품은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과천관 모두에 전시되어 있다. 새로 문을 연 서울관 야외조각 프로젝트에 나온 작품은 〈왜, 안 될 것 없죠… 할 것〉이다.

“현대미술은 ‘왜?’라는 물음표에서 시작합니다. 하나의 사물, 현상, 명제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면서 파고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기존의 틀을 깨기도 하고, 때로는 관람객을 조소의 눈빛으로 보기도 합니다. 노란색 플라스틱 과일박스를 쌓아서 거대한 물음표를 만들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브로슈어를 봐야 보이지, 사실 가까이에서는 물음표로 보이지 않아요. 불친절한 전시죠? 어쨌든 관람객이 작은 둔덕 같은 물음표 위에 올라가 차도 마시고 휴식도 취할 수 있게 했습니다. 여기에 제가 작업을 하면서 두서없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담은 사운드 장치를 넣었습니다. ‘작가 작업실의 30분’을 들려주는 거지요. 물음표, 작가가 가진 생각의 조각들을 가져다놓고, 관람객이 현대미술에 관해 자유롭게 생각하고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왜, 안될 것 없죠… 할 것〉
그는 야외전시 의뢰를 받을 때마다 현대미술과 일반 관람객 사이 괴리감, 거리, 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관람객은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작품을 접합니다. 그러다보니 즐길 수가 없는 거지요. 야외전시는 아이들이 만지고 올라가기도 할 것을 감안해서 만드는데, 그러다보니 관람객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됩니다.”

그는 그동안 ‘우리는 눈에 띄어야만 한다’는 제목으로 야외전시를 해왔다. 노란색 바리케이드로 거대한 꽃을 만들기도 했다.

“노란색은 눈에 잘 띄는 색깔이라 좋아합니다. 노란색을 보면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게 되지요. 공사장에서 많이 쓰는 색이자 세포분열이 왕성한 유치원생들의 색깔이기도 합니다. 현대미술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우선 눈에 띄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야외조각을 할 때 노란색을 많이 활용합니다. 벌레를 꼬이게 하기 위해 화려한 색과 모양을 자랑하는 꽃을 금지를 의미하는 노란색 바리케이드로 만든 데서 패러독스를 느끼게 했습니다. 야외설치를 할 때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정말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저런 것도 작품이래’ 하며 지나가는 분도 있습니다. 작가라면 그 모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현대미술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작품이 단순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작가든 큐레이터든 작품에 대해 잘 설명하면 관람객은 이해합니다. 관람객에게 친절해지는 게 결코 작품을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 작가의 상상력, 생각은 지워버리고 쉽고 재미있는 팝적인 요소만을 부각시키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저 ‘귀엽다’ ‘예쁘다’는 반응만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거지요. 그건 장기적으로 볼 때 관람객을 오히려 떠나가게 하는 일입니다.”

프랑스 파리지역 국립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art de PARIS-CERGY)에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친 그의 첫 작품은 자동차를 몽땅 분해한 후 골격만 남긴 2006년 대학원 졸업 작품이었다.

“프랑스 거주 한국인을 위한 사이트에 ‘작품에 쓸 자동차를 기증받고 싶다’고 광고를 냈는데, 한 한국인으로부터 오래된 ‘에스페로’를 선물 받았어요. 현대 산업사회의 첨단기술이 집약되어 있고, 마케팅 비용을 가장 많이 쓰는 자동차를 ‘실제로’ 분해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죠. 포병으로 군 생활을 했기에 기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석 달에 걸쳐 속을 다 끄집어냈죠. 안에 있던 부품들을 늘어놓으니 600㎡(200평) 가까운 땅을 꽉 채울 정도 방대해 뭘 해야 할지 방향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뼈대를 벌리고 비틀어서 전시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는 자동차나 복사기·선풍기 등을 분해하고 망가뜨리고, 케이블타이로 잇기도 하면서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기계의 기능을 변질시키고, 새로운 속성을 부여하고, 스스로 욕망하고 진화하는 존재로 보여주었다. 광운대 로봇디자인연구소의 제작지원으로 만든, 끊임없이 빨아들였다 뱉었다 하는 로봇 청소기를 전시하면서 현대인의 과도한 소비행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탐구해온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그의 작품은 더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그가 하나하나 분해했던 자동차 부품들을 펠트천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앉고 기대고 만질 수 있게 했다.

“보통사람은 그게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부품들이지만, 그걸 만든 인간의 손길이 있었기에 자동차가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실험적이던 그의 작품은 점점 더 관람객에게 다가가면서 따뜻하고 친절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말마따나 단순해지지는 말아야, 다층적인 의미를 담아야 할 것이다. 관람객의 수준에 따라갈 게 아니라 그들의 의식이나 감성을 끌어올려줘야 할 것이다. 과천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정승 작가와 이야기를 나눈 후 문을 나서는데, 2013년 12월 31일 마지막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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