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 배성희

인간의 욕망에 의해 구현된 도시 구조를 다시 보다

글 : 이선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어느 때부터인가 아파트 단지마다 ‘팰리스’ ‘파크’ ‘캐슬’ 같은 생뚱맞은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아파트 광고들은 앞다투어 ‘이곳에 들어오면 누구나 행복해질 것’이라고 유혹한다. 정말 그럴까?
미술작가 배성희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도시 환경, 그래서 이상하다고도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 삶의 조건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시립미술관의 ‘2013 Emerging Artists: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서울 반포동 갤러리 압생트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그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시멘트 벽돌의 그리드(grid)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회색 벽에 걸려 있는 그의 작품들. 흰 종이에 검정색 얇은 유성 펜으로 그린 그의 그림을 처음 봤을 때는 판화인 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얇은 펜으로 하나하나 수없이 점을 찍어 형태를 그려나간 그림으로, 작가의 노역(勞役)이 느껴졌다.

그의 작품 〈Urban Park〉는 질서 정연하게 나무가 심겨져 있는 도시 환경을 보여준다. 원래 있던 땅에서 뿌리가 뽑혀 이식되었을 나무들은 아픔이라곤 모른다는 듯 몽실몽실 풍성한 잎을 자랑한다. 길에는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고, 자로 재어 그린 듯 반듯한 박스 모양의 건물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끼다가 인간이 증발해버린 듯 인공적인 공간이 어쩐지 섬뜩해지기도 한다.

전시장 맞은편에는 긴 탁자가 놓여 있고, 탁자에는 아파트 광고 전단지들이 쌓여 있다. 그의 그림이 ‘이상화된 주거환경’을 담은 아파트 광고 전단지를 모델로 그려졌음을 시사한다. 탁자 한켠에는 하얀 종이를 접어서 만든 기다란 상자들이 쌓여 있고, 건축 모형을 만들 때 쓰는 나무모형이나 가로등-신호등 모형도 보인다. 그의 작품 중에는 방 하나를 아파트 단지의 축소모델로 만들거나, 가로수와 가로등이 규칙적으로 서 있는 도시 환경을 재현한 설치작업도 있다. 하얀 상자는 줄지어 서 있는 아파트 동들을 보여줄 때, 가로수와 가로등 모형은 도시 환경을 재현할 때 쓰는 재료들인데, 전시장에 들여놓았다. 작가가 또 다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Urban Park_ ink on paper, 110x163cm, 2013
철저히 계획되고 구획된 도시 환경은 그가 홍익대 판화과에 다니던 시절부터 천착했던 주제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도 주제는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판화에서 드로잉, 설치로 매체가 확장되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풍성해졌다.

“중고등학교 때까지 경북 구미에서 지내다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어요. 구미도 농촌지역은 아니지만, 서울에 오니 잘 조성된 도시 환경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역이나 공원, 고수부지같이 도시 개발로 만들어진 장소, 가로수나 가로등같이 나란히 정렬되어 있으면서 도시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마음이 끌렸어요. 답답해지면 한강변 고수부지를 찾곤 했습니다. 강바람을 쐬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탁 트이고 좀 진정되는 것 같았거든요. 도시 환경을 주제로 작업하면서 더 자주 찾게 되었죠. 제 작품에 대해 ‘인공적인 도시 환경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신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 환경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니까요. 제 작품에는 ‘좋다’ 혹은 ‘나쁘다’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인가. 그의 작품을 본 사람들은 “좋겠다. 나도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와 “소름 끼친다”는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은 그가 ‘나는 왜 원래의 자연도 아닌데 공원이나 강변같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스스로를 돌아보고 작업의 의미를 정립하는 시기였다.

“도시 구조 자체가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을 모델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럽의 공원이 유토피아를 모델로 만들어졌는데, 반듯하게 구획되고 조경이 된 공원의 구조가 도시 구조에 그대로 반영되었지요.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이를 따르고요. 대학교 때 배낭여행으로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을 찾았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어요. 왕이 있는 궁전을 중심으로 완전 대칭이 되게 정원이 펼쳐지는데, 나무들이 정확히 계산된 제자리에 서 있었어요. 평론가 이선영 선생님은 왕, 즉 권력을 중심으로 이상화된 자연을 재현한 것이라고 풀이하시더군요.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 단지도 그런 것 아닐까요? 이상향을 본떠서 너무 예쁘게 만들고, 그래서 너무 비싸고, 사람들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Urban Park_ ink on paper, 110x210cm, 2012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를 담은 자연이 인간의 완벽한 계획과 조정 아래 조성된다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미국에 가니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도시 구조가 좀 더 시원하게 펼쳐졌다. 큰 공원도 많았다. 1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 때 이탈리아 피렌체의 판화학교에서 한 달간 조교(TA)로 일하면서 유럽의 도시 환경, 공원도 경험할 수 있었다. 툭 터진 공간을 자주 접하다보니 화면이 점점 커지고, 표현하는 매체도 다양해졌다.

“유학 후 처음 1년 동안은 판화에 빠져 살았어요. 미국에는 판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 있어 너무 좋았지요.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전문 프린터들이 판화로 만드는 경우도 많았는데, 그런 프린트 숍에서 인턴을 하면서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2학년 때 논문준비를 하면서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가?’라는 생각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설치, 드로잉 등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타 과의 수업 듣는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라 디지털미디어과, 유리과 수업도 들었는데, 그게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3D 모델링으로 만든 입체를 드로잉하듯 화면에 배치하고 여러 각도에서 카메라로 찍어 디지털프린트를 하는 등 흥미로운 작업도 했고, 설치작업도 시도했지요.”

다른 요소들은 모두 배제한 채 가로수와 가로등, 울타리, 인공적으로 조성한 잔디밭 등 도시의 기반만을 보여주며 ‘우리가 사는 도시가 얼마나 계획적으로 구획이 되어 있으면, 자가 복제를 계속하고 있는가?’를 보여주었던 그는 도시 가로체계의 부속품인 가로수를 한 그루 한 그루 클로즈업해 화면에 담기도 했다. 자신이 원래 살던 환경을 떠나 인공적인 환경에서 속으로 앓고 있는 나무의 초상이다. 그는 “길을 가다 수액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Urban Park_ installation views, Santa Fe Art Institute, NM, USA, 2012
요즘 그는 거의 우리나라에만 있는 대단지 아파트를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부지런히 모델하우스를 다니고, 아파트 광고 전단지도 모은다. 그의 그림도 전단지의 조감도와 같이 위에서 내려다본 시선이다. 이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이 컨트롤하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메시지와 잘 부합한다.

대학원 졸업 후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버몬트, 뉴욕, 뉴멕시코와 오스트리아 빈 등 곳곳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새로운 곳에서 작업할 때면 그 도시는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찬찬히 다니면서 보고, 자신의 작업에 대한 그곳 사람들의 반응도 살핀다.

“뉴욕에서 작은 박스들을 줄지어 세워 아파트 단지, 도시 환경을 재현한 설치작업을 하면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라고 써 붙여놓았어요. 어른들은 귀찮아서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애들은 거인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하면서 ‘내가 왕이야’라며 재미있어 했지요.”

Urban Park_ installation views, Swing space, Lower Manhattan Cultural Council, NY, USA, 2010
오스트리아에서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를 광고하는 전단지를 보여줬더니 그리 좋아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대한 선망은 거의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그만큼 인간의 욕망에 맞춰 조성된 공간에 대한 열망이 큰 것이겠지요.”

그의 작품은 그렇게 조성된 도시의 체계를 그려낼 뿐, 이에 대한 가치 판단은 덧붙이지 않는다.

“주로 흑백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곰곰 생각하니 제가 견지하는 태도가 ‘중간자적인 자세’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이지만, 인간은 결국 그 환경을 떠나 살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요?”

그의 작품으로 인해 우리가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도시 환경을 위에서 내려다보며 다시 생각하는 시선을 얻은 것 같다.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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