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싱어송라이터 김태춘

지는 사람들 편에서 그들을 위해 노래한다

글 : 류동연 인턴기자(서강대 4)  / 사진 : 김선아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그를 만났다. 서점이 즐비한 골목. 그에게 책을 즐겨 읽는지 물었다. 그는 잠들기 전 종종 읽는다며 현재 읽고 있는 책을 알려준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잉글랜드 북부 산업지대 탄광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한 르포다. 사회비판적인 그의 음악과 맞닿은 문학 취향이다.
그는 컨트리 싱어송라이터다. 혹자에게 컨트리란 로이킴의 ‘봄봄봄’ 정도의 가벼운 음악으로 인식되겠지만, 사실 컨트리는 블루스와 가스펠에 뿌리를 둔 진지한 음악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던 미국인들의 힘든 삶과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는 가벼운 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정통 컨트리를 고수한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임마는 어떻게 이래 하게 됐을까’ 하고 거슬러 올라가보면 컨트리랑 블루스가 나오더라고요. 그런 음악을 통틀어 루츠(roots) 음악이라고 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죠.”

처음 미국인 친구가 그에게 조니 캐시(Johnny Cash)의 ‘Folsom Prison Blues’을 소개했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들을수록 매력을 느꼈다. 수감자의 애환을 그린 이 곡이 그의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세상이 나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도대체 누굴 탓해야 할지도 모를 때 그 갑갑함을 컨트리로 재밌게 표현할 수 있어요. 굳이 어려운 철학적인 용어를 쓰는 게 아니라 일반인의 언어로 잘 표현할 수 있거든요. 리듬도 재미있고요.”

그는 올해 3월 첫 정규 앨범 〈가축병원블루스〉를 발매했다. 자신의 생각을 오롯이 담은 이 음반은 진솔하다 못해 노골적이다. 앨범명과 같은 수록곡 ‘가축병원블루스’는 앨범의 성격을 확실히 보여준다. 마산의 한 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가 본 가축병원과 애견센터. “왜 똑같은 동물인데 어떤 동물은 먹히기 위해서 키워지고 어떤 동물은 사랑받기 위해서 사”는지 궁금했다.

“우리 인생을 보면 처음엔 다 잘살고 싶잖아요. 꿈도 크고. 그런데 꿈대로 되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정직하게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그는 ‘가축’으로 표현했다. 쓸모없어지면 버려진다. 잔머리 쓰고 아첨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강아지’다.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행복하게 산다.

그는 앨범 전체에 이런 비판을 담았다. 거침이 없다. ‘악마와 나’는 대놓고 종교의 몰락을 예고한다. 한낱 자기 위안의 수단으로 전락한 종교를 그는 조롱한다. ‘개들의 세상’은 살기 위해 열심히 기고 빌어야 하는 현대인을 개로 비유한다. ‘니 얼굴은 이쁜 편이야’는 여성의 허영과 속물성을 여과 없이 비꼰다.

그가 갑자기 손으로 창문 밖 계단을 가리켰다. 오래된 골목 계단에는 아름답게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는 열변을 토했다.

“저게 본질이 아닌데. 진짜 모습을 드러내려 해야지 무슨 동화의 세계도 아니고. 부끄러워서 그런지 보기 싫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 따위로 덮어버리는 게 맘에 안 들어요.”

부산 ‘상남자’일 줄 알았더니 의외로 세심한 남자다. 그는 취미로 박스공예를 즐긴다.
그가 지금 쓰는 지갑 역시 마트에서 구한 박스로 직접 만들었다. 훗날 이 기술로 장사를 할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떤다.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사람은 이미 많다. 그는 어두운 내용의 가사를 쓴다. 가사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던 욕설은 역시나 그의 입에서도 무척 자연스러웠다.

“평소에도 욕을 많이 해요. 별 이유 없이 했는데 사람들은 욕에 많이 집중하더라고요. 그런데 자연스럽고 당연한 거예요. 적어도 저한테는(웃음). 자기검열을 안 해서 문제인데, 꾸미지 않은 제 모습이 멋있기도 하고 그러네요.”

인디 신에서도 비주류이던 그가 처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이효리와 함께 공동 작업을 하면서다. 이효리가 우연히 그의 공연 영상을 보고 직접 연락해왔고, 5집 〈Monochrome〉을 위해 그는 ‘사랑의 부도수표’ ‘묻지 않을께요’ 두 곡을 써주었다. 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200회 특집에 함께 출연하며 그는 처음 공중파에 입성했다. 독특한 스타일과 센스 있는 입담으로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순위 1위도 했다. 하지만 주류로 전향할 마음은 없다고 못 박는다.

“그냥 재밌는 이벤트, 추억 만들기였어요. 아마 〈스케치북〉이 처음이자 마지막 공중파 출연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2007년 고향 마산을 떠난 후 그는 쭉 부산에서 살고 있다. 사실 음악 활동을 하기에는 서울이 더 편하다. 부산보다 서울에서 공연이 많아 교통비와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다. 서울로 옮길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결국 그는 부산에 남았다. 최근 컴필레이션 음반 〈특별시부산〉에서 다른 부산 뮤지션들과 작업한 것 역시 그의 노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앨범 내고 6개월 동안 해보니까 굳이 안 올라가도 되겠더라고요. 좋은 영향을 받는 뮤지션들은 거의 부산에 있고. 계속 기획 공연도 하고 있고, 부산 문화를 좀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요.”

그에게 형식은 그저 ‘옷’일 뿐이다. 언제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타이틀을 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음악은 뭘까? 컨트리는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의 모든 대중음악이 우리나라 음악이 아니듯이. 나는 루츠 음악을 좇고 있는데 그러면 내 뿌리는 대체 뭐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중이에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죠.”

그의 음악에서 중심은 그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메시지다. 바로 스피릿(spirit).

“이 세상을 이긴 자와 진 자로 나눈다면 저는 지는 사람 편이 되고 싶어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지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는 늙어서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 조니 캐시가 그랬듯이. 지금은 올해 12월 크리스마스 EP 앨범과 내년 2집 발매를 준비하고 있다. 그가 들려주는 캐럴이라… 쉽게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는 분위기 깨는 음악일 거라고 귀뜸해주었다. 하지만 지친 영혼을 달래주는 음악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김태춘이 소개하는 음반


정태춘
<아, 대한민국…>_1990
고등학생 시절 제가 처음 만든 데모테이프를 선생님께서 듣고 장문의 편지와 함께 이 음반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네 음악을 들으니까 이 사람이 생각나더라. 한번 들어봐라” 하시면서. 그래서 예명도 김태춘으로 쓰게 되었고요. 정말 좋아하고 영향도 많이 받은 음반입니다.

Johnny Cash
〈At Folsom Prison〉_1968
‘Folsom Prison Blues’는 제가 처음 들은 컨트리 곡입니다. 조니 캐시가 1953년 미 공군에 복무할 때 폴섬 감옥에 대한 영화를 보고 쓴 노래인데, 1968년 5월에 실제로 거기서 공연했습니다. 실황 음반이라 그의 기침 소리와 멘트가 들어 있어 생동감 있습니다. 이 음반을 듣고 저도 마산교도소에서 공연하는 꿈을 꿔보았습니다.

Ray Charles
〈Modern Sounds in Country & Western Music〉_1962
레이 찰스가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나 돈 깁슨(Don Gibson) 등 컨트리 가수들의 대표곡을 자기 스타일로 바꿔서 부른 음반입니다. 원곡과 비교해서 들으면 무척 흥미롭습니다.
  • 201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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